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과 영양 선바위관광지, 서석지, 부용봉 산행 정보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은 전형적인 모전석탑(模塼石搭)으로, 1단의 기단(基壇)은 평평한 자연석을 썼고, 한변의 길이가 약 5m인 네모난 개석(蓋錫) 위에 높이 41cm의 대석(臺石)이 있고 2단의 탑신(塔身) 받침이 구성되었으며 그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다.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도 모두 벽돌 모양의 돌로 쌓았다. 1층 탑신에는 섬세하게 조각한 문주(門柱)와 미석(眉石)이 있는 감실(龕室)을 두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중간마다 돌을 내밀어 띠를 이룬 것이 특이하다. 옥개석은 아래위의 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었으며, 처마의 너비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정연하고도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탑으로 국보 제30호인 분황사 석탑과 함께 신라시대의 모적석탑 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탑이다. 1980년에 해체, 복원된 바 있으며, 탑의 전체의 높이는 11.3m이고 기단 폭은 3.34m이다.
영양 서석지(英陽 瑞石池)는 영양에 있는 연못으로, 조선시대 일반 백성들의 집에서 볼 수 있는 연못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서석지는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정영방(鄭榮邦)이 만들었다. 정영방은 동래 정씨로 호는 석문(石門)이고 자는 경보(慶輔)이며, 뛰어난 성리학자, 시인이었다. 서석지는 자양산(紫陽山)의 남쪽 기슭에 있는데, 연못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주일재(主一齋), 서쪽에 경정(敬亭), 뒤쪽에 수직사(守直舍)가 있다. 연못 북쪽에는 네모 모양의 단을 만들어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심고 사우단(四友壇)이라고 이름하였다. 연못의 동북쪽에서 물이 들어오는 곳을 읍청거(揖淸渠)라 하고, 서남쪽으로 물이 나가는 곳을 토예거(吐穢渠)라고 하였다. 읍청거 쪽에는 연못 속에 잠기거나 드러난 60여 개의 서석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묘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 돌들에는 선유석(仙遊石), 통진교(通眞橋), 희접암(戱蝶巖), 어상석(魚狀石), 옥성대(玉成臺), 조천촉(調天燭), 낙성석(落星石)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선바위는 경상북도 영양군지지(英陽郡地誌)에 자양산의 끝인 자금병과 함께 석문이라 하였으며 옛부터 입암(立岩), 신선바위(仙岩), 선바우 라고도 하였다. 선바위와 남이포에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운룡지(雲龍池)의 지룡(池龍)의 아들인 아룡(阿龍)과 자룡(子龍) 형제가 있었는데 역모를 꾀하여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 남이장군(南怡將軍)에게 토벌할 것을 명하니 남이장군이 이곳까지 내려와 아룡과 자룡을 물리치고 도적의 무리가 다시 일어날 것 같아서 큰 칼로 산맥을 잘라 물길을 돌렸다 하는데 그 마지막 흔적이 선바위라 한다.
부용봉은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신사리, 신구리, 산해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376m의 독산(獨山)이다. 일월산에서 발원한 동천(東川)과 반변천(半邊川)이 동서로 나뉘어 회류하면서 자양산(紫陽山)의 줄기를 끊어 형성되었다. 산의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뜬 연꽃'과 같다고 해서 '부용봉(芙蓉峯)'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사방이 탁 트인 지리적 조건으로 고대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옛날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한 해의 소원을 빌기 위해서 달맞이를 하던 곳이다. 현재는 새해의 안녕과 소망을 기원하는 해맞이 장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