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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도솔산 선운사

고창 선운사 정보

선운사
선운사(禪雲寺)는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뒤 통일신라기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효정 스님이 퇴락한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절을 크게 중창한 스님은 행호국유 스님이시다. 행호 스님은 성종의 숙부인 덕원군의 도움을 받아 1474년에 2층의 장육전과 관음전을 완공한 이래 10여 년에 걸친 대작 불사를 통하여 선운사의 옛 모습을 되찾아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임에도 황실의 원찰로 법등을 환하게 밝히게 되었다. 그러나 선조 3년(1597)의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고, 이후 광해군 5년(1613) 불에 일관 스님과 원준 스님이 힘을 합하여 1619년까지 6년에 걸쳐 보전, 법당, 천불전, 지장전, 부도전, 능인전을 중건하여 다시 사찰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720년까지 중건과 중수가 계속되었고 그 뒤에는 외형적인 불사보다는 걸출한 고승대덕들이 많이 배출되어 사격(절의 위상)을 드높였다. 조선후기 화엄학의 대가인 설파상언 스님과 조선후기 선문의 중흥조 백파긍선 스님을 비롯하여 구한말의 청정율사 환응탄영 스님, 그리고 근대불교의 선구자 석전 박한영 스님이 선운사에 출가하거나 수행하시면서 당대의 불교를 이끌었던 명문사찰이 되었다. 선운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290호이며 여기에 모셔진 세 분의 부처님들은 보물 제1752호이다. 박물관에 불보로 전시되어 있는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79호이고, 영산전목조삼존불상, 육층석탑, 범종, 만세루,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 석씨원류, 선운사사적기 등의 중요한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경내의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다. 현재, 조계종 초기불교 전문교육기관인 선운사 불학승가대학원에서는 스님들이 불학 연찬에 매진하고 있으며, 산내 암자인 참당암에서는 수좌 스님들이 참선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혜명(지혜)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불교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선운사 창건주이신 검단 스님의 중생구제의 원력을 이어 고창군종합사회복지관 등 여러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승려 노후 수행마을을 조성하여 노 스님들이 아름답게 노후를 회향(돌려줌)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다. 선운사 사부대중은 도솔천, 그 희망의 나라를 꿈꾸며 불자는 물론 지역 주민들과 함께 복지와 문화, 수행 공동체를 이루고자 오늘도 정진하고 있다.

호남의 내금강, 고창 선운산

고창 선운산 정보

고창-선운산

선운산(禪雲山) 전북 고창군의 아산면과 심원면 경계에 걸쳐 있는 선운산도립공원의 중심으로 수리봉을 주봉으로 하는 산이다(고도:336m). 주진천(인천강) 서쪽에 위치하여 천왕봉을 중심으로 개이빨산, 청룡산, 비학산, 경수산, 구황봉 등이 북서쪽으로 흐르는 선운천 골짜기만을 살짝 열어둔 채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어 마치 천혜의 요새를 떠오르게 한다. 원래 도솔산(兜率山)이라고 하였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하는‘도솔’이나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선운’ 모두 불교와 관련된 명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무장)에는“선운산은 선(禪)을 선(仙)으로도 쓴다. 현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져 있다.”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동일문헌에 소개되어 있는 선운산곡(禪雲山曲)은 무등산가·지리산가·정읍사 등 다섯 편의 백제가요 중 하나이다. 『고려사』(악지)에 “선운산은 장사 사람이 병역에 나갔는데, 기한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그의 처가 남편을 생각하고 선운산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부른 노래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무장현 지도에 선운산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해동지도』 에 무장현 북단에 선운산이 기재되어 있으며 도솔암, 선운사가 함께 그려져 있다. 

창녕박물관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박물관과 교동 가야고분군 정보

창녕박물관-교동-가야고분군
1. 창녕박물관

창녕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창녕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및 계성고분군 등 창녕의 고분군에서 출퇴된 유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데요. 특히 전시관 중앙홀에는 고총고분의 축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관(디오라마)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고대사회 고분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2.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구릉 일대에 조성된 고대 비화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이다. 고분군의 범위는 창녕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릉 경사면에서 서쪽으로 뻗은 가지능선까지 이어진다.고분군에는 봉분이 남아 있는 무덤 120여 기, 봉분이 남아 있지 않은 무덤 180여 기 등 모두 300여 기가 넘는 무덤이 있다. 고분군은 무덤의 분포에 따라 크게 4개의 지구로 나누어지며, 각 지구에는 대형 무덤을 둘러싸고 중소형 무덤이 밀집 분포하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무덤의 구조는 대부분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과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이다. 하나의 봉분 안에 하나의 덧널이 있는 형태이며, 별도의 딸린덧널(副槨)이나 순장덧널(殉葬槨)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앞트기식돌방무덤은 고분군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다. 가야 고유의 무덤 구조인 구덩식돌덧널무덤에 입구를 설치한 특이한 형태로 비화가야만의 독특한 무덤 형태로 알려져 있다. 봉분은 만들어진 위치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공간을 구획하여 쌓아 올렸는데, 이는 철저한 계획에 의해 무덤이 만들어졌음을 말해준다. 비화가야를 대표하는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이자 낙동강을 통한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의 여러 가야는 물론이고 신라, 백제,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라·백제에서 전해지거나 영향을 받은 장식말갖춤(裝飾馬具), 금동관(金銅冠), 청동세발손잡이솥(靑銅製鐎斗), 둥근고리큰칼(環頭大刀), 은제허리띠와 대가야의 귀걸이, 일본산 녹나무로 만든 관, 사슴뿔로 만든 긴칼(長劍), 조개장식 말띠꾸미개(貝製雲珠) 등이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그 외 출토된 토기는 비화가야만의 특색 있는 무늬와 형태를 가진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를 비롯해 바리모양그릇받침(鉢形器臺), 긴목항아리(長頸壺)가 대표적이다.무덤의 구조와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대부분의 무덤들이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창녕이 신라로 편입된 이후인 7세기까지 고분군 내에 신라식 돌방무덤이 소규모 군집으로 만들어지고 있어 가야에서 신라로의 무덤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의 성립과 발전, 가야에서 신라로의 전환 과정, 고대 한반도 안팎의 정치세력 간 교류와 교섭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중요한 기념물이다.
* 두 개의 봉분이 표주박처럼 서로 이어 붙어 있는 무덤 양식.
** 돌로 세 벽을 쌓고 천장돌을 덮어 무덤방을 만든 다음, 한쪽으로 시신을 넣고 무덤 입구를 막아 추가 합장이 가능하도록 만든 무덤 양식.

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는 도피안사

철원 도피안사 정보

도피안사
도피안사(到彼岸寺, Dopiansa Temple)는 철원 8경 중 하나이기도 하며 우리나라가 지나온 수많은 재난속에서도 국보급 문화재의 원형이 남아있는 곳인데요. 도피안사에는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높이 4.1m의 화강암 재료로 된 3층 석탑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DMZ 평화의 길 15코스 : 백마고지역 ~ 소이산 ~ 철원역사문화공원 ~ 도피안사 ~ 학저수지 ~ DMZ두루미평화타운

DMZ 평화의 길 15코스 정보

DMZ-평화의길-15코스
DMZ 평화의 길 15코스는 백마고지역에서 시작하여 철원역사문화공원, 노동당사, 도피안사, 학저수지 등을 경유하여 DMZ두루미평화타운까지 이어지는 19.4Km의 길로 소이산, 노동당사 등 6.25전쟁과 관련된 유적지 등을 둘러볼 수 있는 길입니다. 특히 도피안사에서는 국보 철조비로나사불좌상과 블랙야크 역사문화대장정 인증지인 보물 3층 석탑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수마노탑이 있는 정선 정암사

정선 정암사 정보

정암사-수마노탑
정암사(淨巖寺)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인 자장(594-599~653-655)이 지은 사찰이다. 정암사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자장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장은 당나라의 불교를 배우는 과정에서 산시성과 오대산에 이르러 문수보살을 직접 만나는 신비한 종교 체험을 하게 된다. 이때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와 승려의 법의인 가사 등의 성물을 받는다. 이후 선덕여왕의 요청으로 신라로 귀국하여 황룡사구층목탑과 통도사, 태화사 등을 지었다. 그리고 고구려의 침략 위협으로 소란스럽던 동북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평창 오대산을 새로 세우고 현재 함백산으로 불리는 태백산에 석남원을 지었다. 석남원은 '신령한 바위의 남쪽' 이라는 의미로 현재 수마노탑이 위치한 바위를 기점으로 하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정암사, 즉 '깨끗한 바위' 라는 의미가 여기서 유래된것이다. 자장은 정암사에서 문수보살과의 만남을 기다리다 입적한다. 이로 인해 정암사 뒤편에는 자장의 유해를 모신 바위굴과 조사전이 세워졌다. '정암사사적기' 에는 바위굴이 때때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신령한 곳임이 기록되어 있다. 정암사는 자장의 계율 정신을 계승해 고려시대까지 계율을 연구하는 전통이 유지된다. 또한 자장이 모신 부처님 사리와 수마노탑 건립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오대산 중대와 통도사, 법흥사와 더불어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도처이자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월 요선정 및 요선암 돌개구멍

영월 요선정 및 요선암 돌개구멍 정보

요선정
요선정은 무릉도원면 무릉리 지역민의 계 조직인 요선계가 중심이 되어 1915년에 세웠다. 남한강의 지류 주천강 상류인 이곳은 풍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조선 19대 임금 숙종의 어제시를 봉안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어제시는 숙종이 직접 하사하여 주천면 주천강 북쪽 언덕에 있던 청허루에 봉안하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청허루가 훼손되었고 숙종의 어제시 현판은 일본인이 소유하게 되었다. 이에 요선계 회원들은 어제시 현판을 되찾아. 이를 봉안하기 위해 요선정을 세웠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철감국사 도윤과 징효대사가 그리 멀지 않은 사자산 기슭에 흥년선원을 세우고 자주 이곳에 와서 포교했다고 하여, 당시 이곳에 작은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요선암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43호로 지정된 이곳 주천강변에는 단단한 암석인 중생대 쥐라기 화강암이 둥글게 움푹 파인 모양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요선암 돌개구멍(포트홀: pothhole)이라 부른다. 돌개구멍은 강물에 있는 암석의 갈라진 틈이나 오목한 곳으로 모래와 자갈이 들어가 소용돌이치는 물살로 인하여 회전운동을 하면서 주변의 암반을 깍아 내린 것이다. 강물의 흐르는 속도가 빠를수록, 흐르는 물의 양이 증가하면서 물은 더 빠르게 돌게 되어 돌개구멍의 크기는 점점 커진다.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인 영월 법흥사

법흥사(法興寺) 정보

법흥사
법흥사는 소나무숲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천오백년 전 통일신라 시기에 자장스님이 중국 당나라에서 수행 중에 모시고 온 세존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오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이다. 사자산문 흥령선원으로 그 시기의 불교가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 아홉개의 중심수행 도량인 구산선문 중의 하나였다. 몇차례의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였고, 1991년 현재의 적멸보궁을 탄허스님의 제자인 삼보화상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5대 적멸보궁 : 양산 통도사 적멸보궁,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의 적멸보궁, 영월 법흥사의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의 적멸보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