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머리와 용의 꼬리 형상을 닮은 거제 계룡산
거제 계룡산 정보
계룡산은 거제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북에는 고현, 남서로 거제면, 동부면, 북단에는 장평으로 조선소가 들어섰다. 산의 형태가 구천댐에서 서북쪽 가조도 방향으로 길게 뻗어, 그 생김이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하고 있다. 산 정상은 닭의 머리를 닮았고, 꼬리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어 계룡산(鷄龍山)이라 한다. 정상에서 거제면 쪽 바위틈 밑에 의상대가 있었으며, 바위가 병풍을 두른 곳에 절터가 있는데 신라시대 화엄종의 개조(開祖)였던 의상 대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한 곳이라 전해 오고 있다. 산 정상에서 계룡사 쪽으로 내려오는 8부 능선에 샘터가 있다. 거제면에서 고현으로 넘어 다녔던 용산재는 고자산재라 불리며, 그 위쪽 음달바위 정상에 6.25 때 사용하던 UN군 통신대 잔해가 있으며,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계룡산까지 운행하는 모노레일 상부 승차장이 있다.
평창 발왕산 : 대관령 로뎀나무펜션 ~ 평화봉 ~ 왕수리부엉이 쉼터 ~ 레인보우주차장
평창 발왕산 정보
강원도 평창군의 진부면과 대관령면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1,458m). 동쪽 계곡에는 송천(松川)이 심하게 곡류하며 남쪽으로 흐르고, 남서쪽 비탈면에서는 봉산천(鳳山川)이 발원한다. 왕이 날 대지가 있다고 하여 발왕산이라고 했다고한다. 발왕산에는 바랑고개 혹은 바랑재로 부르는 발왕치(發旺峙)가 있다. 산의 서쪽에는 바랑골 혹은 바왕동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산 주변에는 고루포기산 · 옥녀봉 · 두루봉 등이 솟아 있다. 북쪽의 경사가 완만한 용산리 일대에는 용평스키장이 조성되어 있고 영동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일제강점기 이후 발왕산(發旺山)으로 지형도에 기재되었으나 2002년 ‘발왕산(發王山)’으로 변경하였다.
함양 대봉산 : 원통재주차장 ~ 감투산 ~ 계관봉 ~ 천왕봉 ~ 지소마을주차장
함양 대봉산 정보
대봉산 계관봉(鷄冠峰, Gyegwanbong)은 경남 함양군의 병곡면 북쪽과 서하면 남쪽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고도:1,253m). 덕유산에서 비롯한 백두대간 줄기가 백운산에 이르고 백운산에서 동쪽으로 이 산이 되었다. 계관봉 바로 남쪽 아래에는 대봉산 천왕봉(고도 : 1,228m, 천왕점)이 있다. 계관봉은 다른 이름으로 괘관산(掛冠山) 혹은 갓걸이산이라고도 부른다.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갓을 쓴 모습이라고 하여 괘관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는 일제강점기에 이 산의 산세가 좋아서 벼슬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벼슬을 걸어두었다는 의미로 괘관산이라했다고도 해석한다. 조선시대 함양의 관찬지리지와 군현지도에는 계관봉에 관련된 기록은 없다. 『함양군지』에 의하면, “괘관산은 서하면과 병곡면의 경계에 있다. 군 서북쪽으로 30리 거리이다. 백운산이 원산(元山)을 거쳐 이 산이 되었다.”라 고 기록하였다. 괘관산은 2009년 4월부터 국토지리정보원의 고시로 계관봉(鷄冠峰)으로 공식 변경되었다. 계관봉(鷄冠峰)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산의 정상부의 모양이 닭의 벼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양구·화천 사명산과 추곡약수
양구·화천 사명산 정보
강원도 화천군의 간동면과 양구군 양구읍에 걸쳐서 위치한 산이다(고도:1,198m). 전형적인 토산(土山)으로, 파로호와 소양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에서 양구군·화천군, 춘천시 일대와 소양호, 파로호가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사명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뭄이 들면 첩바위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던 전장이기도 하다. 『춘천읍지』에 따르면 “부의 동북쪽 90리에 있는데, 계곡은 깊고 산봉우리는 높아서 절험하다. 병자호란 때 많은 사람들이 피하여 숨어들어 보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여지도서』에는 “도솔산(兜率山, 지금의 동면 팔랑리에있는 산)으로부터 산줄기가 이어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강원도지』에 “사명산은 군 동북쪽 9리에 있다. 골짜기가 깊고 봉우리들이 높고 험해 병자호란 때 사람들이 많이 피해 은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지명사전』에는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방천리, 양구군 양구면 웅진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198m 꼭대기에 오르면 동쪽에 양구, 남쪽에 춘천 서쪽에 화천 북쪽에 철원이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1872지방지도』에는 서면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고, 산자락 양쪽 끝에 읍치에서 사천현(絲川峴, 지금의 양구읍 공리 시락고개)과 수인역(水仁驛)을 거쳐 춘천으로 가는 길과 읍치에서 서천과 낭천강(狼川江, 지금의 북한강) 강변을 따라 낭천(지금의 화천)으로 가는 길이 각각 표시되어 있다. 『청구도』와 『동여도』에는 사명산에 청량사(靑凉寺)가 있었던 것으로 묘사 되어 있다.
제천 동산, 작성산과 청풍문화유산단지 한벽루
제천 동산, 작성산과 청풍문화유산단지 한벽루 정보
동산은 충북 제천시 금성면과 청풍면, 단양군 적성명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 896m). 동산을 대표하는 바위는 남근석으로 건녀편의 작은 동산 자락 계곡에는 여근석이 놓여 있다. 동산의 산행 코스는 무암사 입구에서 시작하여 남근석 능선의 험한 암릉길과 성봉, 중봉을 거쳐 동산 정상을 다녀온 후 새목재에서 바로 하산을 하거나, 새목재에서 작성산, 쇠뿔바위를 경유해 무암사 입구로 내려와도 된다.
작성산은 충남 단양군의 적성면과 제천시 금성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848m). 금수산의 북단에 위치하며 이웃에 있는 동산(東山, 896m)과 더불어 여름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동여지도』에는 단양군의 서면과 청풍군의 덕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단양군 적성면에 있는 산(840m)으로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작성산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주민들이나 등산객들 대부분은 까치성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흔히 금수산에 배바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까치성산에 있다. 작성산 아래에 있는 금성면 성내리 동북쪽 골짜기 무암골에는천년고찰 무암사가 있다.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무암사를 세우려고 아름드리 나무를 잘라 힘겹게 나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운반하여 준덕에 손쉽게 절을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제천 청풍 한벽루(堤川 淸風 寒碧樓, 보물)는 청풍 관아에 딸린 건물로, 고려 축숭왕 4년(1317)에 청풍현 출신 승려 청공이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되면서 청풍현이 청풍군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누각이다. 본채 옆에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형태로, 밀양 영남루(보물), 남원 광한루(보물)와 함께 조선 시대 누각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는 건물로 꼽힌다. 한벽루에서 보는 경치가 매우 빼어나서 조선 시대의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한벽루를 주제로 한시와 그림들을 여러 편 남겼다. 1972년 8월에 대홍수로 건물이 무너지고 현판들도 모두 떠내려가서 1975년에 본래 모습대로 다시 지었다. 원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을 만들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청풍문화유산단지로 옮겼고, 송시열이 쓴 현판은 사진을 보고 다시 만들었다.
*누각(樓閣):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제천 동산과 작성산 연계 산행
제천 동산과 작성산 정보
동산은 충북 제천시 금성면과 청풍면, 단양군 적성명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 896m). 동산을 대표하는 바위는 남근석으로 건녀편의 작은 동산 자락 계곡에는 여근석이 놓여 있다. 동산의 산행 코스는 무암사 입구에서 시작하여 남근석 능선의 험한 암릉길과 성봉, 중봉을 거쳐 동산 정상을 다녀온 후 새목재에서 바로 하산을 하거나, 새목재에서 작성산, 쇠뿔바위를 경유해 무암사 입구로 내려와도 된다.
작성산은 충남 단양군의 적성면과 제천시 금성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848m). 금수산의 북단에 위치하며 이웃에 있는 동산(東山, 896m)과 더불어 여름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동여지도』에는 단양군의 서면과 청풍군의 덕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단양군 적성면에 있는 산(840m)으로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작성산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주민들이나 등산객들 대부분은 까치성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흔히 금수산에 배바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까치성산에 있다. 작성산 아래에 있는 금성면 성내리 동북쪽 골짜기 무암골에는천년고찰 무암사가 있다.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무암사를 세우려고 아름드리 나무를 잘라 힘겹게 나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운반하여 준덕에 손쉽게 절을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