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승려인 보우가 창건한 북한산 태고사

북한산 태고사 정보

태고사

고려 말기에 대표적인 선승이자 왕사·국사를 지낸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가 창건한 사찰이다. 보우는 중흥사를 중창하고 그 동편에 암자를 지어 5년간 머물렀는데, 이 암자가 바로 지금의 태고사(太古寺)이다. 고려 멸망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으나, 북한산성 축조와 함께 승병이 주둔하는 승영사찰로 1713년에 중창되었다. 이 절을 중창한 성능대사가 지은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에는 태고사의 규모는 131칸에 이르면, 경내에는 서적 출판용 목판 5700여 매와 활자 11두(斗), 화약용 흑탄 1,600여 석을 비축하였다"라고 전한다. 현재 태고사에는 지정문화재로 보우의 행적을 기록한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와 그의 사리탑인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이 있으며, 비지정문화재로 조선 후기 양식의 사리탑이 다수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1910년대까지 경내에 5층 석탑이 남아 있었고, 서산대사 휴정(休靜)이 지은 시를 새긴 현액과 영조가 직접 쓴 현액이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둔산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선야산

완주·금산 선야산 정보

선야산
충남 금산군과 전북 완주군에 걸쳐있는 선야산(759m)은 금산의 진악산보다 14m 높은 금산의 명산으로 불편한 교통 오지에서 금산산림문화타운이 조성되고 산객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는데요. 대둔산과 천등산의 절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서울·고양 북한산 : 북한산성 입구 ~ 원효봉 ~ 백운대 ~ 노적사 ~ 대서문 ~ 북한산성 입구

북한산 정보

북한산-백운대
북한산(北漢山 Bukhansan)은 서울시의 성북구·종로구·은평구·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836m). 본래 한산(漢山)이라 불렸는데 ‘큰 산’이라는 뜻의‘산’을 한자로 차음 하여 표기한 것이다. 한산이란 이름은『삼국사기』,『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등에 보이며, 서울 지방의 옛 이름을 한산·북한산·북한산성·북한성·한양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산은 처음에는 산 이름이 아니라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에는 “양주 지경에 있다. 화산(華山)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하였다. 평강현(平康縣)의 분수령(分水嶺)에서 잇닿은 봉우리와 겹겹한 산봉우리가 높고 낮음이 있다. 또 삼각산이 되니, 실은 경성(京城)의 진산(鎭山)이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 온조가 남쪽으로 나와서,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찾았으니, 바로 이 산이다.”라고 하여 여러 다른 이름들이 보인다. 부아악은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 형상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아가 불의 표기이므로 부아 → 불 → 화(火) → 화(華)로 바뀌어 화산이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화산·화악은 세 봉우리가 연꽃이 핀 것과 비슷하다 하여 연화산(蓮華山)의 준말로 쓴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려사』의 삼각산 승가굴의 기록이나,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과『북한지』에 따르면 삼각산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일반화된 이름이다. 삼각산은 인수봉·백운봉·만경봉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루어 나란히 있는 모습 때문에 유래되었는데, 근래에까지 삼각산이란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된 내용을 기록한『북한지』가 출간된 이후 북한산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세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백운봉과 동쪽 인수봉(811m)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졌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801m)는 일명 국망봉(國望峰)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만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위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만경대 서남쪽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노적더미로 의심하였다는 노적봉(718m)과 진흥왕순수비가 있어 이름 붙여진 비봉(527m)이 있다.

삼각산 적멸보궁 삼천사

북한산 삼천사 정보

삼천사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元曉)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2년(조선 성종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입상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三千寺)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평산 성운 화상의 발원과 삼천사 불자들의 염원을 함께하여 조성된 세존진신사리불탑은 한국 석탑의 대표로 뽑는 국보 제48호 오대산 월정사 9층 석탑과 인도 석탑의 대표인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아쇼까 (석주 4두(四頭) 사자상) 대탑을 원형 그대로 접목하여 탑신을 15m 크기로 한국/인도형 세존진신사리불탑으로 나투었다. 또한, 현 삼천사 위치에서 2km 위쪽의 옛 삼천사 터에서 발굴된 대형 석조(石槽)와 동종(銅鐘), 연화대좌(蓮花臺座), 석탑기단석(石塔基壇石),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대지국사(大知國師) 법경(法鏡)의 비명(碑銘)등 600여 점의 문화재가 발굴되었고 그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받아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70년대에 삼천사 주지로 부임한 평산 성운 화상이 경내에 위치한 마애여래입상이 천년 고불(古佛)임을 입증하여 보물 제657호로 지정받고 50여 년의 중흥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30여 동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불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문화재 전통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연 20여만의 수많은 방문객들의 기도도량, 참회도량, 수행도량으로서 참배하는 사찰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북한산 삼천사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북한산 의상봉 + 국녕사 + 삼천사

3. 소재지 : 서울 은평구 연서로54길 127

4. 사찰 관람 코스 :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 → 산령각·나한전 → 대웅보전 → 세존진신사리불탑 → 일주문

북한산 삼천사 다음지도 및 대중교통편

1. 북한산 삼천사 다음지도

북한산-삼천사-다음지도
카카오맵

2. 대중교통편 : 북한산 삼천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삼천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북한산 삼천사 여행기 및 사진

1.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 산령각, 나한전

삼천사

▲ 오늘은 블랙야크알파인클럽(BAC) 챌린지 프로그램 중 하나인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사찰인 국녕사에 이어 삼천사를 들렸습니다.

마애여래입상-산령각

▲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三川寺址 磨崖如來立像, 보물)과 산령각(山靈閣)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마애불로서 삼천사 경내 계곡의 병풍바위에 각인되어 있다. 두광(頭光)부터 연화좌(蓮花座)까지 조각의 전체 높이는 약 3.03m이고 불상의 높이는 약 2.6m에 달한다. 상호(相好, 부처님의 얼굴)와 불신(佛身)의 상반부는 양감 있게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고, 군의(裙衣)와 광배 그리고 연화좌는 선(線)새김으로 묘사하여 마치 조각 작품인데도 선묘화(線描畵) 같은 느낌을 준다. 불상의 어깨 좌우에 큰 사각형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을 감싸는 목조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배(光背)는 두광과 신광의 표현에 차이를 두고 있다. 두광은 이중의 동심원으로 조각하였고 신광(身光)은 한 줄로 새겼다. 육계(肉髻)는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으로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상호는 반쯤 눈을 뜨고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어서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양 눈썹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있는 있는데 보석을 감입하고 있다. 법의(法衣)는 전반적으로 다소 두껍게 나타내어 새로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대의(大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싼 통견으로 길게 발등 위까지 늘어져 있고 그 안에 입은 내의(內衣)가 가슴부근에 비스듬히 보인다. 내의를 묶은 띠 매듭이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어 장식성을 더한다. 수인(手印)을 살펴보면, 오른손은 허벅지 부근으로 내려뜨려 옷자락을 살며시 잡고 있는 듯 표현하였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배 앞쪽에 위치해 두고 있다. 오른손에 비해 왼손의 동세가 더 크게 표현되어 있는 것에 비례하여 대의의 주름 개수도 차이를 두고 있어서 묘사력을 갖춘 실력 있는 조각가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발밑의 대좌(大坐)는 연꽃잎이 위쪽으로 피어난 앙련(仰蓮)의 연화좌로 표현하였는데 꽃잎은 중엽으로, 꽃잎 사이에는 간엽까지 표현하여 내의의 띠 매듭과 더불어 장식성을 더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원만하고 다소 단조로워 보이지만, 불상의 위쪽과 아래 부근의 조각기법에 변화를 둔 점, 광배 역시 두광과 신광의 차이를 둔 점, 육계는 나발 없이 민머리로 표현하면서도 띠 매듭과 연화좌는 장식성을 가미한 점 등에서 단아함 속에서 다양함을 구사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마애불이라고 할 수 있다.

삼천사지는 고려시대의 유명한 법상종(法相宗) 사찰 터로 고려 전기 현종대에 크게 활약했던 대지국사(大智國師) 탑비(시도유형문화유산)도 발굴되었다. 삼천사지 대지국사 탑비는 마애여래입상과 함께 삼천사의 고려시대 사찰 터의 가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나한전

▲ 나한전(拏漢殿, 오백성중전)

2. 삼천사 대웅보전

삼천사-대웅보전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인증위치인 "삼천사 대웅보전"입니다.

일주문으로-내려가는-길

▲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길

뒤돌아본-대웅보전

▲ 뒤돌아본 대웅보전

3. 세존진신사리불탑

세존진신사리불탑

▲ 세존진신사리불탑

세존진신사리 불탑은 한국 석탑의 새로운 양식으로, 오대산 월정사 8각 9층탑(국보 제48호)과 초전법륜지인 인도 사르나트아쇼까 석주 4두 사자상을 원형 그대로 접목한 탑신 15m로서 삼천사 사부대중의 염원과 아쇼까 왕의 지극한 발원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상륜부의 아쇼까 4두 사자상은 8정도의 가르침이 담긴 법륜에 안치되었고, 9류 중생의 안녕과 보살이 화엄 10지에 이른 후 정토세계의 9품 연대에 오르기를 발원하는 보리심이 불탑에 그대로 묘사되었다. 기단과 탑신부에는 석굴암 8부 신장과 사천왕상, 8보살상과 8여래불이 양각으로 조각되었다. 불탑 복장에는 오색영롱한 세존사리 7과와 불자들이 소지한 금은 칠보로 염원과 정성이 담긴 공양물인 봉안되었다.

4. 일주문

일주문

▲ 뒤돌아본 삼각산 삼천사(三角山 三千寺) 일주문

5층-석탑

삼천사-안내판

▲ 오늘은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인증지 증 하나인 삼각산 적멸보궁 삼천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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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도솔산 선운사

고창 선운사 정보

선운사
선운사(禪雲寺)는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뒤 통일신라기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효정 스님이 퇴락한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절을 크게 중창한 스님은 행호국유 스님이시다. 행호 스님은 성종의 숙부인 덕원군의 도움을 받아 1474년에 2층의 장육전과 관음전을 완공한 이래 10여 년에 걸친 대작 불사를 통하여 선운사의 옛 모습을 되찾아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임에도 황실의 원찰로 법등을 환하게 밝히게 되었다. 그러나 선조 3년(1597)의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고, 이후 광해군 5년(1613) 불에 일관 스님과 원준 스님이 힘을 합하여 1619년까지 6년에 걸쳐 보전, 법당, 천불전, 지장전, 부도전, 능인전을 중건하여 다시 사찰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720년까지 중건과 중수가 계속되었고 그 뒤에는 외형적인 불사보다는 걸출한 고승대덕들이 많이 배출되어 사격(절의 위상)을 드높였다. 조선후기 화엄학의 대가인 설파상언 스님과 조선후기 선문의 중흥조 백파긍선 스님을 비롯하여 구한말의 청정율사 환응탄영 스님, 그리고 근대불교의 선구자 석전 박한영 스님이 선운사에 출가하거나 수행하시면서 당대의 불교를 이끌었던 명문사찰이 되었다. 선운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290호이며 여기에 모셔진 세 분의 부처님들은 보물 제1752호이다. 박물관에 불보로 전시되어 있는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79호이고, 영산전목조삼존불상, 육층석탑, 범종, 만세루,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 석씨원류, 선운사사적기 등의 중요한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경내의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다. 현재, 조계종 초기불교 전문교육기관인 선운사 불학승가대학원에서는 스님들이 불학 연찬에 매진하고 있으며, 산내 암자인 참당암에서는 수좌 스님들이 참선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혜명(지혜)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불교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선운사 창건주이신 검단 스님의 중생구제의 원력을 이어 고창군종합사회복지관 등 여러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승려 노후 수행마을을 조성하여 노 스님들이 아름답게 노후를 회향(돌려줌)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다. 선운사 사부대중은 도솔천, 그 희망의 나라를 꿈꾸며 불자는 물론 지역 주민들과 함께 복지와 문화, 수행 공동체를 이루고자 오늘도 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