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청풍 한벽루 정보
제천 청풍 한벽루(堤川 淸風 寒碧樓, 보물)는 청풍 관아에 딸린 건물로, 고려 축숭왕 4년(1317)에 청풍현 출신 승려 청공이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되면서 청풍현이 청풍군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누각이다. 본채 옆에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형태로, 밀양 영남루(보물), 남원 광한루(보물)와 함께 조선 시대 누각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는 건물로 꼽힌다. 한벽루에서 보는 경치가 매우 빼어나서 조선 시대의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한벽루를 주제로 한시와 그림들을 여러 편 남겼다. 1972년 8월에 대홍수로 건물이 무너지고 현판들도 모두 떠내려가서 1975년에 본래 모습대로 다시 지었다. 원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을 만들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청풍문화유산단지로 옮겼고, 송시열이 쓴 현판은 사진을 보고 다시 만들었다.
*누각(樓閣):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제천 청풍 한벽루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5년 12월 15일 월요일
2. 여행 장소 : 제천 청풍문화유산단지
3. 소재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4. 관람 코스 : 청풍문화유산단지 주차장 → 매표소, 팔영루 → 연자방아, 후산리 고가, 도화리 고가, 황석리 고가 → 유물전시관, 수몰역사관 → 한벽루, 응천각, 금병헌 → 향교 갈림길 → 관수정 → 연리지 → 망월산성 → 망월루 → 금남루 → 석조여래입상 → 제천 지곡리 고가 → 매표소 → 청풍문화유산단지 주차장
제천 청풍 한벽루 다음지도 및 대중교통편
1. 제천 청풍 한벽루 다음지도
2. 대중교통편 : 제천 청풍 한벽루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제천 청풍 한벽루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제천 청풍 한벽루 여행기 및 사진
1. 청풍문화유산단지 주차장
▲ 제천 동산, 작성산 산행을 마치고 블랙야크 역사문화대장정 인증을 위해 청풍문화유산단지 주차장(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114-23)에 도착합니다.
2. 매표소, 팔영루
▲ 팔영루입니다. 팔영루 바로 왼쪽으로 매표소가 있고, 지금 현재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관리사무소가 있습니다.
이곳 팔영루(八詠樓)는 청풍부(淸風府)를 출입하는 관문이며 '남덕문(覽德門)' 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팔영루사적비' 에 의하면,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중건하고 '남덕문'이라 한 것을, 고종 7년(1870)에 부사 이직현이 중수하고 사적비를 세웠다. 그 후 부사 민치상이 청풍팔경을 시제로 한 팔영시가 있어 팔영루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는 청풍면 읍리 286번지의 북쪽에 있었으나, 1983년 충주다목적댐의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2m의 석축 기단을 쌓고 그 중앙에 4각의 문을 내고, 문 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누각을 세웠다.
▲ 팔영루 오른쪽의 청풍 문화재단지 표지석과 관리사무소(문화유산단지사무실)
▲ 청풍문화유산단지 매표소인데요. 입장료는 개인 성인 3,000원 / 청소년(중,고생) 및 군인 2,000원 / 어린이 1,000원이고 단체(30명 이상)은 성인 2,500원 / 청소년(중,고생) 및 군인 1,500원 / 어린이 800원입니다. 초등학생 미만 어린이, 65세 이상, 장애인(1,2,3급 장애인은 동반 1인 면제), 국가유공자는 면제입니다.
▲ 매표소에서 매표 후 팔영루로 들어갑니다.
▲ 앞의 갈림길(화장실 120m·한벽루 220m·연리지 350m· 망월산성 350m ↑, 고가 40m, 유물전시관 140m, 수몰역사관 190m →)에서 고가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3. 연자방아, 후산리 고가, 도화리 고가, 황석리 고가
▲ 소에 얽힌 전설과 연자방아
소에 얽힌 어떤 전설이 있다. 태초에 옥황상제와 인간 세상과의 전령으로 소가 뽑혔다. 옥황상제가 "사흘에 한 번 식사를 하도록 하라"고 인간에게 전하도록 했으나 건망증이 심한 소가 그 지시를 잘못 전달했다. "하루에 세 번 씩 하라는데요." 이로 인해 인간은 끼니를 채우기 위해 9배로 일해야 했다. "먹는 즐거움"을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이는 인간에게 엄청남 고통의 시작이었다. 형연할 수 없는 고통을 준 만큼 소는 죽을 때 까지 인간을 위해 일하고 죽은 다음에도 고기에서 가죽까지 모든 것을 헌납하며 잘못을 사죄하고 있다고 한다.
연자방아는 둥근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어서 이를 마소가 끌어 돌려 곡식을 찧거나 빻는 도구입니다.
▲ 제천 후산리 고가(堤川 後山里 古家)
후산리 고가는 청풍면 후산리에 있던 옛집으로, 지금은 ㄱ자 모양의 안채만 남아 있다. 안방 뒤에 수납 공간인 윗방을 둔 점과 마루 한 구석에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제사방을 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기둥 위를 잇는 큰 나무와 지붕이 만나는 꼭대기 사이를 받친 나무가 이 집의 독특한 부분이다. 후산리 고가는 평면과 가구 형식 등에서 조선 시대 제천의 부유한 농민 집의 건축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 제천 도화리 고가(堤川 桃花里 古家)
도화리 고가는 본래 청풍면 도화리에 있었던 조선 말기의 목조 기와집으로서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수몰되게 되어 1985년 이곳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건물은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뒷면은 1단의 낮은 냇돌 기단을, 앞면은 5~6단의 높은 기단을 구성하여 'ㄷ' 자형의 집으로 왼쪽에는 방·부엌·광이 배치되고, 중앙에는 3칸 크기의 대청이, 오른쪽에는 방 2칸과 부엌이 배치되었다. 가구는 3량 가구이며 벽은 부엌과 웃방 뒷벽을 제외하고 모두 심벽(心璧)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집은 본래 부엌 뒤뜰과 건물의 서쪽 부분에 각각 장독대를 두었고 뒤뜰과 옆 마당은 밭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건물만 이전하여 예전의 자연환경은 찾을 수 없다.
▲ 제천 황석리 고가(堤川 黃石里 古家)
황석리 고가는 청풍면 황석리에 있던 옛집으로, 초가집의 문간채와 一자형의 안채, 기와를 올린 화장실 등 3동으로 되어 있다. 안채의 왼쪽 부엌 앞에는 작은 뒤주를 두었는데, 곡물이나 먹거리 등을 저장한 공간으로 보인다. 3칸의 방은 한 공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방과 방 사이에 문을 달아 놓은 것이 특징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조선 시대 시골의 양반집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4. 유물전시관, 수몰역사관
▲ 유물전시관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 제천 유물전시관
▲ 가마터와 수몰역사관입니다.
▲ 갈림길에서 한벽루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5. 석물군(고인돌)
▲ 고인돌과 성혈(星穴)
고인돌(支石墓)은 선사시대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괴었던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일종의 무덤양식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형태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받침돌 위에 덮개돌이 있는 탁자모양을 띄고 있다. 본 고인돌군은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청풍면 황석리 지역에서 옮겨온 남방식 고인돌로 특히, 중앙에 배친된 고인돌은 하늘의 별자리로 보이는 성형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전국에 있는 많은 고인돌 중 별자리가 표시되어 있는 고인돌은 그리 흔치 않으며, 약 2,50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풍화작용에 의해 다른 별자리들은 마모되어 알아 볼 수 없지만 북두칠성(큰곰자리)과 북극성(작은곰자리)만은 선명히 남아 있다. 이 성혈은 묻힌 사람의 영생불멸을 기원하여 생긴 것으로 보이며, 별자리의 위치로 보아 당시 4월 ~ 5월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6. 한벽루, 응청각, 금병헌
▲ 블랙야크 역사문화대장정 인증지인 "한벽루 현판 앞"입니다.
▲ 한벽루 포토존
▲ 청풍문화유산단지 한벽루 포토존에서 바라본 대덕산, 당두산, 작성산, 성봉
▲ 청풍문화유산단지 한벽루 포토존에서 바라본 작성산, 성봉, 중봉, 동산, 작은동산, 외솔봉, 조가리봉, 금수산, 망덕봉
▲ 포토존에서 바라본 한벽루
▲ 금병헌, 응청각
▲ 응청각(堤川 淸風 凝淸閣)
제천 청풍 응청각은 관아 건물 중 하나로 손님이 머물던 곳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명종 초 이황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라 이름을 지었고, 인조 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가 응척각에서 묵었다는 일기가 남아 있다.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한 듯하고, 2층은 원래 방이 있는 누각이었다. 『여지도서』*에는 응청각이 한벽루 서쪽에 있으며 한벽루처럼 아름답다는 기록이 있다. 충주댐 공사 때문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여지도서』 : 1757년~1765년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책으로 만든 전국 지방지
▲ 금병헌(堤川 淸風 錦屛軒)
금병헌은 조선 숙종 7년(1681)에 청풍부사 오도일이 지은 관청으로,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관아의 중심 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명월정이었으나, 영조 2년(1726)에 청풍부사 박필문이 다시 지으면서 금병헌으로 바꾸었다. 죄인을 가두었던 감옥인 부속 건물은 조선 말기에 없어졌고, 충주댐을 만들면서 198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 우측 통행
7. 향교 갈림길
▲ 향교 갈림길(← 향교 30m, ↓ 한벽루 100m·금남루 90m, 연리지 120m·망월산성 180m ↑, 장미 터널 →)
▲ 심장(하트) 품은 소나무
8. 관수정
▲ 관수정
▲ 노간주나무, 소망탑
9. 연리지
▲ 연리지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이어져 한 몸이 된 것을 연리지(連理枝)라고 합니다. 한 나무가 죽어도 다른 나무에서 영양을 공급하여 살아나도록 도와주는 연리지는 예로부터 귀하고 상서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연리지는 두 몸이 한 몸이 된다고 하여 부부의 영원한 사랑을 비유하며 자녀의 지극한 효성과 친구의 돈독한 우정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나무에 소원을 빌면 세상의 모든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후한 말기에 채옹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성품이 강직하고 학문이 뛰어나며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했다. 어머니가 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채옹은 3년 동안이나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병간호를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효성도 보람도 없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아, 채옹은 슬피 울면서 어머니 산소 옆에 초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기 시작했다. 분묘 옆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붙어 엉키더니 한 나무처럼 되고 말았다. "저건 채옹의 효성이 어머니를 감동시켜 모자간이 한 몸이 된 것을 상징하는 거야." 사람들은 이구동선으로 이렇게 말하며 채옹을 칭찬했다.
▲ 사랑나무 연리지
10. 망월산성
▲ 망월산성(堤川 淸風 望月山城, 충청북도 기념물)으로 올라갑니다.
망월산성은 해발 373m으로 망월산 정상에 돌로 쌓아 올린 것으로, 이곳은 남부지방에서 중부지방으로 연결되는 교통로, 특히 남한강 수운을 통제할 수 있는 지역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계단식으로 쌓은 것은 고구려와 백제에서 많이 사용한 방법이고, 수직 벽면은 신라 성벽의 특징이어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듯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문무왕 13년(671)에 사열산성*을 더 늘려 쌓았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성벽 위에서 많은 자갈돌이 발견됐는데, 이러한 예는 남한강 유역의 온달산성, 공문성, 장미산성, 가은암산성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성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성을 쌓는 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 「문화유적총람」 (국립문화재연구소, 1997)에서는 망월산성을 '사열이산성' 또는 '성열성'이라 함.
▲ 망월산성에서 뒤돌아본 장면
▲ 망월산성의 희망 소나무
▲ 망월산성에서 바라본 월악산
▲ 멋진 몸매, S라인 벗나무
11. 망월루
▲ 망월루로 올라갑니다.
▲ 망월루
▲ 망월루에서 바라본 비봉산, 수름산, 대덕산
▲ 망월루에서 내려와 금병헌에서 금남루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 무병장수 천년만년 거북바위
▲ 너랑나랑 통하였느냐, 만사형통 관통석
12. 금남루
▲ 금남루(堤川 淸風 錦南樓,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금남루는 조선 순조 25년(1825)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1970)에 부사 이직현이 고쳐 지었다. 금남루는 청풍면 읍리의 청풍초등학교의 교문으로 사용되다가 충주댐을 만들면서 1985년에 다른 관아 건물과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층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한다. 2층에는 난간을 둘러 멀리 있는 적의 상황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조길원이 적은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 현판을 통해 이 건물이 도후부 관청의 정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누각은 도호부라는 글자가 남겨진 유일한 건물이다
*청풍부사 : 1659년(현종 즉위년) 명성왕후 김씨의 본관의 청풍면이어서 '군'에서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청풍도호부사가 고을 수령으로 배치되었다.
13. 석조여래입상
▲ 왼쪽으로 석조여래입상이 있습니다.
▲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堤川 勿台里 石造如徠立像, 보물)
석조여래입상이란 돌로 만든 서 있는 불상을 말한다.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은 긴 기둥 모양의 거대한 불상으로, 통일 신라 말기 불상과 비슷한 당당한 느낌의 어깨, 형식화된 목의 주름, 사실적이지 않은 손 등에서 고려 초인 10세기 무렵 작품의 특징이 드러난다. 연꽃이 새겨진 8각의 대좌 위에 부처의 발을 조각하였는데,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과 기법이 비슷하다. 본래 청풍면 읍리에 있었는데 충주댐을 만들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1985년 청풍문화유산단지로 자리를 옮겼다.
**대좌 : 불상을 올려놓은 대
▲ 사랑 품은 하트 소나무
14. 제천 지곡리 고가
▲ 제천 지곡리 고가(堤川 池谷里 古家,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지곡리 고가는 청풍면 지곡리에 있던 옛집이다. 부엌 앞에는 식료품이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두는 고방이 있고, 부엌과 고방 사이에느 벽과 문에 판자를 둘렀다. 이는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대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꺽인 곳에 기와를 올린 문과 담장이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경계를 구분한 것은 이 지역의 다른 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형식이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 청풍문화유산단지를 들어올 때는 매표소를 들렸다 팔영루로 들어왔는데요. 나갈 때는 매표소 방향으로 나가서 청풍문화유산단지 주차장으로 내려갑니다.
15. 매표소
▲ 매표소
16. 청풍문화유산단지 주차장
▲ 청풍문화유산단지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오늘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칩니다. 청풍문화유산단지를 찾으시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