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의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서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정보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2013~2014년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성벽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이 유적은 한양도성 남산 구간의 일부로 그동안 멸실된 줄로만 알았던 성벽구간이다. 전시관이 자리잡은 남산 자락은 한양도성의 오랜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한양도성 유적(1396)-조선신궁 배전 터(1925)-남산 분수대(1969) 등을 포괄하는 전시관 권역에서는 조선시대 축성의 역사, 일제 강점기의 수난, 해방 이후의 도시화, 최근의 발굴 및 정비 과정을 모두 볼 수 있다.
서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6년 5월 19일 화요일
2. 여행 및 산행장소 : 백운동천 + 인왕산 + 덕수궁 +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 남산 + 동관왕묘
3. 소재지 : 백운동천(서울 종로구 청운동 6-6), 인왕산(서울 종로구 옥인동, 서대문구홍제동), 덕수궁(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서울 중구 회현동1가 100-267), 남산(서울 중구 예장동, 용산구 후암동·용산동2가), 동관왕묘(서울 종로구 난계로27길 84)
4. 여행 코스 : 도동삼거리(남산공원 입구) → 이시영 동상 → 김구 동상 → 안중근의사기념관 → 안중근의사 동상 → 한양도성 역사전시관
서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안내지도 및 대중교통편
1.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안내지도
1)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안내지도
2) 다음지도
2. 대중교통편 :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서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여행기 및 사진
1. 도동삼거리(남산공원 입구)
▲ 오늘은 한양도성길 인왕산과 남산 산행 중에 블랙야크 역사문화대장정 인증지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을 방문했는데요. 도동삼거리(남산공원 입구)부터 소개해드립니다. 도동삼거리는 회현역 4번 출구나 서울역에서 내려 걸어오시면 편합니다.
▲ 남산공원
▲ 김유신동상 입구(← 숭례문 560m, 김유신동상 60m ↑, 호현당 300m →)
2. 이시영 동상, 김구 동상
▲ 호랑이 동상과 이시영 동상
▲ 성재 이시영 선생 동상(Seongjae Lee SI-Young's Statue)
이시영 선생은 대한제국 신진개화 관료로서 외교부 교섭국장, 한성재판소 소장, 평안남도 관찰사(평안감사)등을 거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분이다.
약관 17세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피탈 당하자 형제 가족 40여명과 중국으로 망명하여 경학사(耕學社)와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하여 교육을 진흥하고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여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1910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였으며 법무총장, 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1945년 해방시까지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으며 광복 후 환국하여 신흥무관학교의 건학이념을 계승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1947년 성재학원 신흥대학(현 경희대)을 설립하였다.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1951년 5월 9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항의하며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통령직을 사임하였으며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는 명구를 남기기도 하였다.
1953년 4월 17일 피난처인 부산 동래에서 85세를 일기로 서거하였고, 전란중임에도 불구하고 여야만장일치로 국민장 9일로 결정하였으며, 1953년 정릉묘소에 안장되었다가 1964년 수유동 선열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 김구동상과 서울특별시교육청융합과학교육원 남산분원 건물
▲ 백범 김구선생 동상(Paikbum Kim Koo's statue)
김구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부친 김순영(金順永)과 모친 곽난원(郭樂園)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동학에 입도하여 1894년 9월 탐관오리의 척결과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외치며 동학군의 선봉장으로서 해주성(海州城)을 공략 하였으며 1896년 3월에는 변복한 일본인 중위를 살해하여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광무황제(光武皇帝)의 특명으로 죽음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1907년에는 독립지사들의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맹렬한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만세 시위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상하이(上解)로 망명하여 한인애국단 등을 조직하고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주석을 역임한 후 광복 이후에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환국하여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결의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1948년 4월 19일 남북협상차 평양에 다녀오는 등 민족통일을 염원하던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莊)에서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선생의 유해는 온 국민의 애도 속에 7월 5일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 이정표(← 남산서울타워 1.3km·남산둘레길 160m·안중근의사기념관 120m, ↓ 호현당 50m)
3.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의사 동상
▲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안중근(1879~1910)의 삶과 사상을 알리고자 일제 강점기 조선 신궁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1970년 10월 26일에 개관하였고, 2010년 안중근 순국 100주기와 의거 101주년을 맞아 단지 동맹을 맺은 12명을 형상화한 건물로 새롭게 재개관하였다. 기념관 건물은 서울시 건축상 공공건축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기념관에는 안중근의 일생이 소개되어 있으며 안중근의 업적과 평화사상을 알 수 있는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상설 전시실과 기획 전시실 이외에도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문화 행사를 위한 체험 전시실, 세미나실, 강당 등이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 앞 안중근 광장에는 안중근의 유묵과 어록을 새긴 석비들이 있다.
▲ 와룡매(臥龍梅, Apricot Tree)
남산 와룡매는 임진왜란 당시 창덕궁에 자라고 있던 나무를 일본으로 가져간 묘목(苗木)의 후계목으로, 일본이 한국침략에 대한 사죄의 뜻을 담아 400여년 만에 환국한 뜻 깊은 매화나무이다. 묘목은 임재왜란 당신(1592~1597)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명령에 따라 조선으로 출병한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에 의해 1593년 일본으로 반출된 후, 1609년 다테가의 보리사(菩提寺)인 마츠시마(松島)의 즈이간지(随願寺)가 중건(重建)되면서 본당 앞 양 옆에 홍백으로 식수되어 400여년간 화려한 꽃을 피우며 사찰의 유명한 나무가 되었다. 사찰의 129대 주지 히라노소죠(平野宗淨) 스님이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조선에 많은 피해와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데 대한 참회로 "안중근의사 승모회"에 후계목 반환을 제의하였고, 한·일외교통상부의 적극적인 협조로 1999년 3월 26일 안중근의사 순국89주기를 맞아 400여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환국식과 더불어 이곳 남산공원에 홍매화 1주, 백매화 1주가 식수됨.
* 서울시중부공원여가센터, 서울식물원국립산림과학원, 수원농생명과학고가 함께 와룡매 복원작업 중입니다.
▲ 안중근의사 동상
4. 한양도성 역사전시관
▲ 앞으로 보이는 건물이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입니다. 왼쪽으로 이동합니다.
▲ 앞쪽으로 위안부 기림비가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올라갑니다.
▲ 이정표(↓ 한양도성 숭례문지역, 남산 봉수대 800m ↑, 화장실 →)
▲ 블랙야크 역사문화대장정 인증위치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안내센터 간판 앞"입니다.
▲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안내센터
▲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 한양도성 유적 입구(개방시간 09:00 ~ 18:00)
▲ 한양도성 축성에 사용된 구조물 흔적
성벽을 쌓을 때 임시로 나무 기둥을 박았던 기둥의 흔적이다. 지름은 15~40cm 정도이며, 깊이는 최대 55cm이다. 이 구멍들은 2~3개씩 짝을 이루며 성벽과 나란히 발견되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구멍에서는 나무기둥의 밑동도 남아있었다. 남산 한양도성 유적에서는 총 137개의 기둥 구멍이 발견되었는데, 구멍 흔적의 보호를 위해 모두 보존 처리하였다. 일부는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노출하고, 나머지는 모래를 채워 다시 땅속에 묻었다.
▲ 한양도성의 시기별 성돌 변화
이 구간에서는 한양도성을 쌓아 올린 기술의 변화와 다양한 성돌의 모양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이곳 성벽의 맨 아래에는 가로가 긴 대형 기초석이 놓여 있는데, 이 기초석은 14세기 태조 때 쌓은 성돌이다. 그 위에 올려 쌓은 성돌들은 좌우가 서로 다르다. 왼쪽의 성돌은 비교적 작고 납작하게 생겼는데 15세기(세종)에 쌓은 것이고, 오른쪽의 성돌은 약 40~45cm 크기로 18세기(숙종)에 쌓은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면 성돌의 크기가 60cm로 아주 커진다. 5세기에 걸친 조선 왕조 측성 기술의 발전 단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점이 남산 한양도성 유적의 특징이다.
▲ 한양 도성의 구조 안내판
한양 도성의 뒤채움 구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남산 자락의 성벽은 경사지를 활용하여 한쪽에만 성돌을 쌓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를 편축성이라 한다. 면석으로 외벽을 쌓고, 성벽의 안쪽과 자연 지형, 토축 사이를 흙과 잡석으로 채웠는데, 이를 뒤채훔이라 한다. 면석은 사각뿔 모양으로 뒷뿌리를 길게 빼고, 그 사이사이로 잡석을 넣어 성벽과 지형이 단단하게 맞물리도록 했다. 성벽은 땅 속에 묻혀 상부의 면석을 받쳐 주는 기저부, 땅 위로 성돌이 켜켜이 쌓여 있는 체성, 맨 위쪽의 여장으로 구성된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부분은 1단의 지대석과 3단의 면석인데, 오른쪽 그림을 통해 한양도성 성벽의 본래 높이와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규모를 비교할 수 있다.
▲ 한양 도성의 구조
▲ 이정표(← N서울타워 985m, ↓ 한양도성 유적 65m, 각자성석 ↑ )에서 왼쪽으로 이동합니다. 각자성석은 둘러보진 않았습니다.
▲ 뒤돌아본 한양유적전시관 전경입니다. 전시관 오른쪽으로는 분수대, 조선신궁 배전 터 등이 있습니다.
▲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을 돌아보고 한양도성길 남산으로 올라갑니다. 한양도성 유적적시관을 찾으시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추억 남기시길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