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연대도, 만지도

통영 연대도, 만지도 정보

연대도-만지도

연대도(烟臺島, Yeondaedo)는 통영시의 산양읍 연곡리에 있는 섬이다. 미륵도의 남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학림도, 서쪽으로 만지도 그리고 동쪽으로 오곡도가 인접해 있다. 중앙의 연대봉(220m)을 중심으로 원추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북서쪽의 완사면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지형이 가파른 편이다. 해안은 북서쪽 해안은 모래와 자갈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높이 10m의 해식애로 이루어진 암석해안이다. 섬 북쪽에 연대도 패총(사적 제335호)이 있으며 신석기 시대를 비롯하여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의 토기와 자기들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가운데 일본 신석기 시대 토기들도 있어 당시 일본과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고성)에는 “연대도(煙臺島)는 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라고 수록하였고, 『성종실록』에는 연대도(延臺島)로 기록하였다. 『호구총수』에는 춘원면 연대도리(烟臺島里)였으며, 『1872년 지방지도』 중에서 당포진과 삼천진의 지도에는 연대도로 표시하였다. 『광여도』(고성)에는 조도연대(鳥島烟臺)로 나오는데, 조도는 북쪽에 인접한 학림도의 옛 지명으로 두 섬을 묶어 함께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지명은 왜적의 침략에 대비한 연대가 산 정상에 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고 전하며, 연대봉에 유적이 남아 있다.

만지도(晩地島, Manjido)는 인근의 다른 섬에 비해 비교적 늦게 사람이 입주한 섬이라는 데서 유래하여 늦은섬이라고 하며, 만지도(晩地島)는 한자지명이다. 또한, 섬의 형상이 지네와 같이 생겼다 하여 만지도(晩地島)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만지도(晩地島)는 지네에, 인근 북쪽에 위치한 저도(楮島)는 닭, 인근 동쪽에 위치한 연곡리 연대도(烟臺島)는 솔개에 비유되어 서로 먹이 사슬에 있어 함께 번성할 길지(吉地)라 한다. 저림리 저도마을 남쪽, 연곡리 연대마을 서쪽에 소재하고 있는 만지도(晩地島)는 면적이 0.232㎢이며, 해안선 길이는 2.0㎞이다. 통영시에서 남서쪽으로 10㎞에 있으며 동쪽에 연대도와 자란목도라는 암초로 연결되고, 북동쪽에학림도와저도,북쪽에대소장도(大小長島)와곤리도(昆里島),서쪽에추도,남쪽에내외부지도(內外夫支島)등이있다.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


금산 진악산 정보

진악산
충남 금산군의 남이면 성곡리·석동리·상금리·하금리와 금산읍 음지리·계진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732.3m). 『신증동국여지승람』(금산)에 “서대산은 북방을 진수하고 진악산은 남방을 가리었다.”고 하고, 동일 문헌에 “진악산은 군의 남쪽 7리에 있다. 동쪽 봉우리 아래에 석혈(石穴)이 있는데 서너 걸음 들어 가면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전하는 말로는 용이 사는 곳이라고 하는데 날이 가물 때 호랑이 머리를 집어넣으면 감응이 있다고 한다.”고 하여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금산군지』(1969)에서는“진악산의 정기는 바로 금산의 정기로 동일시되어 왔다. (중략) 진악산은 금산의 수호신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고, 1987년 『금산군지』에도 “금산의 진산(鎭山)으로 금산의 정기를 대표하는 산이기도 하다.”라 하여 금산의 중심 산으로 진악산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진악산이 금산의 진산 또는 주산으로 기록된 것은 확인되지 않고, 『여지도서』(금산지도)에 진악산이 있는 남쪽이 지도의 상단에 표시된 경우는 있다. 보통 고지도의 표현에서 지도의 위쪽에는 지역의 진산 또는 주산이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금산의 경우 지금은 그 이름조차 사라진 읍치 북쪽의 소산(所山, 비비미)이 진산이자 주산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흥미로운 부분이다. 일설에는“진악이란 명칭이 즐거움이 크게 일어나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옛날 홍수가 났을 때 이 산만 지네만큼 남았다 하여 진악산이 되었다.” 는 전설도 전해진다. 산에는 관음봉·문필봉·노적봉· 물굴봉 등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 관음봉은 강처사가 관음굴에서 어머니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산신령의 계시로 인삼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날고 있는 학을 닮은 섬, 통영 학림도

통영 학림도 정보

학림도

학림도(鶴林島)는 통영시의 산양읍 저림리에 있는 섬이다. 미륵도의 남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저도, 남쪽으로 연대도와 인접해 있다.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길게 활처럼 휜 모양을 하고 있어 천연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해안선은 북쪽은 사빈해안, 남쪽은 암석해안이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조도(鳥島)는 춘원면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라고 수록하였다. 『호구총수』에도 춘원면 조도리로 적고 있다. 『조선지도』(고성), 『1872년 지방지도』(당포진)에는 조도로, 『광여도』(고성)와『영남지도』(고성)에는 남쪽에 인접한 연대도와 합쳐 조도연대(鳥島烟臺)로 표시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학림동(鶴林洞), 새섬으로 기록하였다. 조도, 새섬이라는 지명은 섬의 모양이 하늘을 나는 새와 비슷하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백로와 왜가리가 서식하여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위치한 노적사

북한산 노적사 정보

노적사

1711년(숙종 37)에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 성내의 군사요충지에 사찰 13곳을 건립하여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맡겼다. 이런 사찰을 승영사찰(僧營寺刹)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병영의 역할을 겸하게 하였다. 노적사도 승영사찰이었는데 당시에는 진국사(鎭國寺)라고 했다. 위치로 미루어 중성의 수축과 방어를 맡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산성 축성 과정과 현황을 정리한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에는 "진국사는 노적봉(露積峯) 아래에 있으며, 85칸으로, 승려 성능(聖能)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경내에 있는 대웅전, 나한전, 삼성각, 종각,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석불입상은 모두 최근에 지은 것으로, 옛 진국사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경내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돌사자상만이 옛 진국사의 존재를 알려준다. 돌사자상의 몸통에는 안장이 채워져 있으며 안장 위에는 대좌가 마련되어 있다. 이 대좌에는 조선후기에 유행한 문수보살 동자상이 모셔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산 노적사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5년 3월 30일 일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북한산 원효봉 + 백운대 + 태고사 + 노적사

3.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311-35

4. 사찰 관람 코스 : 노적사 입구 → 대웅전, 동인당, 나한전 → 극락전, 범종각, 보림루 → 운하교

북한산 노적사 다음지도 및 대중교통편

1. 북한산 노적사 다음지도

2. 대중교통편 : 북한산 노적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노적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북한산 노적사 여행기 및 사진

1. 노적사 입구

노적사-입구

▲ 오늘은 블랙야크알파인클럽(BAC) 챌린지 프로그램 중 하나인 '11 TEMPLE TOUR' 사찰인 태고사에 이어 노적사를 소개해드립니다. 현재 위치는 노적사 입구(←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대동문 2.4km, 노적사 →)인데요. 오른쪽 노적사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노적사-돌계단

▲ 노적사로 올라가는 돌계단입니다. 돌계단 양쪽으로 露積寺(노적사)와 鎭國路(진국로)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공덕탑

▲ 공덕탑(功德塔)

노적사-노적봉

▲ 노적사와 노적봉입니다. 앞으로 보이는 전각은 보림루와 범종각이고 위쪽으로 대웅전이 있습니다.

극락전

▲ 노적사 대웅전 계단을 오르기 전에 바라본 극락전(極樂殿)

범종각-보림루

▲ 범종각(梵鐘閣)과 보림루(保任樓)

2. 노적사 대웅전, 동인당, 나한전

노적사-대웅전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인증위치인 "노적사 대웅전"입니다. 대웅전 앞에는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 63호인 '고양 노적사 석사자상'이 있습니다.

고양 노적사 석사자상(石獅子像)은 전통사찰로 지정된 북한산 노적산 대웅전 앞에 위치해 있다. 노적사의 본래 이름은 진국사로 조선 숙종 38년(1712)에 성능대사가 창건했다고 북한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으로 크게 훼손되었다가 1960년대부터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노적사 석사좌상은 사찰의 입구인 백운동 계곡에 있었으나 1970년대 북한산에 주둔하고 있던 군장병에게 발견되어 지금의 노적사로 옮기게 되었다. 사자상의 조각수법과 양식, 크기 등을 통해 볼 때 조선조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개를 틀어 옆쪽을 보고 있는 모습, 머리 부분부터 목선까지 조각된 갈기, 두터운 눈썹 아래에 툭 불거진 두눈, 다문 입술 사이로 드러난 뼈드렁니 등의 표현에서 해학적인 요소를 볼 수 있다. 생김새를 볼 때 문수보살, 문수동자를 태운 좌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노적사 석사자상은 고양지역 유일의 석사자상 이라는 점, 석상의 조각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점, 곳곳에 해학적인 모습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그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웅전에서-내려다본-범종각-보림루-극락전

▲ 노적사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범종각, 보림루, 극락전

동인당-나한전

▲ 동인당(東印堂)과 부처님의 제자인 아라한을 모신 나한전(羅漢殿)

▲ 동인당, 약사미륵상, 나한전과 성림당 월산 대종사 기념비입니다. 월산 대종산 기념비 오른쪽으로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있는 것 같네요.

대웅전에서-내려가는-계단

▲ 대웅전에서 내려가는 계단

3. 극락전, 범종각, 보림루

범종각-보림루

▲ 범종각과 보림루

노적사-대웅전

▲ 보림루에서 뒤돌아본 노적사 극락전, 대웅전

보림루-범종각

▲ 뒤돌아본 보림루와 범종각

공원문화유산지구-안내판

▲ 공원문화유산지구 안내판

전통사찰 노적사 일원은 사찰지이며, 국립공원 내 문화재 보전을 위해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곳입니다. 공원문화유산지구는 국민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탐방환경 조성을 위해 다수의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전통사찰의 기여와 협력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국민들께서는 자연환경과 전통사찰의 수행환경 및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운하교

노적사-표지석과-운하교

▲ 노적사 표지석과 운하교

노적사-표지석

▲ 전통사찰 노적사 표지석

운하교

▲ 오늘은 노적사 입구에서 대웅전, 동인당, 나한전, 극락전, 범종각, 보림루를 차례대로 둘러보고 운하교에서 블랙야크 '11 TEMPLE TOUR' 인증지인 노적산 탐방을 마쳤는데요.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바로 올라오실 경우는 운하교부터 시작해서 노적사 입구로 내려오시면 되겠습니다.

고려 후기 승려인 보우가 창건한 북한산 태고사

북한산 태고사 정보

태고사

고려 말기에 대표적인 선승이자 왕사·국사를 지낸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가 창건한 사찰이다. 보우는 중흥사를 중창하고 그 동편에 암자를 지어 5년간 머물렀는데, 이 암자가 바로 지금의 태고사(太古寺)이다. 고려 멸망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으나, 북한산성 축조와 함께 승병이 주둔하는 승영사찰로 1713년에 중창되었다. 이 절을 중창한 성능대사가 지은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에는 태고사의 규모는 131칸에 이르면, 경내에는 서적 출판용 목판 5700여 매와 활자 11두(斗), 화약용 흑탄 1,600여 석을 비축하였다"라고 전한다. 현재 태고사에는 지정문화재로 보우의 행적을 기록한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와 그의 사리탑인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이 있으며, 비지정문화재로 조선 후기 양식의 사리탑이 다수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1910년대까지 경내에 5층 석탑이 남아 있었고, 서산대사 휴정(休靜)이 지은 시를 새긴 현액과 영조가 직접 쓴 현액이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둔산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선야산

완주·금산 선야산 정보

선야산
충남 금산군과 전북 완주군에 걸쳐있는 선야산(759m)은 금산의 진악산보다 14m 높은 금산의 명산으로 불편한 교통 오지에서 금산산림문화타운이 조성되고 산객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는데요. 대둔산과 천등산의 절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서울·고양 북한산 : 북한산성 입구 ~ 원효봉 ~ 백운대 ~ 노적사 ~ 대서문 ~ 북한산성 입구

북한산 정보

북한산-백운대
북한산(北漢山 Bukhansan)은 서울시의 성북구·종로구·은평구·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836m). 본래 한산(漢山)이라 불렸는데 ‘큰 산’이라는 뜻의‘산’을 한자로 차음 하여 표기한 것이다. 한산이란 이름은『삼국사기』,『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등에 보이며, 서울 지방의 옛 이름을 한산·북한산·북한산성·북한성·한양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산은 처음에는 산 이름이 아니라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에는 “양주 지경에 있다. 화산(華山)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하였다. 평강현(平康縣)의 분수령(分水嶺)에서 잇닿은 봉우리와 겹겹한 산봉우리가 높고 낮음이 있다. 또 삼각산이 되니, 실은 경성(京城)의 진산(鎭山)이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 온조가 남쪽으로 나와서,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찾았으니, 바로 이 산이다.”라고 하여 여러 다른 이름들이 보인다. 부아악은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 형상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아가 불의 표기이므로 부아 → 불 → 화(火) → 화(華)로 바뀌어 화산이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화산·화악은 세 봉우리가 연꽃이 핀 것과 비슷하다 하여 연화산(蓮華山)의 준말로 쓴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려사』의 삼각산 승가굴의 기록이나,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과『북한지』에 따르면 삼각산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일반화된 이름이다. 삼각산은 인수봉·백운봉·만경봉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루어 나란히 있는 모습 때문에 유래되었는데, 근래에까지 삼각산이란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된 내용을 기록한『북한지』가 출간된 이후 북한산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세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백운봉과 동쪽 인수봉(811m)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졌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801m)는 일명 국망봉(國望峰)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만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위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만경대 서남쪽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노적더미로 의심하였다는 노적봉(718m)과 진흥왕순수비가 있어 이름 붙여진 비봉(527m)이 있다.

삼각산 적멸보궁 삼천사

북한산 삼천사 정보

삼천사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元曉)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2년(조선 성종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입상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三千寺)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평산 성운 화상의 발원과 삼천사 불자들의 염원을 함께하여 조성된 세존진신사리불탑은 한국 석탑의 대표로 뽑는 국보 제48호 오대산 월정사 9층 석탑과 인도 석탑의 대표인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아쇼까 (석주 4두(四頭) 사자상) 대탑을 원형 그대로 접목하여 탑신을 15m 크기로 한국/인도형 세존진신사리불탑으로 나투었다. 또한, 현 삼천사 위치에서 2km 위쪽의 옛 삼천사 터에서 발굴된 대형 석조(石槽)와 동종(銅鐘), 연화대좌(蓮花臺座), 석탑기단석(石塔基壇石),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대지국사(大知國師) 법경(法鏡)의 비명(碑銘)등 600여 점의 문화재가 발굴되었고 그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받아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70년대에 삼천사 주지로 부임한 평산 성운 화상이 경내에 위치한 마애여래입상이 천년 고불(古佛)임을 입증하여 보물 제657호로 지정받고 50여 년의 중흥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30여 동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불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문화재 전통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연 20여만의 수많은 방문객들의 기도도량, 참회도량, 수행도량으로서 참배하는 사찰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북한산 삼천사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북한산 의상봉 + 국녕사 + 삼천사

3. 소재지 : 서울 은평구 연서로54길 127

4. 사찰 관람 코스 :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 → 산령각·나한전 → 대웅보전 → 세존진신사리불탑 → 일주문

북한산 삼천사 다음지도 및 대중교통편

1. 북한산 삼천사 다음지도

북한산-삼천사-다음지도
카카오맵

2. 대중교통편 : 북한산 삼천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삼천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북한산 삼천사 여행기 및 사진

1.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 산령각, 나한전

삼천사

▲ 오늘은 블랙야크알파인클럽(BAC) 챌린지 프로그램 중 하나인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사찰인 국녕사에 이어 삼천사를 들렸습니다.

마애여래입상-산령각

▲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三川寺址 磨崖如來立像, 보물)과 산령각(山靈閣)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마애불로서 삼천사 경내 계곡의 병풍바위에 각인되어 있다. 두광(頭光)부터 연화좌(蓮花座)까지 조각의 전체 높이는 약 3.03m이고 불상의 높이는 약 2.6m에 달한다. 상호(相好, 부처님의 얼굴)와 불신(佛身)의 상반부는 양감 있게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고, 군의(裙衣)와 광배 그리고 연화좌는 선(線)새김으로 묘사하여 마치 조각 작품인데도 선묘화(線描畵) 같은 느낌을 준다. 불상의 어깨 좌우에 큰 사각형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을 감싸는 목조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배(光背)는 두광과 신광의 표현에 차이를 두고 있다. 두광은 이중의 동심원으로 조각하였고 신광(身光)은 한 줄로 새겼다. 육계(肉髻)는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으로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상호는 반쯤 눈을 뜨고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어서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양 눈썹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있는 있는데 보석을 감입하고 있다. 법의(法衣)는 전반적으로 다소 두껍게 나타내어 새로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대의(大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싼 통견으로 길게 발등 위까지 늘어져 있고 그 안에 입은 내의(內衣)가 가슴부근에 비스듬히 보인다. 내의를 묶은 띠 매듭이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어 장식성을 더한다. 수인(手印)을 살펴보면, 오른손은 허벅지 부근으로 내려뜨려 옷자락을 살며시 잡고 있는 듯 표현하였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배 앞쪽에 위치해 두고 있다. 오른손에 비해 왼손의 동세가 더 크게 표현되어 있는 것에 비례하여 대의의 주름 개수도 차이를 두고 있어서 묘사력을 갖춘 실력 있는 조각가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발밑의 대좌(大坐)는 연꽃잎이 위쪽으로 피어난 앙련(仰蓮)의 연화좌로 표현하였는데 꽃잎은 중엽으로, 꽃잎 사이에는 간엽까지 표현하여 내의의 띠 매듭과 더불어 장식성을 더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원만하고 다소 단조로워 보이지만, 불상의 위쪽과 아래 부근의 조각기법에 변화를 둔 점, 광배 역시 두광과 신광의 차이를 둔 점, 육계는 나발 없이 민머리로 표현하면서도 띠 매듭과 연화좌는 장식성을 가미한 점 등에서 단아함 속에서 다양함을 구사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마애불이라고 할 수 있다.

삼천사지는 고려시대의 유명한 법상종(法相宗) 사찰 터로 고려 전기 현종대에 크게 활약했던 대지국사(大智國師) 탑비(시도유형문화유산)도 발굴되었다. 삼천사지 대지국사 탑비는 마애여래입상과 함께 삼천사의 고려시대 사찰 터의 가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나한전

▲ 나한전(拏漢殿, 오백성중전)

2. 삼천사 대웅보전

삼천사-대웅보전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인증위치인 "삼천사 대웅보전"입니다.

일주문으로-내려가는-길

▲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길

뒤돌아본-대웅보전

▲ 뒤돌아본 대웅보전

3. 세존진신사리불탑

세존진신사리불탑

▲ 세존진신사리불탑

세존진신사리 불탑은 한국 석탑의 새로운 양식으로, 오대산 월정사 8각 9층탑(국보 제48호)과 초전법륜지인 인도 사르나트아쇼까 석주 4두 사자상을 원형 그대로 접목한 탑신 15m로서 삼천사 사부대중의 염원과 아쇼까 왕의 지극한 발원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상륜부의 아쇼까 4두 사자상은 8정도의 가르침이 담긴 법륜에 안치되었고, 9류 중생의 안녕과 보살이 화엄 10지에 이른 후 정토세계의 9품 연대에 오르기를 발원하는 보리심이 불탑에 그대로 묘사되었다. 기단과 탑신부에는 석굴암 8부 신장과 사천왕상, 8보살상과 8여래불이 양각으로 조각되었다. 불탑 복장에는 오색영롱한 세존사리 7과와 불자들이 소지한 금은 칠보로 염원과 정성이 담긴 공양물인 봉안되었다.

4. 일주문

일주문

▲ 뒤돌아본 삼각산 삼천사(三角山 三千寺) 일주문

5층-석탑

삼천사-안내판

▲ 오늘은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인증지 증 하나인 삼각산 적멸보궁 삼천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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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정보

선운사
선운사(禪雲寺)는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뒤 통일신라기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효정 스님이 퇴락한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절을 크게 중창한 스님은 행호국유 스님이시다. 행호 스님은 성종의 숙부인 덕원군의 도움을 받아 1474년에 2층의 장육전과 관음전을 완공한 이래 10여 년에 걸친 대작 불사를 통하여 선운사의 옛 모습을 되찾아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임에도 황실의 원찰로 법등을 환하게 밝히게 되었다. 그러나 선조 3년(1597)의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고, 이후 광해군 5년(1613) 불에 일관 스님과 원준 스님이 힘을 합하여 1619년까지 6년에 걸쳐 보전, 법당, 천불전, 지장전, 부도전, 능인전을 중건하여 다시 사찰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720년까지 중건과 중수가 계속되었고 그 뒤에는 외형적인 불사보다는 걸출한 고승대덕들이 많이 배출되어 사격(절의 위상)을 드높였다. 조선후기 화엄학의 대가인 설파상언 스님과 조선후기 선문의 중흥조 백파긍선 스님을 비롯하여 구한말의 청정율사 환응탄영 스님, 그리고 근대불교의 선구자 석전 박한영 스님이 선운사에 출가하거나 수행하시면서 당대의 불교를 이끌었던 명문사찰이 되었다. 선운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290호이며 여기에 모셔진 세 분의 부처님들은 보물 제1752호이다. 박물관에 불보로 전시되어 있는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79호이고, 영산전목조삼존불상, 육층석탑, 범종, 만세루,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 석씨원류, 선운사사적기 등의 중요한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경내의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다. 현재, 조계종 초기불교 전문교육기관인 선운사 불학승가대학원에서는 스님들이 불학 연찬에 매진하고 있으며, 산내 암자인 참당암에서는 수좌 스님들이 참선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혜명(지혜)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불교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선운사 창건주이신 검단 스님의 중생구제의 원력을 이어 고창군종합사회복지관 등 여러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승려 노후 수행마을을 조성하여 노 스님들이 아름답게 노후를 회향(돌려줌)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다. 선운사 사부대중은 도솔천, 그 희망의 나라를 꿈꾸며 불자는 물론 지역 주민들과 함께 복지와 문화, 수행 공동체를 이루고자 오늘도 정진하고 있다.

서울·고양 북한산 : 북한산성 입구 ~ 의상봉 ~ 나한봉 ~ 삼천사 ~ 하나고 버스정류장

북한산 정보

북한산-의상봉

북한산(北漢山, Bukhansan)은 서울시의 성북구·종로구·은평구·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836m). 본래 한산(漢山)이라 불렸는데 ‘큰 산’이라는 뜻의‘산’을 한자로 차음 하여 표기한 것이다. 한산이란 이름은『삼국사기』,『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등에 보이며, 서울 지방의 옛 이름을 한산·북한산·북한산성·북한성·한양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산은 처음에는 산 이름이 아니라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에는 “양주 지경에 있다. 화산(華山)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하였다. 평강현(平康縣)의 분수령(分水嶺)에서 잇닿은 봉우리와 겹겹한 산봉우리가 높고 낮음이 있다. 또 삼각산이 되니, 실은 경성(京城)의 진산(鎭山)이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 온조가 남쪽으로 나와서,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찾았으니, 바로 이 산이다.”라고 하여 여러 다른 이름들이 보인다. 부아악은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 형상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아가 불의 표기이므로 부아 → 불 → 화(火) → 화(華)로 바뀌어 화산이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화산·화악은 세 봉우리가 연꽃이 핀 것과 비슷하다 하여 연화산(蓮華山)의 준말로 쓴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려사』의 삼각산 승가굴의 기록이나,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과『북한지』에 따르면 삼각산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일반화된 이름이다. 삼각산은 인수봉·백운봉·만경봉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루어 나란히 있는 모습 때문에 유래되었는데, 근래에까지 삼각산이란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된 내용을 기록한『북한지』가 출간된 이후 북한산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세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백운봉과 동쪽 인수봉(811m)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졌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801m)는 일명 국망봉(國望峰)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만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위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만경대 서남쪽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노적더미로 의심하였다는 노적봉(718m)과 진흥왕순수비가 있어 이름 붙여진 비봉(527m)이 있다.

국녕대불을 모신 북한산 국녕사

북한산 국녕사 정보

국녕사

북한산성 안에 자리했던 주요 사찰들은 대부분 1712년 성능(聖能) 스님이 북한산성 도총섭이 된 이후에 승병이 머무르는 군영(軍營)으로서 창건되거나 중창이 되었다. 북한산성 가사당 암문 아래에 자리한 국녕사도 1713년 승병(僧兵)의 군영이라는 목적으로 창건된 사찰이다. 당시 승군들은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승군이 머무를 수 있는 도량은 필수적이었다. 창건 이후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군(義僧軍)이 폐지 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이후 노역에 지친 많은 스님들이 떠나게 되어 한국전쟁 이후까지 폐허로 남게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국녕사가 편안하면 나라가 편안하다”고 한다. 이는 도성의 외곽에서 수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던 국녕사의 역할을 잘 표현한 말인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 보경(寶鏡) 스님에 의해 법등을 다시 밝히게 된 국녕사는 1991년 화재로 소실이 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지금의 국녕사는 1998년 폐허를 딛고 가람을 중창한 것이어서 예전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그러나 사찰의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호국의 의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북한산 국녕사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북한산 의상봉, 증취봉, 나한봉 + 국녕사 + 삼천사

3.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268

4. 사찰 관람 코스 : 가사당암문 → 국녕사 국녕대불→ 가사당암문

북한산 국녕사 다음지도 및 대중교통편

1. 북한산 국녕사 다음지도

국녕사-다음지도
카카오맵

2. 대중교통편 : 북한산 국녕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국녕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북한산 국녕사 여행기 및 사진

국녕사

▲ 오늘은 북한산 12 PEAK CHALLENGE인 의상봉, 증취봉, 나한봉 산행 중에 가사당암문에서 북한산 '11 TEMPLE TOUR' 프로그램 중 하나인 국녕사를 다녀왔는데요. 가사당암문에서 11분 정도 걸려 국녕사에 도착했습니다.

국녕사-국녕대불

북한산 '11 TEMPLE TOUR' 인증지인 "국녕사 국녕대불(國寧大佛)"입니다.

용(龍)이 승천했다고 전해오는 용출봉(龍出峰)은 미묘하고 신령스런 기운이 깃든 봉우리입니다. 국녕대불(國寧大佛)은 그로부터 흘러내려 용(龍)의 심장에 해당하는 곳으로 알려진 용(龍) 심혈(心穴)에 자리잡고 있는 국내는 물론 동양최대의 좌불입니다. 지표로부터 총 24m, 80척에 달하는 국녕대불(國寧大佛)은 삼각산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을 지켜주시는 부처님입니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나라 총 인구의 반에 해당하는 국민들이 삼각산의 웅혼한 산정기를 머금고 살아갑니다. 이 같은 실정을 감안해 삼각산에 나라의 으뜸가는 대불을 모시자는 많은 불자들의 염원과 원력을 바탕으로 국녕대불이 모셔졌습니다. 여타 부처님과는 달리 합장 수인을 하신 대불님은 합장환희불로 인도 아쟌타와 중국 돈황 외에 비교적 드물게 모셔지고 있습니다. 합장 환희불을 모신 이유는 부처님을 바라보는 즉시 만중생들에게 합장하는 마음을 일깨우게 하고 모두를 부처로 대하는 합장불의 염원을 이 세상에 펼쳐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대불님을 에워싸는 만불의 부처님은 세세생생 대불님을 모시려는 원력불입니다. 동양 최대의 부처님과 만불전이 함께 하신 곳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매우 드뭅니다. 대불님과 만불님전에서 기도하시는 모든 불자님께 대불님과 만불님의 무량한 가피력이 함께 하실 것을 기원합니다. 특히 일출과 석양의 대불님은 한없는 환희심을 부러 일으키십니다. 무량한 영험도량에서 부디 모든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국녕사

▲ 이 사진은 2017년 3월 5일 북한산성 16문 스탬프 투어 당시, 국녕사를 멀리서 찍은 사진입니다. 오늘은 북한산 '11 TEMPLE TOUR' 인증지인 국녕사를 간단히 소개해드렸습니다.

호남의 내금강, 고창 선운산

고창 선운산 정보

고창-선운산

선운산(禪雲山) 전북 고창군의 아산면과 심원면 경계에 걸쳐 있는 선운산도립공원의 중심으로 수리봉을 주봉으로 하는 산이다(고도:336m). 주진천(인천강) 서쪽에 위치하여 천왕봉을 중심으로 개이빨산, 청룡산, 비학산, 경수산, 구황봉 등이 북서쪽으로 흐르는 선운천 골짜기만을 살짝 열어둔 채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어 마치 천혜의 요새를 떠오르게 한다. 원래 도솔산(兜率山)이라고 하였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하는‘도솔’이나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선운’ 모두 불교와 관련된 명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무장)에는“선운산은 선(禪)을 선(仙)으로도 쓴다. 현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져 있다.”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동일문헌에 소개되어 있는 선운산곡(禪雲山曲)은 무등산가·지리산가·정읍사 등 다섯 편의 백제가요 중 하나이다. 『고려사』(악지)에 “선운산은 장사 사람이 병역에 나갔는데, 기한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그의 처가 남편을 생각하고 선운산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부른 노래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무장현 지도에 선운산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해동지도』 에 무장현 북단에 선운산이 기재되어 있으며 도솔암, 선운사가 함께 그려져 있다. 

추자도 올레길(제주올레길 18-1 + 18-2코스) 트레킹

추자도 올레길 정보

제주올레길

제주올레길 18-1 코스는 추자항에서 시작하여 봉골레산, 나바론절벽(선택), 추자등대, 추자교, 돈대산 정상을 거쳐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끝나는 코스인데요. 바다에 떠 있는 첩첩산중, 겹겹이 보이는 섬의 봉우리들은 섬이 아니라 깊은 산중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산봉우리들 아래 끝없이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추자도는 발길을 이어갈 때마다, 눈길을 달리할 때마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새로운 풍광을 쏟아낸다. 상추자와 하추자의 봉우리들을 넘고 또 넘어 이어가는 길은 추자도의 숨은 풍광을 모두 들춰내 보여준다.

제주올레길18-2코스는산봉우리를넘나들며드넓은바다를조망할수있는길로하추자의신양항부터추자면사무소까지아늑한해안길과산,마을까지볼거리가충만하다.몽돌해안과맞닿은마을길을지나졸복산과대왕산을오르내린다.산꼭대기에서바라본하추자앞바다와하늘은서로다른푸른빛깔로접해있다.묵리슈퍼를지나금파골로들어서면무성하게자란숲사이로고요한생명력이느껴진다.

추자도 올레길 코스, 거리 및 소요시간

1. 트레킹 일자 : 2025년 4월 8일 화요일

2. 트레킹 장소 : 추자도 올레길(제주올레길 18-1코스 + 제주올레길 18-2코스)

3.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제주시추자면대서리,영흥리,묵리,예초리,신양리

4. 추자도 올레길 일정

04:50 : 진도항(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길 90) 도착
08:00 ~ 09 06 : 진도항에서 추자항(산타모니카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 4-41)으로 이동
09:06 ~ 16:29 : 추자도 올레길(제주올레길 18-1 + 제주올레길 18-2코스) 트레킹
17:57 ~ 19:05 : 추자항에서 진도항(산타모니카호)으로 이동
* 추자항에서 17:35분에 출항할 예정이었으나 너울성 파도로 인해 약 20분이 지체되었네요.

5. 추자도 올레길 코스, 거리 및 소요시간 : 23.03km(7시간 23분)

제주올레길18-1코스(추자항 → 봉골레산 → 용둠벙전망대 → 나바론하늘길 입구→ 나바론하늘길 132m봉 → 추자중계소 → 큰산 → 영흥리마을갈림길 → 추자등대 → 추자교 → 추자정수장(담수장) → 돈대산(164m,인증) → 돈대산입구 → 엄바위장승→ 예초포구 → 황경한의묘 →신양항) + 제주올레길18-2코스(신양항 → 석두청산정자 → 졸복산전망대 → 대왕산 → 묵리슈퍼 → 추자교 → 추자도 어민 대일항쟁기념비 → 추자등대주차장 → 추자항)

추자도 올레길 지도 및 gpx 파일 다운로드

추자도-올레길-지도

추자도 올레길 트레킹 후기

고창 선운사 도솔암, 도솔천 내원궁

고창 선운사 도솔암 정보

도솔암
고창 선운사 도솔암은 마애미륵부처님과 도솔천 내원궁에 지장보살심이 주석하고 계시는 세계에서 유일한 미륵·지장보살 기도도량인데요.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 기록은 알 수 없지만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도솔암 내원궁의 지장보살좌상, 마애불좌상 등의 보물과 나한전과 내원궁 등 문화재자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