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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꽃지해변의 할미, 할아비바위 일몰

태안 꽃지해변의 할미, 할아비바위 정보

태안-꽃지해변-할미-할아비바위-일몰

꽃지해수욕장은 넓은 백사장과 할미바위, 할아비바위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광을 보여준다. 2개의 바위 너머로 붉게 물드는 낙조는 태안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풍광 중 으뜸으로 꼽힌다.  예부터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꽃지’라는 어여쁜 이름을 얻었다. 긴 백사장을 따라 걷거나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과 가족의 모습은 꽃지해수욕장의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꽃지해수욕장을 상징하는 두 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안면도에 기지를 두었는데, 기지사령관이었던 승언과 아내 미도의 금슬이 좋았다. 그러나 출정 나간 승언은 돌아오지 않았고 바다만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던 미도는 죽어서 할매바위가 되었다. 할미바위보다 조금 더 바다 쪽으로 나간 곳에 있는 큰 바위는 자연스레 할아비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바다로 나간 남편을 맞이하듯 마주선 두 바위가 애틋해 보인다. 썰물 때면 두 바위가 마치 한 몸인 듯 모래톱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여름뿐 아니라 사계절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바위와 어우러진 낙조 때문이다. 해질 무렵 할미바위, 할아비바위 너머로 아름답게 물드는 일몰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진풍경을 펼친다. 

아름다운 여우섬이 있는 태안 안면암

태안 안면암 정보

태안-안면암

안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금산사의 말사다. 사찰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태안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거의 들렀다 가는 필수 탐방 코스다. 그 이유는 사찰 앞쪽으로 펼쳐진 바다 풍광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안면암 앞에서 여우섬까지 부표로 연결되어 바다 위를 걸어 섬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교를 걷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안면암을 찾는다. 부표 위에 목재를 덧대어 만든 다리 위를 흔들흔들 아슬아슬하게 걸어 여우섬까지 가게 된다. 물이 빠지면 부교를 건너는 묘미는 덜해도 갯벌에 사는 다양한 생물을 관찰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안면암의 풍광은 또 다르다. 여우섬을 천천히 돌아본 뒤 뭍으로 돌아오며 만나는 안면암은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3층으로 지어진 안면암의 건축도 독특하다. 마치 단양 구인사를 보는 듯 계단으로 이어진 법당이 극락보전, 비로전, 나한전으로 연결된다. 법당 앞에 서서 바다 풍광을 바라보는 것도 특별하다. 삼성각과 용왕각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무량수전과 신중단의 돌탱화를 비롯해 다양한 탱화도 볼 수 있다. 법당을 둘러싸고 있는 야외공간에는 다양한 크기의 불상과 불탑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가족과 함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가족 단위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다.

태안 팜카밀레 허브농원

태안 팜카밀레 허브농원 정보

팜카밀레-허브농원

팜 카밀레란 농원(Farm)이라는 영문의 이름과 허브를 대표하는 카밀레(Kamille)와의 합성어로서 말그대로 허브를 가꾸고 향기를 전달하는 농원이라는 뜻으로, 200여종의 허브와 500여종의 야생화와 그라스, 습지식물 150여종의 관목들이 땅에 뿌리 내려 살아가고 있다. "팜 카밀레"는 샵과 온실 위주의 기존의 허브농장과는 차별화된 전략, 즉 허브농원이 추구하고자 하는 관상적 가치뿐만 아니라, 원회적 가치, 생활적 가치를 방문하시는 고객 모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12개의 테마 가든과 이곳 팜카밀레에서만 맛볼수 있는 허브빵과 허브로 만든 식사로 허브의 향기를 눈으로, 입으로, 코로 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바다와 육지를 잇는 절, 서산 간월암

서산 간월암 정보

서산-간월암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암자이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만공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간조시에는 뭍(간월도)과 연결되고 만조시는 섬이 되는 지형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이 어리굴젓을 태조에게 진상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1530년(중종 25) 찬술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간월도만 언급되어 있고 간월암은 언급되어 있지 않아 조선 후기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엽에 폐사되었는데 1914년 승려 만공(滿空)이 다시 창건하였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과 메타프로방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과 메타프로방스 정보

담양-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

1.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

1970년대 초반 담양군 담양읍~전북 순창군 금과면을 달리는 국도 24호선 약 8㎞ 구간에 메 타세쿼이아 2000여 그루를 심어 가로수길이 조성됐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나면서 이국풍의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 도열한 모습은 로봇 병정들의 사열식 같다. 전국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이 가로수길이 2000년 5월 국도 확장공사의 불도저에 밀려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했으나 담양 군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군민들이 힘을 합쳐 막아내 지금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2002년에는 산림청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됐고 건설교통부가 주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최우수상도 수상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부터 시작한다. 이 영화에 관객이 많이 들면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관광객이 두 배로 늘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사계절 관광지다. 봄에는 연녹색 새싹이 돋아나고 여름에는 울창한 녹색터널을 만든다. 메타세쿼이아는 낙엽이 지는 침엽수다. 가을에는 붉은 빛에 가까운 갈색이 되었다가 바늘잎이 다 지고 나면 하얀 눈옷으로 갈아입는다.

2. 담양 메타프로방스

메타프로방스는 연간 5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학동리 일대에 조성된 유럽풍 마을 관광단지입니다. 아기자기한 파스텔풍 건물들이 모여있는 메타프로방스는 하늘과  맞닿아 환상적인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해 내고 있습니다. 

대나무 향기따라 떠나는 담양 죽녹원

담양 죽녹원 정보

담양-죽녹원

담양군에서 조성한 담양읍 향교리의 죽녹원이 죽림욕장으로 인기다. 관방제림과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을 끼는 향교를 지나면 바로 왼편에 보이는 대숲이 죽녹원이다. 죽녹원 입구에서 돌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오르며 굳어 있던 몸을 풀고 나면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대바람이 일상에 지쳐 있는 심신에 청량감을 불어 넣어준다. 또한, 댓잎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노라면 어느 순간 빽빽이 들어서 있는 대나무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이 보이고 푸른 댓잎을 통과해 쏟아지는 햇살의 기운을 몸으로 받아내는 기분 또한 신선하다. 죽녹원 안에는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생하고 있다. 죽로차 한 잔으로 목을 적시고 죽림욕을 즐기며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대나무를 올려다보자.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매력 또한 가지고 있는 대나무와 댓잎이 풍기는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최남단, 해남 땅끝전망대와 땅끝탑

해남 땅끝전망대와 땅끝탑 정보

해남-땅끝전망대

1. 해남 땅끝전망대

갈두산(156m) 정상에 있는 땅끝전망대는 횃불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옛날 봉수대가 했었던 역할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9층 건물로 땅끝을 찾는 관광객이 제일 많이 방문하는 곳이며. 이곳에 서면 저멀리 대양에서 불어오는 희망찬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날이 아주 쾌청한 날에는 제주도의 한라산이 보이기도 하며, 저멀리 크고 작은 섬들이 그야말로 비단처럼 펼쳐져 있는 다도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2. 해남 땅끝탑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땅의 끝을  상징하는 삼각뿔 형태의 탑이다. 바다를 향해 꿈을 싣고 나아가는 배의 돛을 형상화 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서서 절망을 털어내고 희망을 안고 돌아간다. 땅끝전망대와 더불어 땅끝 해남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곳의 위도는 북위 34도 17분 32초이다. 탑에는 “이곳은 우리나라 맨 끝의 땅/ 갈두리 사자봉 땅 끝에 서서/ 길손이여/ 땅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라고 새겨져 있다

완도 보길도 윤선도원림 세연정(洗然亭)

완도 보길도 윤선도원림과 세연정(洗然亭) 정보

보길도-윤선도원림-세연정

1. 보길도 윤선도원림(甫吉島 尹善道 園林, 명승 제34호)

보길도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유적이 잘 어우러진 명승으로 격자봉(해발 435m)을 중심으로 하여 북동쪽으로 흐르는 계곡 주변의 부용동지역에 원림문화가 형성되었다.

고산 윤선도(1567~1671)는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강화도에 도착하였으나, 인조는 이미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한 이후였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탐라)로 가는 길에 보길도의 경치에 취하여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고산은 보길도내 경관이 수려한 곳곳에 경처를 명명하고 그곳을 오가며 성정함양과 작품활동을 하였다.

또한 부용동은 그가 13년간 오가며 <어부사시사> 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고산은 노년을 자연과 산수를 노래하다가 85세(1671)로 낙서재에서 일생을 마쳤다. 보길도 부용동원림(명승 제34호)은 세연정을 비롯하여 최근 복원된 곡수당, 낙서재, 동천석실 등에 고산의 경관의식과 자연에 순응하는 전통적 조경수법이 내재된 조선시대 대표적 원림유적이다

2. 세연정(洗然亭)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란 뜻으로, 「고산연보(孤山年譜)」 에서는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 때 지은 정자라 하고 있다. 정자의 중앙에 세연정(洗然亭), 동쪽에 호광루(呼光樓), 서쪽에 동하각(同何閣), 남쪽에 낙기란(樂飢欄)이란 편액을 걸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七岩軒)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