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회문산 :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 ~ 삼연봉 ~ 큰지붕 ~ 문바위 ~ 돌곶봉 ~ 장승산장가든
순창 회문산 정보
전북 순창군의 서쪽 강진면 용수리와 순창군 구림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837m). 북쪽 섬진강에 인접한 높은 산으로 노령산맥 줄기이다. 『신증동국여지 승람』(임실)에 “회문산(回文山)은 현의 서쪽 50리에 있다.”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 『여지도서』에서 회문산(回門山)으로 한자를 달리해 수록되었으며“ 순창의 무림산에서 뻗어나온다. 관아의 서쪽 40리에 있다. 산의 형세가 높고도 크며 커다란 돌이 병풍처럼 서 있다. 민간에서는 흔히 ‘개문산(開門山)’이라고도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회문산(回文山)이 서남쪽으로 60리이고, 순창과 경계를 이룬다.”고 했다. 『해동지도』에 읍치 서쪽을 흐르는 운암대천(雲岩大川, 지금의 섬진강)의 서편으로 회문산(回門山)이 묘사되었으며 『대동여지도』 (18첩 4면), 『청구도』(21층 14면) 등에는‘회문산(回文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에 회문 혹은 개문이라는 천연적인 돌문이 있는 것에서 산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완주·임실 옥정호 물안개길 및 오봉산, 국사봉 산행
완주·임실 옥정호 물안개길 및 오봉산, 국사봉 정보
1. 옥정호 물안개길
크던 작던 카메라를 갖고 사진을 취미삼은 사람이라면 의례것 옥정호의 조망을 찍고 싶어 한다. 발아래로 펼쳐진 파란 호수, 그 속에는 붕어를 닮은 작은 섬 하나가 그림처럼 떠 있고, 행여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면 선경이 따로 없다. 완벽한 굴곡의 리아스식 호변위로는 방금 지나온 찻길이 희미한 연필자국처럼 보일 듯 말 듯 연결되고, 길 끝자락에 아득히 보이는 마을에선 밥 짓는 연기가 으스름에 깔리는 풍경도 있다. 잘 찍은 옥정호 사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들이다. 호숫가 산위에 있는 전망대나 오봉산 자락에서 내려다 본 풍경뿐만이 아니다. 옥정호는 호변을 도는 찻길 자체가 하나의 여행코스다. 이중 옥정호를 삶의 터로 삼고 있는 운암리와 마암리를 잇는 749번 도로는 교부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중 하나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2. 오봉산(五峰山, 513.2m)
강진면과 정읍시 산내면에 걸쳐있는 옥정호의 비경은 무엇보다도 외안날을 중심으로 피어오르는 아침 물안개다. 옥정호는 일제 강점기인 1925년 동진수리조합에서 시공에 들어간 관개용댐에서 비롯됐다. 당시 섬진강 상류인 정읍군 산외면에서 서남쪽으로 갈라져 나와 황해로 흘러들어가는 동진강 유역이 대부분 평야인데 가뭄이 심각했다. 그래서 수자원이 풍부한 섬진강 상류를 막아 반대편인 정읍군 치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기 위해 1929년 운안댐이 준공됐다. 이 사업은 3공화국까지 이어졌고 1965년 섬진강 다목적댐이 완공되면서 운암댐은 수몰되고 전북에서 제일가는 인공호수가 탄생한 것이다. 옥정호란 이름은 당시 댐이 위치한 강진면 옥정리에서 유래한다.옥정호를 가장 쉽게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은 국사봉전망대 휴게소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 촬영을 위한 최적의 포인트는 휴게소에서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옥정호전망대다. 외안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옥정호를 조망하는 이곳은 주말에는 1시간 전에 올라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사진가들이 붐빈다. 정상에 오르면 옥정호 주변을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멀리 마이산까지도 보인다.
3. 국사봉(國士峰, 475m)
전북 임실군 운암면에 위치하고 있는 국사봉은 해발 475m의 작은 산이다. 하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산을 오르다 보면 하늘과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산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옥정호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교차가 심한 날 새벽에 산을 오르면 옥정호를 감싸고 있는 운해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모습이 장관을 이뤄 많은 사람이 찾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봉산하 잿빛(영촌)이라는 촌락이 산하에 있어 단일 마을에서 진사 벼슬이 12명이 배출되었는데 이 명산의 정기때문이었다고 해서 국사봉이라 명명하였다.
붉은 배롱나무꽃이 매혹적인 담양 명옥헌 원림
담양 명옥헌 원림 정보
조선 중기 오희도(吳希道:1583~1623)가 자연을 벗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1574∼1615)이 명옥헌(鳴玉軒)을 짓고 건물 앞뒤에는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던 정원이다. 소쇄원(瀟灑園)과 같은 아름다운 민간 정원으로 꼽힌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이다. 교육을 하기 위한 적절한 형태로 건물이 지어져 있다. 건물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개울을 타고 오르면 조그마한 바위 벽면에 ‘명옥헌 계축(鳴玉軒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건물 뒤의 연못 주위에는 배롱나무가 있으며 오른편에는 소나무 군락이 있다. 명옥헌 뒤에는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지내던 도장사(道藏祠)의 터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옛 연못이 모두 원형이 아니라 네모 형태를 한 것은 세상이 네모지다고 여긴 선조들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계곡의 물을 받아 연못을 꾸미고 주변을 조성한 솜씨가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그대로 담아낸 조상들의 소담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소쇄원이 그러하듯이 이 명옥헌의 물소리도 구슬이 부딪쳐 나는 소리와 같다고 여겨, 명옥헌이라고 하였다. 건물에는 명옥헌 계축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삼고(三顧)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명옥헌의 오른편에는 후산리 은행나무 또는 인조대왕 계마행(仁祖大王 繫馬杏)이라 불리는 은행나무가 있다. 300년 이상된 노거수로 인조가 왕이 되기 전에 전국을 돌아보다가 오희도를 찾아 이곳에 왔을 때 타고온 말을 매둔 곳이라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