진달래 명소 중의 하나인 강화 고려산

강화 고려산 정보

고려산

고려산(高麗山, Goryeosan)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강화읍·송해면·하점면·내가면이 경계하는 지점에 위치한 산이다(고도:436m). 강화 6대 산의 하나로 전한다. 강화도에서 마니산(469m)·혈구산(466m)·진강산(441m)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1696년에 편찬된 『강도지』에 “홍릉(洪陵)과 국정(國淨), 적석(積石), 백련(白蓮) 등의 세 절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화부 서쪽 15리에 있으며 강화부의 진산(鎭山)이다.”라고 되어 있다. 『강화부지』에도 강화부의 진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와 『조선지지자료』에서 지명이 확인된다. 『대동여지도』에는 고려산(高呂山)으로 한자 표기가 되어 있고 동쪽 산록 끝에 강화읍성이 위치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고려산은 정상부에 커다란 연못이 있고 그곳에서 다섯 가지 색깔의 연꽃이 핀다는 유래로부터 ‘오련산(五蓮山)’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정동 쪽에 강화읍이 위치해 있다.

창녕박물관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박물관과 교동 가야고분군 정보

창녕박물관-교동-가야고분군
1. 창녕박물관

창녕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창녕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및 계성고분군 등 창녕의 고분군에서 출퇴된 유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데요. 특히 전시관 중앙홀에는 고총고분의 축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관(디오라마)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고대사회 고분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2.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구릉 일대에 조성된 고대 비화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이다. 고분군의 범위는 창녕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릉 경사면에서 서쪽으로 뻗은 가지능선까지 이어진다.고분군에는 봉분이 남아 있는 무덤 120여 기, 봉분이 남아 있지 않은 무덤 180여 기 등 모두 300여 기가 넘는 무덤이 있다. 고분군은 무덤의 분포에 따라 크게 4개의 지구로 나누어지며, 각 지구에는 대형 무덤을 둘러싸고 중소형 무덤이 밀집 분포하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무덤의 구조는 대부분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과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이다. 하나의 봉분 안에 하나의 덧널이 있는 형태이며, 별도의 딸린덧널(副槨)이나 순장덧널(殉葬槨)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앞트기식돌방무덤은 고분군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다. 가야 고유의 무덤 구조인 구덩식돌덧널무덤에 입구를 설치한 특이한 형태로 비화가야만의 독특한 무덤 형태로 알려져 있다. 봉분은 만들어진 위치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공간을 구획하여 쌓아 올렸는데, 이는 철저한 계획에 의해 무덤이 만들어졌음을 말해준다. 비화가야를 대표하는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이자 낙동강을 통한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의 여러 가야는 물론이고 신라, 백제,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라·백제에서 전해지거나 영향을 받은 장식말갖춤(裝飾馬具), 금동관(金銅冠), 청동세발손잡이솥(靑銅製鐎斗), 둥근고리큰칼(環頭大刀), 은제허리띠와 대가야의 귀걸이, 일본산 녹나무로 만든 관, 사슴뿔로 만든 긴칼(長劍), 조개장식 말띠꾸미개(貝製雲珠) 등이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그 외 출토된 토기는 비화가야만의 특색 있는 무늬와 형태를 가진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를 비롯해 바리모양그릇받침(鉢形器臺), 긴목항아리(長頸壺)가 대표적이다.무덤의 구조와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대부분의 무덤들이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창녕이 신라로 편입된 이후인 7세기까지 고분군 내에 신라식 돌방무덤이 소규모 군집으로 만들어지고 있어 가야에서 신라로의 무덤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의 성립과 발전, 가야에서 신라로의 전환 과정, 고대 한반도 안팎의 정치세력 간 교류와 교섭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중요한 기념물이다.
* 두 개의 봉분이 표주박처럼 서로 이어 붙어 있는 무덤 양식.
** 돌로 세 벽을 쌓고 천장돌을 덮어 무덤방을 만든 다음, 한쪽으로 시신을 넣고 무덤 입구를 막아 추가 합장이 가능하도록 만든 무덤 양식.

한국의 4개 관음 기도처 중의 하나인 여수 향일암

향일암 정보

향일암

향일암은 남해의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아름다운 곳으로 강화 보문사, 양양 홍련암,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처 중의 한 곳입니다. 향일암이 위치한 금오산은 거북 한 마리가 부처님 경전(輕典)을 등에 지고 바다로 나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향일암을 중심으로 "남해 보리암, 통영 욕지도, 남해 세존도가 둘러싸고 있는 남해 바다 중간지점에 용궁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수 돌산도 봉황산, 금오산

봉황산, 금오산 정보

봉황산

1. 봉황산

돌산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봉황산은 해발 460m로 돌산읍 율림리, 서덕리, 죽포리에 걸쳐 있으며 예로부터 봉황이 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상산으로도 불린다. 정상을 중심으로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특히 주변의 아름다운 바다를 조망하며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등산코스로 봉황산에서 남동으로 흘러가는 산릉을 따라 섬 최남단 끝머리에 위치한 아름다운 기암 덩어리인 금오산(향일암)과 연결하여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산이다.

2. 금오산

금오산(金鰲山, Geumosan)은 여수시의 돌산읍 율림리와 금성리 일대에 위치한 산이다(고도:323m). 돌산도 남동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서쪽을 제외하고 급경사의 암석 해안과 이어진다. 우리나라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하나인 향일암(도 지방문화재 제40호)이 있다. 금오산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에 등장하는데『돌산군읍지』에 돌산도의 팔대산 중에 금오산이 있으며, “금오산은 군의 동쪽 20리에 있다. 산이 모두 흰 돌이며 거북이 모양으로 (중략) 소금강(小金剛)이라칭한다.”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돌산)에 율림리에 있는 산으로 기재되어 있다.『1872년지방지도』(순천방답진)에 지명은 보이지 않으나 향일암과 함께 산으로 묘사된 지역에 “진(鎭)으로부터 45리”라는 표기가 있다. 『돌산군읍지』의 지도에는 돌산군 동남단에 암석산으로 금오산이있으며 향일암을 함께 표기했다. 금오산이 거북이 모양이므로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하며 풍수지리상 금오산 향일암은 경전을 등에 모신 금거북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백마고지와 고암산을 조망할 수 있는 철원 소이산전망대

철원 소이산 정보

소이산
소이산은 평야에 우뚝솟은 362m의 작은 산으로 때묻지 않은 자연과 넓은 평야를 내려다 보는 정상 전망은 그 위용을 자랑한다.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연을 알리던 제 1로 봉수대가 위치한 공간으로 한국전쟁 이전 화려했던 구 철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철원역사의 중심이다.

기도성지 목정굴로 유명한 금선사

금선사 정보

금선사-대적광전

금선사는 고려와 조선이 왕조교체기 때 무학(無學)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무학대사는 조선의 도읍을 정하고자 삼각산을 살피던 중, 지금의 금선사 터에 삼각산의 정기가 서려있고, 부처님이 상주하시며 중생들을 제도하는 형상과 같다고 하여 절을 짓고, 금선(金仙:금빛의 신선 즉, 부처)사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목정굴이 관음기도성지로 알려졌다. 또한 금선사 농산스님이 정조의 왕세자인 순조로 환생하였다는 설화도 전해지는데, 이를 계기로 1791년 정조의 명으로 원찰이 되기도 하였다. 설화에 의하면 금선사의 농산스님은 조선후기 사찰에 가해지는 각종 국역에 의해 피폐해지는 불교를 구해낸 인물로 묘사되어 있어 사찰의 규모는 작아도 위상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금선사는 조선후기 사대부 문인들(신정하, 조수삼, 박규수 등)과 스님들이 활발하게 교유한 장으로도 가능하였다. 특히 추사 김정희의 아우 김명희와 초의스님과는 교유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창건 이래로 신령한 기운과 문학이 숨쉬는 명찰로 법등을 잇다가 일제강점기에 관리소홀로 인하여 퇴락하게 되었다. 이후 1957년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도공 스님이 옛터에 중건하고, 법안 스님이 주석하며 1996년에 목정굴을 복원한 것을 필두로 대적광전, 삼성각, 반야전, 미타전, 설선당, 적묵당, 범종루 등의 각 전각과 요사를 신증축하여 현재 가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서울 북한산 : 신도중학교 정류장 ~ 기자능선 ~ 향로봉 ~ 금선사 ~ 이북5도청 정류장

북한산과 기자능선 정보

기자능선

북한산(北漢山 Bukhansan)은 서울시의 성북구·종로구·은평구·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836m). 본래 한산(漢山)이라 불렸는데 ‘큰 산’이라는 뜻의‘산’을 한자로 차음 하여 표기한 것이다. 한산이란 이름은『삼국사기』,『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등에 보이며, 서울 지방의 옛 이름을 한산·북한산·북한산성·북한성·한양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산은 처음에는 산 이름이 아니라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에는 “양주 지경에 있다. 화산(華山)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하였다. 평강현(平康縣)의 분수령(分水嶺)에서 잇닿은 봉우리와 겹겹한 산봉우리가 높고 낮음이 있다. 또 삼각산이 되니, 실은 경성(京城)의 진산(鎭山)이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 온조가 남쪽으로 나와서,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찾았으니, 바로 이 산이다.”라고 하여 여러 다른 이름들이 보인다. 부아악은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 형상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아가 불의 표기이므로 부아 → 불 → 화(火) → 화(華)로 바뀌어 화산이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화산·화악은 세 봉우리가 연꽃이 핀 것과 비슷하다 하여 연화산(蓮華山)의 준말로 쓴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려사』의 삼각산 승가굴의 기록이나,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삼각산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일반화된 이름이다. 삼각산은 인수봉·백운봉·만경봉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루어 나란히 있는 모습 때문에 유래되었는데, 근래에까지 삼각산이란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된 내용을 기록한 『북한지』가 출간된 이후 북한산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세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백운봉과 동쪽 인수봉(811m)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졌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801m)는 일명 국망봉(國望峰)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만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위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만경대 서남쪽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노적더미로 의심하였다는 노적봉(718m)과 진흥왕순수비가 있어 이름 붙여진 비봉(527m)이 있다.
 
기자능선은 기자촌에서 시작하여 대머리바위, 발가락바위, 기자봉, 진관봉 등을 거쳐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말합니다. 현재는 사라진 마을인 기자촌은 서울시 은평구 진관외동 175번지 일대에 거주하던 기자들의 집단거주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월정사

월정사 정보

월정사

월정사(Woljeongsa, 月精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지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입니다. 월정사 8각 9층 석탑, 목조문수동자좌상, 상원사중창권선문, 상원사 동종 등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평창 동대산과 오대산 선재길

오대산 선재길 정보

오대산-선재길

오대산 선재길은 월정사(일주문)에서 상원사까지 약 10km의 숲길로 스님과 불교신도들이 다니던 길인데요. 문수보살은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보살로 이러한 문수의 지혜를 시작으로 깨달음이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분이 화엄경의 '선재(동자)'입니다. 또 선재에는 '착한사람'이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재길을 걷는 것은, 이 길을 통해서 세상사의 고뇌와 시름을 풀어 버리고 새로운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과 더불어 서로에게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선재길을 걸으며 우리는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목적을 찾는 깨어있는 사람으로 거듭나 문수보살의 지혜와 조우하게 될 것입니다.

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는 도피안사

철원 도피안사 정보

도피안사
도피안사(到彼岸寺, Dopiansa Temple)는 철원 8경 중 하나이기도 하며 우리나라가 지나온 수많은 재난속에서도 국보급 문화재의 원형이 남아있는 곳인데요. 도피안사에는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높이 4.1m의 화강암 재료로 된 3층 석탑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강릉 괘방산과 횡성·평창 청태산

강릉 괘방산과 횡성·평창 청태산 정보

강릉-괘방산과-평창-청태산
1. 강릉 괘방산

괘방산은 산줄기의 모양이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합격자의 명단을 붙이던 방[榜]처럼 생겼다고 하고, 또 과거에 급제를 하면 이 산에다 급제자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 이름을 쓴 커다란 두루마기를 걸어놓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등명낙가사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 때 새벽에 괘방산에 올라가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과거급제를 기원했다고 한다. 강릉에는 이 괘방산이 있어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2. 횡성·평창 청태산

청태산(靑太山)은 강원도의 횡성군과 평창군의 경계지역으로 해발1,200m인 청태산을 주봉으로 인공림(85%)과 천연림으로 잘 조화된 국유림 시범단지이며 약용식물과 각종야생화 그리고 곤충류, 조류, 파충류 등 야생동물 등이 다종, 다량 생육하고 있다. 402ha 숲속에 각종 편익시설과 청태산 정상으로 가는 잘 정비된 등산로가 6개소로 이용자 체력을 감안하여 즐길 수 있는 숲으로 많은 등산객으로 부터 숲을 느끼며 호흡할 수 있는 휴양림이며 청태산 유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관동지방(강릉)을 가다가 이곳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지금 휴양림이 위치한 곳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점심을 횡성 수령에게 받았는데 자리가 마땅하지 않아 마침 커다란 바위에 푸르고 큰 이끼(가로15자×세로20자)가 있는 바위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성계가 이곳의 아름다운 산세에 반하고 큰 바위에 놀라 청태산(靑太山)이란 휘호를 직접 써서 횡성 수령에게 하사하여 부르게 되었다.

철원역사문화공원과 노동당사

철원역사문화공원과 노동당사 정보

철원역사문화공원-노동당사
1. 철원역사문화공원
 
철원역사문화공원은 철원 근대사회의 태동과 발전, 쇠퇴라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지역주민의 역사적 기록과 고증을 통해 건립한 공간입니다. 철원의 근대화는 일제 주도로 경원선 철도와 금강산전기철도의 부설, 철원평야의 개척 등으로 시작하였으며, 그로 인해 광복 이전 철원은 인구 10만명이 넘는 강원도 중심도시로 성장하였고, 시가지에는 관공서, 학교, 위락업소, 문화시설 등 많은 시설이 건립되어 운영되었던 곳입니다. 다만, 광복 후 남북의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번성했던 철원읍 시가지는 폐허가 되고 농경지로 변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고 있습니다. 이곳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일제의 억압과 핍박으로 일군 가슴아픈 근대 역사를 기억하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가시길 희망합니다. 

2. 노동당사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에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그 인근 지역을 관장하기 위해 지은 건물입니다. 지역 주민의 노동력과 자금을 강제로 동원하여 지였으며, 주민을 통제하고 사상운동을 억합하는 구실을 하였습니다. 이곳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지만 철근 구조에 벽돌과 시멘트로 벽을 쌓아 매우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인 노동당사는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분단과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횡성·평창 청태산 : 청태산자연휴양림 주차장 ~ 청태산 정상 ~ 청태산자연휴양림 주차장

횡성·평창 청태산 정보

횡성-청태산
청태산(靑太山)은 강원도의 횡성군과 평창군의 경계지역으로 해발1,200m인 청태산을 주봉으로 인공림(85%)과 천연림으로 잘 조화된 국유림 시범단지이며 약용식물과 각종야생화 그리고 곤충류, 조류, 파충류 등 야생동물 등이 다종, 다량 생육하고 있다. 402ha 숲속에 각종 편익시설과 청태산 정상으로 가는 잘 정비된 등산로가 6개소로 이용자 체력을 감안하여 즐길 수 있는 숲으로 많은 등산객으로 부터 숲을 느끼며 호흡할 수 있는 휴양림이며 청태산 유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관동지방(강릉)을 가다가 이곳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지금 휴양림이 위치한 곳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점심을 횡성 수령에게 받았는데 자리가 마땅하지 않아 마침 커다란 바위에 푸르고 큰 이끼(가로15자×세로20자)가 있는 바위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성계가 이곳의 아름다운 산세에 반하고 큰 바위에 놀라 청태산(靑太山)이란 휘호를 직접 써서 횡성 수령에게 하사하여 부르게 되었다.

DMZ 평화의 길 15코스 : 백마고지역 ~ 소이산 ~ 철원역사문화공원 ~ 도피안사 ~ 학저수지 ~ DMZ두루미평화타운

DMZ 평화의 길 15코스 정보

DMZ-평화의길-15코스
DMZ 평화의 길 15코스는 백마고지역에서 시작하여 철원역사문화공원, 노동당사, 도피안사, 학저수지 등을 경유하여 DMZ두루미평화타운까지 이어지는 19.4Km의 길로 소이산, 노동당사 등 6.25전쟁과 관련된 유적지 등을 둘러볼 수 있는 길입니다. 특히 도피안사에서는 국보 철조비로나사불좌상과 블랙야크 역사문화대장정 인증지인 보물 3층 석탑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강릉 괘방산 : 등명낙가사주차장 ~ 괘방산 정상석 ~ 삼우봉 ~ 통일공원주차장

강릉 괘방산 정보

괘방산
괘방산은 산줄기의 모양이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합격자의 명단을 붙이던 방[榜]처럼 생겼다고 하고, 또 과거에 급제를 하면 이 산에다 급제자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 이름을 쓴 커다란 두루마기를 걸어놓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등명낙가사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 때 새벽에 괘방산에 올라가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과거급제를 기원했다고 한다. 강릉에는 이 괘방산이 있어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군위 아미산과 칠곡 유학산 산행

군위 아미산과 칠곡 유학산 정보

군위-아미산-칠곡-유학산
아미산은 팔공산(1192m)에서 뻗은 팔공지맥의 끝자락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낮지만 마치 설악산의 용아장성을 옮겨놓은 듯 아름다운 산이다. 팔공산 줄기는 시루봉을 지나 군위군 산성면 백학리를 지나며 끊어질 듯 야트막한 야산이 되었다가 조림산과 화산(華山·828m)이 만나는 갑령재에 이르러 다시 치솟는다. 화산을 넘으면서 탄력을 받은 줄기는 방가산(755.8m)을 지나 팔공지맥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아미산이다. 여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뜻하는 아미(蛾眉)에서 음을 빌려와 산이 높고 위엄이 있다는 뜻의 아미(峨嵋)로 했다. 아미산은 높이로 말하는 산이 아니다. 산세가 수려하며 산이 작아 보여도 바위 형태가 만물상을 이룬 듯하다. 바위 틈 사이에서 자라 짧게 뻗은 소나무 가지들은 분재 같은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크게 다섯 개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그 모양들이 마치 촛대 같이 생겨 청송 주왕산의 촛대바위를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산의 모양은 다섯 개의 바위봉이 나란히 어깨를 맞댄 형국이고, 많은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마을을 지키는 듯한 모습이어서 예로부터 이곳은 전쟁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경북 칠곡군의 가산면 다부리와 학산리, 석적읍 성곡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839m). 유학산의 정상 부분은 대체로 완만한 억새밭을 이루지만, 남쪽과 북쪽의 사면은 경사가 매우 급하여 단애를 이루고 있다. 유학산은 팔공산에서 가산으로 이어진 산줄기로부터 서쪽으로 갈라진 곳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천생산, 남쪽으로 황학산과 연결된다. 유학산 남쪽의 다부리 고갯길에는 한국전쟁 때의 승리를 기리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있는데, 다부리는 대구로 밀려오는 북한군을 막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다. 유학산 남사면 중턱에는 도봉사(道奉寺)가 있다. 유학산이 처음 기록된 사료는『신증동국여 지승람』이다. 이 책에는 유학산이 아닌 유악산(流嶽山)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인동현의 동쪽 10리에 있으며, 인 동현의 진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도』에도 ‘유악(流岳)’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해동지도』에는 ‘유학산(留鶴山)’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현재 쓰고 있는 ‘유학산(遊鶴山)’이라는 이름은『1872년지방지도』에 처음 기록되어 있는데, 학이 놀던 산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봉화 예던길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관람

봉화 예던길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정보

봉화-예던길-국립백두대간수목원

봉화 예던길은 낙동강시발점과 봉화 청량산 입구를 잇는 국도 35번 주위의 강변길로 퇴계 이황이 젊은 날 입신을 위해 즐겨 걷던 옛길이다. 은퇴 후 노년에도 학문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이 길을 걸었으며 그가 세상을 뜬 후에도 많은 후학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와 옛 스승이 다니던 길을 즐겨 밟았다. 예던길은 퇴계 선생이 봉화 청량산을 오가던 길을 복원한 길로 퇴계선생의 종택이 있던 곳에서 봉화 청량산까지의 50리길이며 퇴계선생이 배움을 찾아 13세부터 숙부 이우를 찾아 청량산 오산당(지금의 청량사)까지 걸어 다녔던 길이라고 한다. 예던길의 예던이란 말은 요즘엔 안쓰는 말이지만 예다는 “다니다”라는 뜻으로 “다니던 길”이란 정도의 뜻이라고 한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전체규모 약 5,179ha(15백만평)로 아시아에서는 최대, 전 세계에서도 남아공 국립한탄식물원(6,229ha) 다음으로 큰 규모의 수목원인데요. 국내·외 고산지역 등 기후변화에 취약한 희귀·특산식물을 수집보존하고 있으며, 각각 희귀식물 326종(57.1%), 특산 식물 162종(45.0%)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호랑이 숲은 축구장 6개 크기(총 3.8ha)와 맞먹는 규모로 국내에서 가장 넓은 사육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학이 놀던 산, 칠곡 유학산

칠곡 유학산 정보

유학산

경북 칠곡군의 가산면 다부리와 학산리, 석적읍 성곡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839m). 유학산의 정상 부분은 대체로 완만한 억새밭을 이루지만, 남쪽과 북쪽의 사면은 경사가 매우 급하여 단애를 이루고 있다. 유학산은 팔공산에서 가산으로 이어진 산줄기로부터 서쪽으로 갈라진 곳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천생산, 남쪽으로 황학산과 연결된다. 유학산 남쪽의 다부리 고갯길에는 한국전쟁 때의 승리를 기리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있는데, 다부리는 대구로 밀려오는 북한군을 막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다. 유학산 남사면 중턱에는 도봉사(道奉寺)가 있다. 유학산이 처음 기록된 사료는『신증동국여 지승람』이다. 이 책에는 유학산이 아닌 유악산(流嶽山)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인동현의 동쪽 10리에 있으며, 인 동현의 진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도』에도 ‘유악(流岳)’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해동지도』에는 ‘유학산(留鶴山)’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현재 쓰고 있는 ‘유학산(遊鶴山)’이라는 이름은『1872년지방지도』에 처음 기록되어 있는데, 학이 놀던 산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정보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전체규모 약 5,179ha(15백만평)로 아시아에서는 최대, 전 세계에서도 남아공 국립한탄식물원(6,229ha) 다음으로 큰 규모의 수목원인데요. 국내·외 고산지역 등 기후변화에 취약한 희귀·특산식물을 수집보존하고 있으며, 각각 희귀식물 326종(57.1%), 특산 식물 162종(45.0%)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호랑이 숲은 축구장 6개 크기(총 3.8ha)와 맞먹는 규모로 국내에서 가장 넓은 사육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 아미산

군위 아미산 정보

아미산-앵기랑바위
아미산은 팔공산(1192m)에서 뻗은 팔공지맥의 끝자락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낮지만 마치 설악산의 용아장성을 옮겨놓은 듯 아름다운 산이다. 팔공산 줄기는 시루봉을 지나 군위군 산성면 백학리를 지나며 끊어질 듯 야트막한 야산이 되었다가 조림산과 화산(華山·828m)이 만나는 갑령재에 이르러 다시 치솟는다. 화산을 넘으면서 탄력을 받은 줄기는 방가산(755.8m)을 지나 팔공지맥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아미산이다. 여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뜻하는 아미(蛾眉)에서 음을 빌려와 산이 높고 위엄이 있다는 뜻의 아미(峨嵋)로 했다. 아미산은 높이로 말하는 산이 아니다. 산세가 수려하며 산이 작아 보여도 바위 형태가 만물상을 이룬 듯하다. 바위 틈 사이에서 자라 짧게 뻗은 소나무 가지들은 분재 같은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크게 다섯 개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그 모양들이 마치 촛대 같이 생겨 청송 주왕산의 촛대바위를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산의 모양은 다섯 개의 바위봉이 나란히 어깨를 맞댄 형국이고, 많은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마을을 지키는 듯한 모습이어서 예로부터 이곳은 전쟁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봉화 예던길 : 도천교 ~ 낙동강시발점테마공원 ~ 선유교 ~ 청량산종합상가지구주차장

봉화 예던길 정보

봉화-예던길
봉화 예던길은 낙동강시발점과 봉화 청량산 입구를 잇는 국도 35번 주위의 강변길로 퇴계 이황이 젊은 날 입신을 위해 즐겨 걷던 옛길이다. 은퇴 후 노년에도 학문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이 길을 걸었으며 그가 세상을 뜬 후에도 많은 후학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와 옛 스승이 다니던 길을 즐겨 밟았다. 예던길은 퇴계 선생이 봉화 청량산을 오가던 길을 복원한 길로 퇴계선생의 종택이 있던 곳에서 봉화 청량산까지의 50리길이며 퇴계선생이 배움을 찾아 13세부터 숙부 이우를 찾아 청량산 오산당(지금의 청량사)까지 걸어 다녔던 길이라고 한다. 예던길의 예던이란 말은 요즘엔 안쓰는 말이지만 예다는 “다니다”라는 뜻으로 “다니던 길”이란 정도의 뜻이라고 한다.

정선 항골숨바우길 트레킹

항골숨바우길 정보

항골숨바우길
항골 생태탐방로는, 북평면 북평리의 백석봉(해발 1,170m)과 상원산(해발 1,421m)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골짜기로, 탐방로의 총길이는 약 7.7km이며 안전사고 등 비상시를 대비하여 각 0.75km, 2.85km, 4.75km 지점에 우측임도와 연결된 총 3개소의 진출입로가 있다. 생태탐방로를 이용하면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로는 너래바위, 용소, 거북바위, 왕바위소 등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수마노탑이 있는 정선 정암사

정선 정암사 정보

정암사-수마노탑
정암사(淨巖寺)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인 자장(594-599~653-655)이 지은 사찰이다. 정암사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자장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장은 당나라의 불교를 배우는 과정에서 산시성과 오대산에 이르러 문수보살을 직접 만나는 신비한 종교 체험을 하게 된다. 이때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와 승려의 법의인 가사 등의 성물을 받는다. 이후 선덕여왕의 요청으로 신라로 귀국하여 황룡사구층목탑과 통도사, 태화사 등을 지었다. 그리고 고구려의 침략 위협으로 소란스럽던 동북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평창 오대산을 새로 세우고 현재 함백산으로 불리는 태백산에 석남원을 지었다. 석남원은 '신령한 바위의 남쪽' 이라는 의미로 현재 수마노탑이 위치한 바위를 기점으로 하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정암사, 즉 '깨끗한 바위' 라는 의미가 여기서 유래된것이다. 자장은 정암사에서 문수보살과의 만남을 기다리다 입적한다. 이로 인해 정암사 뒤편에는 자장의 유해를 모신 바위굴과 조사전이 세워졌다. '정암사사적기' 에는 바위굴이 때때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신령한 곳임이 기록되어 있다. 정암사는 자장의 계율 정신을 계승해 고려시대까지 계율을 연구하는 전통이 유지된다. 또한 자장이 모신 부처님 사리와 수마노탑 건립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오대산 중대와 통도사, 법흥사와 더불어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도처이자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안 위도 대월습곡과 망월봉

부안 위도 대월습곡과 망월봉 정보

부안-위도-망월봉-대월습곡

1. 위도(蝟島)

위도의 명칭은 고슴도치를 뜻하는 '위(蝟)'와 섬을 뜻하는 '도(島)'에서 비롯되었다. 본래 사용하던 '위(猬)'가 조선후기에 '위(蝟) 자로 바뀌어 정착이 되었는데, 이 두 한자는 모두 고슴도치를 나타낸다. 위도 주민들은 위도의 전체적인 모습이 고슴도치와 흡사하다고 믿으며, 마을 명칭 역시 고슴도치 신체 부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슴도치 머리 부위에 해당되는 곳이 위도의 관문인 파장금이고, 파장금 앞에 위치한 섬 식도(食島)를 고슴도치의 먹이로 생각하여, 위도 주민들은 식도를 '밥섬'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위도라는 섬의 명칭에 고슴도치가 등장하게 된 것은, 섬의 전체적인 모습이 고슴도치를 닮았기 때문이다. 송나라의 문신인 서긍이 남긴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고섬섬(고슴도치털섬)이라는 섬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곳이 오늘날의 위도이다.

2. 부안 위도 진리 대월습곡(大月褶曲, 천연기념물)

다양한 주향을 보이는 정단층과 역단층이 모두 관찰되는 특징, 이암과 사암의 경계에서 관찰되는 연질퇴적변형구조,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에 의해 확인된 퇴적시기 (백악기, 8천7백만 년 전 – 8천6백만 년 전), 습곡층 상, 하부에 나타나는 비변형 퇴적층 등은 위도 진리 대월습곡이 광역압축응력에 의해 형성된 습곡이 아님을 지시한다. 퇴적 이후, 퇴적층 내에서 사태(slumping)가 발생하게 되면 사태 퇴적층(slump deposits)의 말단부에서는 습곡 및 역단층이 발달하게 되며, 이 경우 층의 내부에는 연질퇴적변형구조가 관찰되고, 사태 퇴적층 상, 하부의 지층은 변형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위도 진리 대월습곡의 특징과 동일하며, 이는 위도 진리 대월습곡이 층 내 사태에 의해 형성된 습곡구조임을 지시한다. 중생대벌금리층의파식대지의해안절벽에위치하고,수십m높이로규모가대단히크며,이러한대규모습곡은국내에서는드물게관찰되며경관또한매우우수하다.

3. 위도 망월봉(望月峰)

위도에서 가장 높은 254m의 망월산에서 둥근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가리킨 것이며 둥근달이 산봉우리를 벗어나면서 바다에 비춰지는 달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한 아름다운 장관의 극치이다.

운탄고도 5길 : 화절령 ~ 도롱이연못 ~ 하이원CC 갈림길 ~ 만항재주차장

운탄고도 5길 정보

운탄고도-5길
화절령에서 만항재 소공원까지 이어진 높고 아득한 산길. 산중턱 도롱이연못에 얽힌 이야기는 모든 이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광부를 남편으로 둔 아내들의 애타는 마음이 담겨 있는 곳이 도롱이연못이라면 뒤이어 마주치게 되는 1177갱은 광부들이 캄캄한 막장으로 들어가는 갱도의 입구였다. 이 길은 광부와 광부 아내의 높고 애틋한 사랑의 길이다.

완도 조약도 삼문산, 생일도 백운산, 신지도 상산 산행

조약도 삼문산, 생일도 백운산, 신지도 상산 정보

조약도-생일도-신지도

1. 조약도 삼문산

아름다운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명산 삼문산은 남쪽으로는 신지도, 혈도, 모황도가 수석처럼 보이고 맑은 날이면 청산도 뒤로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조망할 수 있다. 삼문산(해발 397m)은 비교적 해발이 낮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산이다. 4월이면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고 정상(망봉)에는 봉화대가 있었던 자리가 남아있으며, 죽선리에서 정상인 망봉으로 오르는 길은 북쪽으로는 천관산이 손에 다을 듯 보이고 남쪽으로는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와 떠 있는 느낌을 받은 코스이며 죽선리에서 300미터쯤 오르다보면 바위사이에서 나오는 신설골 약수터가 있어 목을 축일 수 도 있다. 

2. 생일도 백운산

생일도는 해발 483m의 백운산과 금곡해수욕장을 낀 동백숲이 있으며, 남쪽에는 용출리 갯돌밭이 장관을 이루는 섬이다. 생일도란 지명은 처음에는 산밀도, 산윤도라 불리다가 주민들의 본성이 착하고 어질어 갓 태어난 아기와 같다하여 날 생(生)과 날 일(日)자를 붙여 생일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예로부터 험한 바다에서 조난 사고와 해적들 횡포가 심해 이름을 새로 짓고 새로 태어나라는 뜻에서 생일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백운산은 생일도 중앙에 우뚝 솟은 산으로 산이 높고 바다 경치가 수려하며 정상에 서면 맑은 날엔 남쪽 멀리 제주도까지 바라보일 만큼 조망이 뛰어나다

3. 신지도 상산

신지도(완도군 신지면)의 서쪽 송곡리 일대에 위치한 산이다(고도 : 325m). 두 개의 섬이 연육되어 형성된 신지도의 서측 섬의 주봉을 이룬다 「조선지지자료」 에 송곡(松谷)에 소재한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산의 남측 사면에 영주암이 묘사되어 있다. 산록의 북측 해안 말단부에 송곡 마을이 있다. 지명은 마을 주위에 소나무와 계곡이 많아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1596년(선조 29)에 진(鎭)을 설치하였고, 만호영이 있었다. 17세기에 김해 김씨가 처음으로 정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지도 상산과 명사십리해수욕장

신지도 상산과 명사십리해수욕장 정보

신지도-상산-명사십리해수욕장

1. 신지도 상산

신지도(완도군 신지면)의 서쪽 송곡리 일대에 위치한 산이다(고도 : 325m). 두 개의 섬이 연육되어 형성된 신지도의 서측 섬의 주봉을 이룬다 「조선지지자료」 에 송곡(松谷)에 소재한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산의 남측 사면에 영주암이 묘사되어 있다. 산록의 북측 해안 말단부에 송곡 마을이 있다. 지명은 마을 주위에 소나무와 계곡이 많아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1596년(선조 29)에 진(鎭)을 설치하였고, 만호영이 있었다. 17세기에 김해 김씨가 처음으로 정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 신지명사십리(薪智鳴沙十里)해수욕장

신지도(완도군 신지면)의 서쪽 송곡리 일대에 위치한 산이다(고도 : 325m). 두 개의 섬이 연육되어 형성된 신지도의 서측 섬의 주봉을 이룬다 「조선지지자료」 에 송곡(松谷)에 소재한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산의 남측 사면에 영주암이 묘사되어 있다. 산록의 북측 해안 말단부에 송곡 마을이 있다. 지명은 마을 주위에 소나무와 계곡이 많아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1596년(선조 29)에 진(鎭)을 설치하였고, 만호영이 있었다. 17세기에 김해 김씨가 처음으로 정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생일도 : 서성항 ~ 학서암 ~ 백운산 정상 ~ 서성항

완도 생일도 백운산 정보

생일도-백운산
생일도는 해발 483m의 백운산과 금곡해수욕장을 낀 동백숲이 있으며, 남쪽에는 용출리 갯돌밭이 장관을 이루는 섬이다. 생일도란 지명은 처음에는 산밀도, 산윤도라 불리다가 주민들의 본성이 착하고 어질어 갓 태어난 아기와 같다하여 날 생(生)과 날 일(日)자를 붙여 생일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예로부터 험한 바다에서 조난 사고와 해적들 횡포가 심해 이름을 새로 짓고 새로 태어나라는 뜻에서 생일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백운산은 생일도 중앙에 우뚝 솟은 산으로 산이 높고 바다 경치가 수려하며 정상에 서면 맑은 날엔 남쪽 멀리 제주도까지 바라보일 만큼 조망이 뛰어나다

조약도(약산도) 삼문산 망봉 산행

완도 조약도(약산도) 삼문산 정보

조약도-삼문산
아름다운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명산 삼문산은 남쪽으로는 신지도, 혈도, 모황도가 수석처럼 보이고 맑은 날이면 청산도 뒤로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조망할 수 있다. 삼문산(해발 397m)은 비교적 해발이 낮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산이다. 4월이면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고 정상(망봉)에는 봉화대가 있었던 자리가 남아있으며, 죽선리에서 정상인 망봉으로 오르는 길은 북쪽으로는 천관산이 손에 다을 듯 보이고 남쪽으로는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와 떠 있는 느낌을 받은 코스이며 죽선리에서 300미터쯤 오르다보면 바위사이에서 나오는 신설골 약수터가 있어 목을 축일 수 도 있다. 

대관령 소나무숲길과 강릉바우길 17코스 안반데기 운유길

대관령 소나무숲길과 강릉바우길 17코스 안반데기 운유길 정보

대관령-소나무숲길-안반데기-운유길
2017년 산림청에서 '명품 숲'으로 지정된 대관령소나무숲은 1922년경부터 소나무 종자를 산에 직접 뿌리는 직파조림을 통해 관리 조성된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숲에는 평균 2~30미터 높이의 금강송들이 장관을 이루는데 그 면적은 400여ha로 축구장 571개의 면적에 해당하는 울창한 숲이다. 잘 자란 소나무들 사이로 들어선 생강나무군락은 봄철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며 지역주민의 꽃차소득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릉바우길 17코스 안반데기 운유길은 안반데기 공영주차장에서 시작해 피덕령, 옥녀봉 사거리, 성황당 등을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해발 1100m 고지대에 있는 트레킹길로 길이 험하지는 않으나 경사도는 꽤 있는 편입니다. 강릉바우길 17코스에서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일출전망대와 고랭지 채소밭 및 고지대의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색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안반데기 마을은 해발 1100m 고산지대로 떡메로 떡을 치는 안반처럼 우묵하면서도 널찍한 지형이 있어 안반데기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산이 배추밭이고, 배추밭이 곧 산이다. ‘안반’은 떡메로 반죽을 내리칠 때 쓰는 오목하고 넓은 통나무 받침판을, ‘데기’는 평평한 땅을 말합니다. 경사가 가팔라서 기계농이 불가능하므로 농부의 힘이 고스란히 들어간 곳입니다.

강릉바우길 17코스, 안반데기 운유길

강릉바우길 17코스, 안반데기 운유길 정보

안반데기-운유길
강릉바우길 17코스 안반데기 운유길은 안반데기 공영주차장에서 시작해 피덕령, 옥녀봉 사거리, 성황당 등을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해발 1100m 고지대에 있는 트레킹길로 길이 험하지는 않으나 경사도는 꽤 있는 편입니다. 강릉바우길 17코스에서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일출전망대와 고랭지 채소밭 및 고지대의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색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안반데기 마을은 해발 1100m 고산지대로 떡메로 떡을 치는 안반처럼 우묵하면서도 널찍한 지형이 있어 안반데기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산이 배추밭이고, 배추밭이 곧 산이다. ‘안반’은 떡메로 반죽을 내리칠 때 쓰는 오목하고 넓은 통나무 받침판을, ‘데기’는 평평한 땅을 말합니다. 경사가 가팔라서 기계농이 불가능하므로 농부의 힘이 고스란히 들어간 곳입니다.

국가숲길, 대관령 소나무숲길 트레킹

대관령 소나무숲길 정보

대관령-소나무숲길
2017년 산림청에서 '명품 숲'으로 지정된 대관령소나무숲은 1922년경부터 소나무 종자를 산에 직접 뿌리는 직파조림을 통해 관리 조성된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숲에는 평균 2~30미터 높이의 금강송들이 장관을 이루는데 그 면적은 400여ha로 축구장 571개의 면적에 해당하는 울창한 숲이다. 잘 자란 소나무들 사이로 들어선 생강나무군락은 봄철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며 지역주민의 꽃차소득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월 요선정 및 요선암 돌개구멍

영월 요선정 및 요선암 돌개구멍 정보

요선정
요선정은 무릉도원면 무릉리 지역민의 계 조직인 요선계가 중심이 되어 1915년에 세웠다. 남한강의 지류 주천강 상류인 이곳은 풍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조선 19대 임금 숙종의 어제시를 봉안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어제시는 숙종이 직접 하사하여 주천면 주천강 북쪽 언덕에 있던 청허루에 봉안하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청허루가 훼손되었고 숙종의 어제시 현판은 일본인이 소유하게 되었다. 이에 요선계 회원들은 어제시 현판을 되찾아. 이를 봉안하기 위해 요선정을 세웠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철감국사 도윤과 징효대사가 그리 멀지 않은 사자산 기슭에 흥년선원을 세우고 자주 이곳에 와서 포교했다고 하여, 당시 이곳에 작은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요선암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43호로 지정된 이곳 주천강변에는 단단한 암석인 중생대 쥐라기 화강암이 둥글게 움푹 파인 모양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요선암 돌개구멍(포트홀: pothhole)이라 부른다. 돌개구멍은 강물에 있는 암석의 갈라진 틈이나 오목한 곳으로 모래와 자갈이 들어가 소용돌이치는 물살로 인하여 회전운동을 하면서 주변의 암반을 깍아 내린 것이다. 강물의 흐르는 속도가 빠를수록, 흐르는 물의 양이 증가하면서 물은 더 빠르게 돌게 되어 돌개구멍의 크기는 점점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