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칠암자 순례길 : 도솔암 ~ 영원사 ~ 상무주암 ~ 문수암 ~ 삼불사 ~ 약수암 ~ 실상사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 정보

지리산-칠암자-순례길

지리산 칠암자순례길은 지리산의 삼정산 자락에 위치한 7곳의 암자 및 사찰을 순례하는 길인데요. 음정마을에서 시작하여 도솔암,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을 거쳐 실상사에 끝나는 코스입니다. 도솔암은 평상시에는 비법정탐방로이지만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임시 개방이 되고, 상무주암 전의 삼정산은 전에는 비법정탐방로였지만 현재는 연중 탐방이 가능한 법정탐방로가 되었습니다.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 산행 코스, 거리 및 소요시간

1. 산행 일시 : 2026년 5월 24일 일요일, 03:25- 12:28

2. 산이름 및 암자, 사찰 : 삼정산(三丁山, 1,182m)

3. 소재지 : 도솔암, 영원사, 삼정산, 상무주암, 삼불사(경남 함양군 마천면), 약수암, 실상사(전북 남원시 산내면)

4. 산행 코스 : 음정마을주차장 → 숲길 입구 → 쉼터(바리게이트) → 도솔암 들머리 → 도솔암 → 영원사 → 빗기재 → 삼정산 갈림길 → 삼정산 → 삼정산 갈림길 → 상무주암 → 문수암 → 삼불사 → 도마마을 갈림길 → 약수암 → 실상사 → 해탈교 → 실상사 공영주차장

5. 산행 거리 및 소요시간 : 16.27Km(9시간 3분)

음정마을주차장(03:25) → 3.67km → 도솔암(05:14) → 2.09km → 영원사(06:10) → 2.13km → 삼정산(07:31) → 0.37km → 상무주암(07:51) → 0.75km → 문수암(08:17) → 0.81km → 삼불사(08:44) → 2.95km → 약수암(10:13) → 2.63km → 실상사 보광전(11:32) → 0.87km → 실상사 공영주차장(12:28)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 산행지도 및 gpx 파일 다운로드

지리산-칠암자-순례길-지도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 산행기 및 사진

1. 음정마을주차장

음정마을

▲ 음정마을주차장(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402-2)에서 지리산 칠암자순례길을 걷습니다. 음정마을주차장에는 주차공간과 백두대간 벽소령표지석이 있습니다.

백두대간-벽소령-표지석

▲ 백두대간 벽소령 표지석 

음정버스정류장

▲ 음정버스정류장에서 왼쪽 음정마을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음정마을회관

▲ 음정마을회관

지리산자연휴양림-갈림길

▲ 지리산자연휴양림 갈림길(← 산림청 지리산자연휴양림 1.0km, 벽소령대피소 6.7km ↑)

2. 숲길 입구

숲속으로

▲ '음정안길'을 걷다가 왼쪽 숲길로 들어갑니다. 참고로 갈림길 전에 '산사태 취약지역 안내판'이 있습니다.

3. 쉼터(바리게이트)

쉼터

▲ '마천삼정로'와 만나는 쉼터

바리게이트

▲ 차량출입금지 바리게이트(↓ 음정마을 1.4km, 벽소령 5.2km ↑)

벽소령탐방로

▲ 벽소령 탐방로

지리-경남-13-03

▲ 지리(경남) 13-03

지리-경남-13-04

▲ 지리(경남) 13-04

급경사지-낙석-위험지역

▲ 지리(경남) 13-05-01 지점인데 급경사지(낙석) 위험지역 안내판이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올라가지 않고 조금 더 진행 후 산길로 들어갑니다. 제가 판단하기론 이곳의 길은 가파른 오름길 같습니다. 

4. 도솔암 들머리

도솔암-들머리

▲ 급경사지(낙석) 위험지역 안내판이 있는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들머리입니다. 

오른쪽으로-도솔암

▲ 오른쪽 도솔암으로 올라갑니다.

5. 도솔암

도솔암

▲ 도솔암에서 뒤돌아본 장면인데요. 정면 뱡향은 올라온 길이고 왼쪽은 영원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도솔암

▲ 도솔암

도솔암

도솔암에서-바라본-일출

▲ 도솔암에서 맞이하는 부처님 오신 날 일출 장면

도솔암에서-영원사로

▲ 도솔암에서 영원사로 내려갑니다. 사진은 올라올 때 찍은 사진입니다. 지리산 칠암자순례길을 참배하시는 분들이 많아 사진을 제대로 찍기가 쉽지 않았네요.

도솔암

▲ 도솔암 화장실

공원문화유산지구-안내판

▲ 공원문화유산지구 안내판이 있는 곳이고, 이곳에서 오른쪽 길은 샛길출입금지도 되어 있네요. 

도솔암-팻말

▲ 뒤돌아본 도솔암 방향표지 팻말

계곡

▲ 계곡

임도삼거리

▲ 마천삼정로와 만나는 삼거리

삼거리

▲ 마천삼정로와 만나는 삼거리(↓ 도솔암 1.6km, 진행방향 ↑)

6. 영원사

영원사-표지석

▲ 영원사 표지석(靈源寺)

영원사로-올라가는-길

▲ 영원사로 올라갑니다. 

영원사

▲ 영원사 무량수전

삼영전

▲ 삼영전(三影殿)

영원사-전각

영원사-불상

▲ 영원사 불상

영원사-앞마당

▲ 영원사 앞마당

영원사-무량수전

▲ 영원사 무량수전(無量壽殿)입니다. 백초월 스님과 영원사 안내판이 있어 그 내용을 올립니다. 

영원사 출신인 백초월(白初月) 스님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큰 공적을 남긴 불교 독립운동가이시다. 초월스님은 경남 고성군 영오면에서 1878년에 출생하셨는데, 14세의 나이로 이곳 영원사로 출가하셨다. 해인사의 강원선원에서 수학을 하셨으며, 지리산 일대의 의병활동을 지켜보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셨다. 30대 초반에 영원사 조실(祖室)·강백(講伯)이셨고, 범어사와 해인사의 강사를 역임하셨다. 그리고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학림의 불교 강사로 내정될 정도로 당시 최고의 강백이셨다. 

1911년 이곳 영원사가 화재로 전소되자, 영원사 주지로 재건불사(1914~1917)를 주관하셨다. 그 이 후에는 용화사(법주사 청주 포교당)에서 포교에 전념하셨다. 이때, 3·1운동(1919)이 발발하자 분연히 일어나 서울로 올라가 진관사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다. 불교계 민족대표이셨던 백용성스님과 한용운스님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시자, 초월스님은 중앙학림에 불교의 독립운동본부(민단본부)를 두고 학인스님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하셨다. 

천은사, 화엄사, 통도사, 범어사 등에서 모은 독립자금을 상해의 임시정부와 민주 독립군에 제공하셨고, 불교청년들을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의 독립군에 보내셨다. 독립운동을 하시다 일제에 체포되어 악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결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으셨다. 초월스님은 출옥하신 이후, 불교사상에 근거한 일심교(一心敎)라는 항일 결사단체를 만드셨고, 동학사, 월정사, 봉원사에서 강사를 하시면서 스님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셨다. 1939년 10월, 용산에 만주로 가는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 낙서를 쓴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2년 6개월 동안 수감되셨는데, 출옥한 후에도 독립자금을 모금하시다 청주감옥에 수감되셨고, 안타깝게도 고문이 후유증으로 1944년 6월 29일, 옥중 순국하셨다. 초월스님은 입적하신 그날까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으셨던 참다운 보살, 큰스님이셨다. 2009년 5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진관사 칠성각 보수를 하다 초월스님이 사용하신 태극기와 독립운동자료가 발견되면서,초월스님의 독립운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초월스님에 대한 연구와 선양사업이 시작되었다. 2016년 11월 17일, 진관사에서 3개 자치단체인 고성군(옥천사, 출생), 함양(영원사, 출가, 은평구(진관사, 독립운동)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백초월스님 선양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였다. 

영원사를-떠나며

▲ 영원사(약수암 5.7km· 상무주암 1.8km ↗)에서 빗기재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문

지리-경남-30-01

▲ 지리(경남) 30-01

7. 빗기재

빗기재

▲ 빗기재(← 출입금지, ↓ 영원사 0.8km, 약수암 4.9km·상무주암 1.0km →)

지리-경남-30-02

▲ 지리(경남) 30-02

바위

▲ 바위

지리-경남-30-03

▲ 지리(경남) 30-03

8. 삼정산 갈림길, 삼정산

삼정산-갈림길

▲ 삼정산 갈림길에서 왼쪽 삼정산을 다녀옵니다. 전에는 비탐방구간(비법정탐방로)이었는데 지금은 정규 탐방로가 되었습니다.

전망바위

▲ 왼쪽으로 전망바위 1이 있습니다. 

헬기장

▲ 헬기장

삼정산-바위

▲ 바위를 지나면 바로 삼정산 정상입니다. 이 바위 위에서 지리산 정상 조망이 트입니다. 

삼정산-정상석

▲ 오르GO함양 15대 명산 정상 인증지인 "삼정산(1182m)"입니다. 정상은 조망이 거의 없고 바위 위에 올라가면 지리산 정상이 보입니다.

삼정상-정상-바위

▲ 바위 위에 올라 지리산 조망을 하고 내려갑니다.

삼정산에서-천왕봉-조망

▲ 바위 위에서 바라본 지리산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 화장봉

바위전망대-2

▲ 전망바위 2

삼정산-전망바위2에서-반야봉-조망

▲ 전망바위 2에서 바라본 촛대봉, 연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 삼각고지, 명선봉, 삼도봉, 반야봉

삼정산-갈림길

▲ 삼정산 갈림길로 돌아와서 상무주암으로 내려갑니다.

9. 상무주암

상무주암

▲ 상무주암 부속건물 및 화장실(右)

상무주암

▲ 상무주암을 잠시 둘러보고 오른쪽으로 진행합니다. 

상무주암

▲ 상무주암(上無住庵)

왼쪽

▲ 삼거리(← 약수암 3.9km·문수암 0.8km, ↓ 영원사 1.8km)에서 왼쪽으로 내려갑니다. 

지리-경남-30-04

▲ 지리(경남) 30-04

지리-경남-03-05

▲ 지리(경남) 30-05

10. 문수암

상무주암

▲ 문수암으로 내려갑니다. 

상무주암

▲ 문수암

문수암

▲ 문수암(文殊庵) 현판

문수암-바위

▲ 문수암 바위인데, 사람 형상을 닮았네요. 

문수암-이정표

▲ 문수암 이정표(↓ 영원사 2.6km·상무주암 0.8km, 약수암 3.1km·삼불사 0.8km ↑)

지리-경남-30-06

▲ 지리(경남) 30-06

이정표

▲ 이정표(← 약수암 2.4km·삼불사 0.1km,↓ 영원사 3.3km·문수암 0.7km) 

11. 삼불사

삼불사

▲ 삼불사

삼불사

▲ 삼불사 계단

삼불사-현판

▲ 삼불주(三佛住)란 현판을 단 삼불사(三佛寺)

12. 도마마을 갈림길

도마마을-갈림길

▲ 도마마을 갈림길(← 영원사 3.5km·삼불사 0.1km, 약수암 2.2km ↑, 도마마을 3.2km →)에서 약수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 급경사지(낙석) 위험지역(지리 30-07-01)

>지리-30-07

▲ 지리 30-07

이정표

▲ 이정표(↓ 영원사 3.9km·삼불사 0.5km, 약수암 1.8km →)

▲ 지리(경남) 30-08

지리-경남-30-10

▲ 지리(경남) 30-10

지리-경남-03-11

▲ 지리(경남) 30-11

왼쪽으로

약수암으로-가는-길

13. 약수암

약수암

▲ 약수암(藥水庵)이라는 현판을 단 전각

보광전

▲ 약수암 보광전(普光殿)

약수암주차장

▲ 약수암주차장에서 숲길로 내려갑니다. 

숲길

실상사길과-만나는-지점

▲ '실상사길'과 만나는 지점입니다. 

▲ 용담대화상탑 갈림길(← 용담대화상탑(조선))에서 왼쪽으로 이동합니다. 정면의 포장된 길을 따라가셔도 실상사로 갈 수 있습니다. 

빨간-다리

▲ 빨간 다리

벤치쉼터

▲ 벤치쉼터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기 전에 왼쪽에 있는 용담대화상탑을 관람하고 내려갑니다. 

용담대화상탑

▲ 남원 실상사 용담대화상탑 (조선후기) 

용담스님(1700~1762)은 남원출신으로 법휘는 조관(慥冠)이요, 자는 무회(無懷)며, 호는 용담(龍潭)이다. 

9세에 공부를 시작하여 15세 이전에 유학에 통달했다. 어릴 적부터 남원의 신동[奇童, 기동]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 동안 피눈물을 흘리면서 세상의 무상함을 관찰하였다. 19세에 감로사(지금의 천은사)로 출가하였다. 

20대에는 영호남의 대화상들을 두루 방문하여 배웠다. 그 후 지리산 견성암에서 기신론을 독송하던 어느 날 밤, 홀연히 깨닫고 마음이 활짝 열렸다. 33세에 곧장 영원암(靈源庵)으로 들어가 십 년 동안 그림자가 산을 벗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아! 검이 신령하면 빛이 쏟아져 나오고 과일이 익으면 향기가 날리는 법이라' 사방 대중들의 간청으로 회문산 심원사, 동악산 도림사, 지리산의 여러 암자들을 두루 유행하며 선문염송과 묘법을 널리 알렸다.

1762년 6월 실상사에서 나이 62세로 입적하였다. 문인들이 5재를 지내는 밤에 사리 5과를 수습하였으니 바로 꿈에 감응한 일이었다. 이를 나눠 세  곳에 탑을 세웠으니, 즉 삭발한 곳인 감로사(천은사), 오랫동안 노닐던 곳인 파근사, 입적한 곳인 실상사였다. 그리고 이 세 곳에 모두 위탑(位沓)을 설치하여 2년 터울을 두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실상사-담장

▲ 실상사 담장을 따라 내려가면 실상사 주차장이 나옵니다.

14. 실상사

실상사주차장

▲ 실상사주차장

실상사-천왕문

▲ 실상사 천왕문(天王門)

종무소

▲ 실상사 종무소

▲ 실상사 기와탑, 종각, 목탑지, 명부전

실상사-템플스테이

▲ 실상사 템플스테이

실상사

극락전

▲ 약사전(藥師殿)

철조여래좌상

▲ 약사전의 철조여래좌상(보물)

통일신라 말 지방의 여러 선종 사찰에서 쇠를 녹여 많은 불상을 만들었는데, 이 불상은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높이는 2.69m이다. 무릎 아래는 복원한 것이며, 깨어진 두 손도 근래에 찾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여 붙였다. 두리뭉실한 머리 윤곽, 촘촘한 고수머리, 원만하고 시원스런 얼굴, 넓은 가슴에 두툼한 허리 등으로 보아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근엄하고 딱딱한 표정을 뛴 이 불상은 온유함과 생동감을 보이던 앞 시대의 불상과 달라 신라 말 불상의 변천 양상을 가늠케 한다. 

선재집과-양혜당(공양간)

▲ 멀리 보이는 전각은 선재집과 양혜당(공양간)인데요. 양혜당에서 11시 45분쯤 긴 줄을 서서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점심공양은 비빔밥, 미역국, 떡 등을 받아서 잘 먹었네요. 

명부전

▲ 명부전(冥府殿)

보광전과-석등

▲ 보광전과 석등(보물)

실상사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각 부분을 팔각형으로 만들어 그 시대 석등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석등은 기둥이 둥근 장고(長鼓) 모양을 하고 있다 점에서 일반 석등과 다르다. 지붕 위에 또 하나의 작은 원형지붕을 얹은 점 역시 독특하다. 받침과 기둥, 몸체 등 곳곳에 연꽃을 비롯한 다양한 무늬를 새기어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부처의 자비를 담은 불빛을 온누리에 환하게 비추려는 듯 몸체의 여덟 면 모두에 큼직한 사각창을 내었다.  

▲ 남원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이 쌍둥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 실상사를처음 지으면서 함께 세운 것이다. 높이는 8.4m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층마다 몸체와 지붕을 각각 별개의 돌로 만들고, 각층 물체의 모퉁이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했다. 지붕 아래 면은 수평이나, 윗면 모퉁이 부분은 위로 치켜올려졌다. 받침부가 비교적 커서 균형감을 덜하나 전체적인 모습은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서쪽 탑은 아쉽게도 꼭대기 일부를 잃어버렸으나, 두 석탑 모두 윗부분이 비교적 원래대로 남아 있어 그 화려했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칠성각

▲ 칠성각(七星閣)

실상사

실상사

극락전

▲ 극락전과 증각대사탑, 수철화상탑 등이 있는 곳입니다. 

중각대사탑비

▲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證覺大師塔碑, 보물)

이 비석은 홍척스님을 추모하여 옆의 부도탑과 함께 세운 것이다. 증각은 홍척(洪陟)스님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공덕을 기려 임금이 내린 칭호이며, 일명 남한(南漢)이라고도 부른다. 그는 통일신라시대 유명한 스님으로 이곳 지리산 자락에 실상사를 처음 세웠다. 아쉽게도 현재 비의 몸체는 없어지고 비 머리와 받침돌만 남아 있다. 받침돌에는 용머리 모양으로 표현하던 일반적인 추세와는 달리 거북머리를 그대로 조각하였다. 비의 장식이 전체적으로 과장되지 않고 사실적이서 우리나라 고전 비석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극락전으로-들어가는-문

▲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

극락전

▲ 극락전(極樂殿)에는 건칠아미타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이 모셔져 있습니다. 

지리산에 위치한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이 처음 지은 절이다. 당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홍척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극락전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불에 탔다가 다시 지어졌다. 절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자료에 의하면 순조 31년(1831)에 지어졌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에는 세짝의 문을 달았고 양쪽은 한짝 씩의 문을 달았다. 건물 안은 바닥에 마루를 깔고, 뒤쪽 높은 기둥 사이에 후불벽을 설치하고 불단 위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 극락전 오른쪽 전각

증각대사탑

▲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보물)

이 부도탑(浮屠塔)은 통일신라말 홍척(洪陟)스님을 추모하여 세운 것으로, 경내에 함께 있는 그의 제자 수철(秀澈)스님의 부도탑과 비슷한 형식으로 만들었다. 당(唐)나라에 다녀온 홍척스님은 선종을 널리 전파하였으며, 실상사를 처음으로 열었다. 탑 몸체에 새긴 문짝 무늬는 윗부분이 반원형인데, 자물쇠와 문고리까지 세밀하게 새긴 것이 눈길을 끈다. 지붕은 목조탑의 모습을 본 따 정교하게 조각하였으며 탑의 높이는 2.4m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후반기의 우수한 조각술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극락전

수철화상탑

▲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보물)

수철화상탑은 승려의 사리를 모셔 놓은 탑으로, 부도 또는 사리탑이라고도 한다.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은 신라 후기의 승려 수철화상(817~893)의 사리를 모셔 놓은 탑이다. 수철화상은 본래 심원사에 머물렀는데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스승인 증각대사 홍척의 뒤를 이어 두 번째 창건주가 되었다. 그가 진성여왕 7년(893)에 77세로 입적하자 왕은 ‘수철화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그의 사리를 모신 탑을 ‘능가보월’이라 부르도록 하였다. 

이 탑은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팔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아 조성하였으며 맨 아래 지대석에서 지붕돌까지 모두 팔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의 아래 받침돌에 구름과 용, 사자 등의 무늬를 조각하였으나 모두 심하게 닳아 없어져 형태를 알아보기 쉽지 않다. 위의 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삼중으로 조각해 둘렀다. 탑 몸체의 각 면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고 지붕돌에서 기왓골과 막새기와(처마 끝에 놓는 암키와와 수키와)까지 표현함으로써 목조건축의 세부 양식을 충실히 구현하였다. 탑의 꼭대기 부분은 층단 몇 개가 남아 있을 뿐 나머지 부분이 없어져 본래의 형태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태이다.

백자만다라

▲ 백자만다라(정재철)

'장소는 성장한다.' 작가는 긴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채 자기 스스로의 기록을 나이테처럼 품고 있는 '우리절 실상사'의 한 작은 공간이 새로운 장소로 성장하기글 기대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경내에 흩어져있는 자연석을 모아, 좋은 그늘이 생길 듯한 나무 밑에 쉼터를 만들었고, 그 장소(쉼터)의 지하에 '국통정중앙 양구'(양구 백자박물관 협조)에서 생산된 백자토로 직접 만든 '백자 만다라'를 정중히 모셨다. 작가는 이 소소한 행위들을 통해 이 공간이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을 품는 장소가 될 것을 기대하지만, 이 역시 쓰는 사람들의 사용방식에 맡겨질 뿐이다. 슬플때든, 기쁠때든, 평온할 때든... 쉬고, 놀고, 생각하고... 당신이 그렇게 이곳을 찾는다면 이 작은 공간은 그렇게 될 것이다. 장소는 그렇게 성장한다. 

▲ 수철화상탑비

수철화상탑비는 실상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수철화상의 업적을 기리는 비이다. 수철화상은 신라 후기의 승려로, 본래 심원사에 머물다가 후에 실상사에서 수도하며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진성여왕 7년(893)에 그가 실상사에서 입적하자 왕이 시호와 탑명을 내렸다.  비문에는 수철화상의 출생에서 입적까지의 행적과 사리탑을 세우게 된 경위 등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실상사에 조성한 비문에 수철화상이 ‘실상사 수철화상’이 아니라 ‘심원사 수철화상’으로 등장한다. 그 이유는 수철화상이 비록 실상사에서 입적하였으나 원래는 심원사의 승려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현재는 비문의 글자가 거의 닳아 없어져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다. 이 탑비는 당시의 일반적인 탑비 형식과는 달리 거북 모양의 밑받침돌 대신 직사각형의 받침돌을 두고 그 위로 비를 세웠다. 비를 꽂는 비좌에는 큼직한 연꽃을 두르고 머릿돌에는 구름 속에서 마주한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듯한 모습을 조각하였다.

극락전에서-되돌아나감

▲ 극락전을 관람하고 되돌아 나가는 길입니다. 

▲ 실상사 생태뒷간

뒤돌아본-천왕문

▲ 실상사를 천천히 둘러보고 점심공양후 공영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본 실상사 주차장과 천왕문입니다. 

실상사의 모습

15. 해탈교

해탈교

▲ 해탈교를 건넙니다. 해탈교 양쪽으로 석장승(국가민속문화유산)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돌장승들은 실상사를 지키는 상징적인 조각품으로, 원래는 이곳 냇가에 모두 네 개가 있었다. 절로 가는 도중 내를 건너기 전에 두 개의 장승이 서 있었는데, 그중 오른쪽 것이 1936년 홍수에 쓸려 내려가 현재는 세 개만 남았다. 장승들의 높이는 대략2.5~2.9m, 너비 40~50cm 가량이며,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갖는 등 비슷한 양식을 보인다.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같은 시기인 조선 영조 1년(1725)에 세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왼쪽으로

▲ 실상할인마트에서 왼쪽으로 진행합니다.

16. 실상사 공영주차장

오른쪽-실상사공영주차장

▲ 오른쪽이 실상사 공영주차장입니다.

실상사-공영주차장

▲ 실상사 공영주차장(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 484-3)에서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을 마칩니다. 참고로 공영주차장 맞은편에 화장실이 있으니 그곳에서 볼일 보시고 씻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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