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아라메길 천년미소길 : 마애여래삼존상 ~ 보원사지 ~ 개심사 ~ 해미읍성

서산 아라메길 천년미소길 정보

서산-아라메길-천년미소길

1. 서산 아라메길

서산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로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인데요. 서산아라메길은 천년미소길, 천년미소길-순환, 해미국제성지순례길, 삼길나누길 등산로, 삼길나루길 벚꽃길, 구도범머리길 A, 구도범버리길 B, 도비마루길 등 8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 서산 아라메길 천년미소길

서산 아라메길 천년미소길은 유기방가옥, 유상묵가옥,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보원사지, 개심사, 굴다리벽화를 경유해 해미읍성에서 끝나는 길인데요. 총거리는 21km이고 소요시간 8시간 정도입니다. 참고로 천년미소길 구간과 일부가 겹치는 코스는 서해랑길 64-3코스입니다.
*서해랑길 64-3코스(지선3코스, 길이 18.0km, 소요시간 6시간 30분) : 해미읍성 ~ 개심사 ~ 고풍터널 ~ 운산교

홍천 팔봉산 : 팔봉산매표소 ~ 1봉 ~ 2봉 ~ 3봉 ~ 4봉 ~ 5봉 ~ 6봉 ~ 7봉 ~ 8봉 ~ 팔봉산관광지

홍천 팔봉산 정보

홍천-팔봉산

팔봉산은 산 같지도 않은, 300미터가 조금 넘는 동산이다. 그럼에도 같은 이름의 어떤 산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산이다. 여덟 봉우리가 모두 바위로 되어있어 하늘금이 둥근 톱날처럼 역동적이고 스릴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래 작은 산이지만 대개의 등산객들은 팔봉 넘기를 다 하지 못한다. 철계단과 쇠줄까지 쳐있는데도 마지막 봉우리는 포기하고 돌아서기 일쑤다. 작아도 강단(剛斷) 있는 산이다. 발치 3면은 홍천강이 싸고돈다. 강물은 깊푸르나 물가에는 모래벌이 펼쳐졌다. 그냥 모래 하얀 수반(水盤)에 물이 잘박거리는 수석(壽石)인 것이다. 요산요수를 겸하기에 이보다 나은 데가 있겠는가? 강 건너 서쪽의, 늪둔지라는 우각호(牛角湖) 가에는 밤나무숲이 울창하다. 근래 오토캠핑장을 만든다며 많이 베어버렸지만 아직도 옛모습이 꽤 남아있고 옛 강길도 띄엄띄엄 그대로 있다. 이런 명산(名山)영수(靈水)이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교통이 불편한데도 사람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찾아든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석성, 서산 해미읍성

서산 해미읍성 정보

서산-해미읍성

해미읍성(海美邑城)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전군(全軍)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영성(兵馬節度使營城)이다. 이 성은 고려 말부터 침입이 잦았던 왜구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을 해미로 옮기면서 1417(태종17)부터 쌓기 시작해 1421년(세종3)에 완공되었다. 주 출입구인 진남문(鎭南門)은 잘 다듬어진 돌로 만든 반원형의 홍예문이다. 성 밖은 해자(垓字)로 둘렀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북쪽 해자의 일부를 복원했다. 기록에는 성벽 위에 여장(女墻)이 있었다고 되어 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성곽 둘레는 1500m이며 높이는 5m로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 주변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흔히 '탱자 성'이라는 뜻으로 지성(枳城)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1622년(효종3)까지 230여 년간 병마절도사영의 기능을 하였지만,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간 후 해미 현감이 겸영장(兼營將)이 되면서 해미읍성이 되었다. 충청도 5군영 중 하나인 호서좌영(湖西左營)으로 1895년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까지 243년간 내포 지방 12개 군현의 군권을 지휘하였다. 영장(營將)은 도적이나 반란 세력을 토벌하는 토포사(討捕使)의 임무도 맡았으므로,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시기에 내포 지역의 신자들이 끌려와 죽임을 당하는 순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해미읍성에는 병마절도사와 겸영장이 집무하던 동헌(東軒)을 비롯해 관아(官衙)와 객사(客舍) 등이 꽉 들어차 있어 장관이었다고 한다. 1579년(선조12)에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도 있고,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해미에서 유배 생활하며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1910년 읍성 철거령에 따라 시설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성안으로 민가가 들어서면서 옛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다가 1973년부터 정비에 들어갔고, 1997년부터는 발굴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 해자(垓字) :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
* 여장(女墻) : 몸을 숨기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 겸영장(兼營將) : 지방 수령이 각 지방의 군사를 통솔하는 일을 겸하며 맡아보던 무관 벼슬.

청벚꽂과 왕벚꽃이 활짝 핀 서산 개심사

서산 개심사 정보

서산-개심사

개심사(開心寺)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위치한 충남 4대 사찰중의 하나로써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여 고려 충정왕 2년인 1350년에 처능대사에 의하여 중수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웅전의 기단만이 백제 때의 것이고 건물은 조선 성종 6년(1475)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조선 성종 15년(1484)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전은 창건당시의 기단 위에 조선 성종 15년(1484)에 중창한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으로 그 작법이 미려하여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사찰을 중심으로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석가탄신일을 전후하여 만개 하는 왕벚꽃은 주위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사찰 주변이 온통 왕벚꽃으로 만발해 마치 속세의 시름을 잊은 선경에 와 있는 듯한 감동 마저 느끼게 한다.

국보로 승격된 보원사지 오층석탑이 있는 서산 보원사지

서산 보원사지 정보

서산-보원사지

통일신라 이전부터 사찰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보원사지는 가야산 북쪽에 위치에 있으며 102.886㎡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고려 광종 때는 법인국사 탄문이 파견될 정도로 국가에서 관리하던 큰 사찰이었고 조선시대에 「신중동국여지승람」(1503년)에 '보원사가 상왕산에 있다'는 기록을 볼 때 16세기까지 그 사세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계의 양식기반 위에 통일시라싣애와 고려 초기 석탑양식을 고루 갖춘 오층석탑과 통돌을 장방향으로 만든 석조,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법인국사탑비, 큰 불교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행사기를 다는 당간을 세우기 위한 당간 지주, 법인국사 탄문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부도탑인 법인국사탑 등 5점의 국보 및 보물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