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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해변과 코끼리 바위로 유명한 산, 서산 황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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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황금산 정보 몽돌해변과 코끼리바위가 유명한 황금산은 서산9경(서산구경) 중 제7경으로, 해송과 야생화가 어우러진 숲길과 몽돌로 이루어진 해안이 절경을 이룬다. 해발 156m의 낮은 산이지만, 산을 넘으면 코끼리바위가 있는 아름다운 해안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항금산(亢金山)’이었으나 산이 있는 전체구역을 총칭하여 ‘항금’이라 했다고 한다. 옛날 평범한 금을 뜻했던 ‘황금’에 비해 ‘항금’은 고귀한 금으로 여겼다. 이 때문에 마을 선비들은 ‘항금산’으로 표기했다고 전한다.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어 마치 섬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나 화학공장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육지와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 서쪽은 바위절벽으로 서해와 접해있고 금을 캤던 2개의 동굴이 남아있으며, 산 정상에는 예로부터 풍년과 안전을 기원했던 당집을 복원하여 매년 봄 제향을 지내고 있다.

2026년 가을철 산불조심기간 중 블랙야크 인증 불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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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가을철 산불조심기간이란? 산림청에서는 건조기를 맞이하여 매년 봄과 가을철 산불예방을 위하여 산불조심기간(1~5월, 11~12월경)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2026년 올해 가을의 경우, 산림청과 지자체가 관리하는 입산통제구역 및 등산로 통제기간은 11월 1일(화)부터 12월 15일(화)까지이고, 국립공원 탐방로 통제기간은 11월 15일(일)부터 12월 15일(화)까지입니다. 통제된 등산로에 허가 없이 출입할 경우 산림보호법, 자연공원법 등 관계법령에 의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가야구곡 2곡 예산 옥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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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옥병계 정보 1. 옥병계(玉屛溪) 18세 기호학파의 학맥을 이었던 강문팔학사 병계 윤봉구(1683~1767) 선생이 이곳에 살며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 따 가야구곡(伽倻九曲)으로 했다. 가야산에서 흘러온 계곡의 아홉 굽이 경치를 말하는 것으로 옥병계는 '관어대'에 이어 제2곡이다. 조선시대 많은 문인, 관료들이 즐겨 찾던 유서 깊은 명소이다. 수직으로 병풍모양 같아 '병풍바위'라 불렀다. 바위 아래로 티 없이 맑은 물이 흘러 '옥계'라 했으며 이 마을 유래도 이곳에서 유래되었다. 신라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세이암(洗耳嵒)' 암각체가 '고운(孤雲)'이란 그의 호와 함께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죽천 김진규 선생이 새긴 '옥병계(玉屛溪)' 글씨, 청송 성수침의 '수재대(水哉臺)' 등 여러 암각체가 남아있다. 개발로 옛 모습은 변했지만, 옛날에는 바위 위에 정자가 있었고 늘어선 낙락장송의 풍경과 가을 단풍은 한 포의 동양화였다.  2. 가야구곡(伽倻九曲) : 가야산 계곡의 아름다운 비경 9곳, 푸르름이 함께하는 걷고 싶은 길 1곡 관어대(觀魚臺) : 옥계의 물이 한곳에 모인는 곳 2곡 옥병계(玉屛溪) : 숙종 처남 김진규의 ‘옥병계’ 고운 최치원의 ‘세이암’의 유명한 글씨가 암 벽에 새겨짐 3곡 습운천(濕雲泉) : 늘 신비로운 구름이 덮여있음 4곡 석문담(石門潭) : 작은 폭포가 있고 우암 송시열이 글자를 바위에 남김 5곡 영화담(榮華潭) : 복숭아 나무가 많고 꽃잎이 물속에 비춰져 경치가 좋음 6곡 탁석천(濯石泉) : 가야사 스님들이 종이를 만들던 곳 7곡 와룡담(臥龍潭) : 용이 산다는 전설이 있음 8곡 고운벽(孤雲壁) : 최치원 선생이 쉬웠다는 전설이 있어 그 호를 따 ‘고운벽’이라 함 9곡 옥량포(玉梁瀑) : 백목련 자생지로 경치가 좋음

국내에서 가장 큰 저수지, 예산 예당호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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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예당호 출렁다리 정보 예당저수지는 한국에서 단일 저수지로는 규모가 가장 큰 인공호로 예산군과 당진군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한다 하여 앞글자를 따서 지어진 명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예당호에 건설된 '예당호 출렁다리'는 전체 길이 402m, 주탑의 높이 64m, 폭 5m 규모로 건설 당시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로 예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예당호의 아름다운 풍경과 출렁다리의 아찔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두 대에 걸쳐 천자가 나는 자리, 예산 남연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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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남연군묘 정보 흥선대원군의 부친이신 남연군의 묘로, 이 남연군묘가 위치한 자리는 본래 가야산 일대에서 제일 큰 절인 가야사가 있던 곳이다. 풍수지리설의 좌청룡, 우백호가 웅장 하게 뻗어있어 "이대 천자지지" 즉 2대에 걸쳐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부친 남연군 이구의 묘를 경기도 연천의 남송정에서 이곳으로 이장한 것이다. 이때 대원군은 왕권에 야심을 품고 안동 김씨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생활을 하던터라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99개의 암자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큰 절이었던 가야사를 불사르게 하고 금탑을 허물게 하여 이 묘자리를 차지하였으며 뒷날의 도굴을 염려하여 철 수 만근을 붓고 강회로 비비고 봉분을 했다. 임시묘가 있던 곳은 ‘구광지’라하여 지금도 움푹 패여 있으며 묘 전방의 석조물 2조의 석양과 2기의 석주를 묘지의 좌우에 세우고 있으며 묘의 전방에는 “이대천자지지”라 명문된 석등이 있다. 1868년에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있었고, 전주 이씨가 멸망한 후 묘소는 황폐화 되었으나, 왕실묘라 하여 후세 사람들에 의해 잘 보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