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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위치한 노적사

북한산 노적사 정보

노적사

1711년(숙종 37)에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 성내의 군사요충지에 사찰 13곳을 건립하여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맡겼다. 이런 사찰을 승영사찰(僧營寺刹)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병영의 역할을 겸하게 하였다. 노적사도 승영사찰이었는데 당시에는 진국사(鎭國寺)라고 했다. 위치로 미루어 중성의 수축과 방어를 맡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산성 축성 과정과 현황을 정리한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에는 "진국사는 노적봉(露積峯) 아래에 있으며, 85칸으로, 승려 성능(聖能)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경내에 있는 대웅전, 나한전, 삼성각, 종각,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석불입상은 모두 최근에 지은 것으로, 옛 진국사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경내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돌사자상만이 옛 진국사의 존재를 알려준다. 돌사자상의 몸통에는 안장이 채워져 있으며 안장 위에는 대좌가 마련되어 있다. 이 대좌에는 조선후기에 유행한 문수보살 동자상이 모셔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산 노적사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5년 3월 30일 일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북한산 원효봉 + 백운대 + 태고사 + 노적사

3.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311-35

4. 사찰 관람 코스 : 노적사 입구 → 대웅전, 동인당, 나한전 → 극락전, 범종각, 보림루 → 운하교

북한산 노적사 다음지도 및 대중교통편

1. 북한산 노적사 다음지도

2. 대중교통편 : 북한산 노적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노적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북한산 노적사 여행기 및 사진

1. 노적사 입구

노적사-입구

▲ 오늘은 블랙야크알파인클럽(BAC) 챌린지 프로그램 중 하나인 '11 TEMPLE TOUR' 사찰인 태고사에 이어 노적사를 소개해드립니다. 현재 위치는 노적사 입구(←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대동문 2.4km, 노적사 →)인데요. 오른쪽 노적사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노적사-돌계단

▲ 노적사로 올라가는 돌계단입니다. 돌계단 양쪽으로 露積寺(노적사)와 鎭國路(진국로)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공덕탑

▲ 공덕탑(功德塔)

노적사-노적봉

▲ 노적사와 노적봉입니다. 앞으로 보이는 전각은 보림루와 범종각이고 위쪽으로 대웅전이 있습니다.

극락전

▲ 노적사 대웅전 계단을 오르기 전에 바라본 극락전(極樂殿)

범종각-보림루

▲ 범종각(梵鐘閣)과 보림루(保任樓)

2. 노적사 대웅전, 동인당, 나한전

노적사-대웅전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인증위치인 "노적사 대웅전"입니다. 대웅전 앞에는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 63호인 '고양 노적사 석사자상'이 있습니다.

고양 노적사 석사자상(石獅子像)은 전통사찰로 지정된 북한산 노적산 대웅전 앞에 위치해 있다. 노적사의 본래 이름은 진국사로 조선 숙종 38년(1712)에 성능대사가 창건했다고 북한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으로 크게 훼손되었다가 1960년대부터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노적사 석사좌상은 사찰의 입구인 백운동 계곡에 있었으나 1970년대 북한산에 주둔하고 있던 군장병에게 발견되어 지금의 노적사로 옮기게 되었다. 사자상의 조각수법과 양식, 크기 등을 통해 볼 때 조선조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개를 틀어 옆쪽을 보고 있는 모습, 머리 부분부터 목선까지 조각된 갈기, 두터운 눈썹 아래에 툭 불거진 두눈, 다문 입술 사이로 드러난 뼈드렁니 등의 표현에서 해학적인 요소를 볼 수 있다. 생김새를 볼 때 문수보살, 문수동자를 태운 좌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노적사 석사자상은 고양지역 유일의 석사자상 이라는 점, 석상의 조각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점, 곳곳에 해학적인 모습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그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웅전에서-내려다본-범종각-보림루-극락전

▲ 노적사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범종각, 보림루, 극락전

동인당-나한전

▲ 동인당(東印堂)과 부처님의 제자인 아라한을 모신 나한전(羅漢殿)

▲ 동인당, 약사미륵상, 나한전과 성림당 월산 대종사 기념비입니다. 월산 대종산 기념비 오른쪽으로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있는 것 같네요.

대웅전에서-내려가는-계단

▲ 대웅전에서 내려가는 계단

3. 극락전, 범종각, 보림루

범종각-보림루

▲ 범종각과 보림루

노적사-대웅전

▲ 보림루에서 뒤돌아본 노적사 극락전, 대웅전

보림루-범종각

▲ 뒤돌아본 보림루와 범종각

공원문화유산지구-안내판

▲ 공원문화유산지구 안내판

전통사찰 노적사 일원은 사찰지이며, 국립공원 내 문화재 보전을 위해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곳입니다. 공원문화유산지구는 국민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탐방환경 조성을 위해 다수의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전통사찰의 기여와 협력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국민들께서는 자연환경과 전통사찰의 수행환경 및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운하교

노적사-표지석과-운하교

▲ 노적사 표지석과 운하교

노적사-표지석

▲ 전통사찰 노적사 표지석

운하교

▲ 오늘은 노적사 입구에서 대웅전, 동인당, 나한전, 극락전, 범종각, 보림루를 차례대로 둘러보고 운하교에서 블랙야크 '11 TEMPLE TOUR' 인증지인 노적산 탐방을 마쳤는데요.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바로 올라오실 경우는 운하교부터 시작해서 노적사 입구로 내려오시면 되겠습니다.

고려 후기 승려인 보우가 창건한 북한산 태고사

북한산 태고사 정보

태고사

고려 말기에 대표적인 선승이자 왕사·국사를 지낸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가 창건한 사찰이다. 보우는 중흥사를 중창하고 그 동편에 암자를 지어 5년간 머물렀는데, 이 암자가 바로 지금의 태고사(太古寺)이다. 고려 멸망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으나, 북한산성 축조와 함께 승병이 주둔하는 승영사찰로 1713년에 중창되었다. 이 절을 중창한 성능대사가 지은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에는 태고사의 규모는 131칸에 이르면, 경내에는 서적 출판용 목판 5700여 매와 활자 11두(斗), 화약용 흑탄 1,600여 석을 비축하였다"라고 전한다. 현재 태고사에는 지정문화재로 보우의 행적을 기록한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와 그의 사리탑인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이 있으며, 비지정문화재로 조선 후기 양식의 사리탑이 다수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1910년대까지 경내에 5층 석탑이 남아 있었고, 서산대사 휴정(休靜)이 지은 시를 새긴 현액과 영조가 직접 쓴 현액이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삼각산 적멸보궁 삼천사

북한산 삼천사 정보

삼천사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元曉)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2년(조선 성종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입상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三千寺)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평산 성운 화상의 발원과 삼천사 불자들의 염원을 함께하여 조성된 세존진신사리불탑은 한국 석탑의 대표로 뽑는 국보 제48호 오대산 월정사 9층 석탑과 인도 석탑의 대표인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아쇼까 (석주 4두(四頭) 사자상) 대탑을 원형 그대로 접목하여 탑신을 15m 크기로 한국/인도형 세존진신사리불탑으로 나투었다. 또한, 현 삼천사 위치에서 2km 위쪽의 옛 삼천사 터에서 발굴된 대형 석조(石槽)와 동종(銅鐘), 연화대좌(蓮花臺座), 석탑기단석(石塔基壇石),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대지국사(大知國師) 법경(法鏡)의 비명(碑銘)등 600여 점의 문화재가 발굴되었고 그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받아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70년대에 삼천사 주지로 부임한 평산 성운 화상이 경내에 위치한 마애여래입상이 천년 고불(古佛)임을 입증하여 보물 제657호로 지정받고 50여 년의 중흥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30여 동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불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문화재 전통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연 20여만의 수많은 방문객들의 기도도량, 참회도량, 수행도량으로서 참배하는 사찰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북한산 삼천사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북한산 의상봉 + 국녕사 + 삼천사

3. 소재지 : 서울 은평구 연서로54길 127

4. 사찰 관람 코스 :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 → 산령각·나한전 → 대웅보전 → 세존진신사리불탑 → 일주문

북한산 삼천사 다음지도 및 대중교통편

1. 북한산 삼천사 다음지도

북한산-삼천사-다음지도
카카오맵

2. 대중교통편 : 북한산 삼천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삼천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북한산 삼천사 여행기 및 사진

1.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 산령각, 나한전

삼천사

▲ 오늘은 블랙야크알파인클럽(BAC) 챌린지 프로그램 중 하나인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사찰인 국녕사에 이어 삼천사를 들렸습니다.

마애여래입상-산령각

▲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三川寺址 磨崖如來立像, 보물)과 산령각(山靈閣)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마애불로서 삼천사 경내 계곡의 병풍바위에 각인되어 있다. 두광(頭光)부터 연화좌(蓮花座)까지 조각의 전체 높이는 약 3.03m이고 불상의 높이는 약 2.6m에 달한다. 상호(相好, 부처님의 얼굴)와 불신(佛身)의 상반부는 양감 있게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고, 군의(裙衣)와 광배 그리고 연화좌는 선(線)새김으로 묘사하여 마치 조각 작품인데도 선묘화(線描畵) 같은 느낌을 준다. 불상의 어깨 좌우에 큰 사각형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을 감싸는 목조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배(光背)는 두광과 신광의 표현에 차이를 두고 있다. 두광은 이중의 동심원으로 조각하였고 신광(身光)은 한 줄로 새겼다. 육계(肉髻)는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으로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상호는 반쯤 눈을 뜨고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어서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양 눈썹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있는 있는데 보석을 감입하고 있다. 법의(法衣)는 전반적으로 다소 두껍게 나타내어 새로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대의(大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싼 통견으로 길게 발등 위까지 늘어져 있고 그 안에 입은 내의(內衣)가 가슴부근에 비스듬히 보인다. 내의를 묶은 띠 매듭이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어 장식성을 더한다. 수인(手印)을 살펴보면, 오른손은 허벅지 부근으로 내려뜨려 옷자락을 살며시 잡고 있는 듯 표현하였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배 앞쪽에 위치해 두고 있다. 오른손에 비해 왼손의 동세가 더 크게 표현되어 있는 것에 비례하여 대의의 주름 개수도 차이를 두고 있어서 묘사력을 갖춘 실력 있는 조각가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발밑의 대좌(大坐)는 연꽃잎이 위쪽으로 피어난 앙련(仰蓮)의 연화좌로 표현하였는데 꽃잎은 중엽으로, 꽃잎 사이에는 간엽까지 표현하여 내의의 띠 매듭과 더불어 장식성을 더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원만하고 다소 단조로워 보이지만, 불상의 위쪽과 아래 부근의 조각기법에 변화를 둔 점, 광배 역시 두광과 신광의 차이를 둔 점, 육계는 나발 없이 민머리로 표현하면서도 띠 매듭과 연화좌는 장식성을 가미한 점 등에서 단아함 속에서 다양함을 구사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마애불이라고 할 수 있다.

삼천사지는 고려시대의 유명한 법상종(法相宗) 사찰 터로 고려 전기 현종대에 크게 활약했던 대지국사(大智國師) 탑비(시도유형문화유산)도 발굴되었다. 삼천사지 대지국사 탑비는 마애여래입상과 함께 삼천사의 고려시대 사찰 터의 가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나한전

▲ 나한전(拏漢殿, 오백성중전)

2. 삼천사 대웅보전

삼천사-대웅보전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인증위치인 "삼천사 대웅보전"입니다.

일주문으로-내려가는-길

▲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길

뒤돌아본-대웅보전

▲ 뒤돌아본 대웅보전

3. 세존진신사리불탑

세존진신사리불탑

▲ 세존진신사리불탑

세존진신사리 불탑은 한국 석탑의 새로운 양식으로, 오대산 월정사 8각 9층탑(국보 제48호)과 초전법륜지인 인도 사르나트아쇼까 석주 4두 사자상을 원형 그대로 접목한 탑신 15m로서 삼천사 사부대중의 염원과 아쇼까 왕의 지극한 발원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상륜부의 아쇼까 4두 사자상은 8정도의 가르침이 담긴 법륜에 안치되었고, 9류 중생의 안녕과 보살이 화엄 10지에 이른 후 정토세계의 9품 연대에 오르기를 발원하는 보리심이 불탑에 그대로 묘사되었다. 기단과 탑신부에는 석굴암 8부 신장과 사천왕상, 8보살상과 8여래불이 양각으로 조각되었다. 불탑 복장에는 오색영롱한 세존사리 7과와 불자들이 소지한 금은 칠보로 염원과 정성이 담긴 공양물인 봉안되었다.

4. 일주문

일주문

▲ 뒤돌아본 삼각산 삼천사(三角山 三千寺) 일주문

5층-석탑

삼천사-안내판

▲ 오늘은 블랙야크 북한산 챌린지 360의 '11 TEMPLE TOUR' 인증지 증 하나인 삼각산 적멸보궁 삼천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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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정보

북한산-의상봉

북한산(北漢山, Bukhansan)은 서울시의 성북구·종로구·은평구·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836m). 본래 한산(漢山)이라 불렸는데 ‘큰 산’이라는 뜻의‘산’을 한자로 차음 하여 표기한 것이다. 한산이란 이름은『삼국사기』,『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등에 보이며, 서울 지방의 옛 이름을 한산·북한산·북한산성·북한성·한양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산은 처음에는 산 이름이 아니라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에는 “양주 지경에 있다. 화산(華山)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하였다. 평강현(平康縣)의 분수령(分水嶺)에서 잇닿은 봉우리와 겹겹한 산봉우리가 높고 낮음이 있다. 또 삼각산이 되니, 실은 경성(京城)의 진산(鎭山)이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 온조가 남쪽으로 나와서,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찾았으니, 바로 이 산이다.”라고 하여 여러 다른 이름들이 보인다. 부아악은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 형상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아가 불의 표기이므로 부아 → 불 → 화(火) → 화(華)로 바뀌어 화산이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화산·화악은 세 봉우리가 연꽃이 핀 것과 비슷하다 하여 연화산(蓮華山)의 준말로 쓴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려사』의 삼각산 승가굴의 기록이나,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과『북한지』에 따르면 삼각산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일반화된 이름이다. 삼각산은 인수봉·백운봉·만경봉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루어 나란히 있는 모습 때문에 유래되었는데, 근래에까지 삼각산이란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된 내용을 기록한『북한지』가 출간된 이후 북한산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세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백운봉과 동쪽 인수봉(811m)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졌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801m)는 일명 국망봉(國望峰)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만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위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만경대 서남쪽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노적더미로 의심하였다는 노적봉(718m)과 진흥왕순수비가 있어 이름 붙여진 비봉(527m)이 있다.

국녕대불을 모신 북한산 국녕사

북한산 국녕사 정보

국녕사

북한산성 안에 자리했던 주요 사찰들은 대부분 1712년 성능(聖能) 스님이 북한산성 도총섭이 된 이후에 승병이 머무르는 군영(軍營)으로서 창건되거나 중창이 되었다. 북한산성 가사당 암문 아래에 자리한 국녕사도 1713년 승병(僧兵)의 군영이라는 목적으로 창건된 사찰이다. 당시 승군들은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승군이 머무를 수 있는 도량은 필수적이었다. 창건 이후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군(義僧軍)이 폐지 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이후 노역에 지친 많은 스님들이 떠나게 되어 한국전쟁 이후까지 폐허로 남게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국녕사가 편안하면 나라가 편안하다”고 한다. 이는 도성의 외곽에서 수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던 국녕사의 역할을 잘 표현한 말인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 보경(寶鏡) 스님에 의해 법등을 다시 밝히게 된 국녕사는 1991년 화재로 소실이 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지금의 국녕사는 1998년 폐허를 딛고 가람을 중창한 것이어서 예전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그러나 사찰의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호국의 의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북한산 국녕사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북한산 의상봉, 증취봉, 나한봉 + 국녕사 + 삼천사

3.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268

4. 사찰 관람 코스 : 가사당암문 → 국녕사 국녕대불→ 가사당암문

북한산 국녕사 다음지도 및 대중교통편

1. 북한산 국녕사 다음지도

국녕사-다음지도
카카오맵

2. 대중교통편 : 북한산 국녕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국녕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북한산 국녕사 여행기 및 사진

국녕사

▲ 오늘은 북한산 12 PEAK CHALLENGE인 의상봉, 증취봉, 나한봉 산행 중에 가사당암문에서 북한산 '11 TEMPLE TOUR' 프로그램 중 하나인 국녕사를 다녀왔는데요. 가사당암문에서 11분 정도 걸려 국녕사에 도착했습니다.

국녕사-국녕대불

북한산 '11 TEMPLE TOUR' 인증지인 "국녕사 국녕대불(國寧大佛)"입니다.

용(龍)이 승천했다고 전해오는 용출봉(龍出峰)은 미묘하고 신령스런 기운이 깃든 봉우리입니다. 국녕대불(國寧大佛)은 그로부터 흘러내려 용(龍)의 심장에 해당하는 곳으로 알려진 용(龍) 심혈(心穴)에 자리잡고 있는 국내는 물론 동양최대의 좌불입니다. 지표로부터 총 24m, 80척에 달하는 국녕대불(國寧大佛)은 삼각산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을 지켜주시는 부처님입니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나라 총 인구의 반에 해당하는 국민들이 삼각산의 웅혼한 산정기를 머금고 살아갑니다. 이 같은 실정을 감안해 삼각산에 나라의 으뜸가는 대불을 모시자는 많은 불자들의 염원과 원력을 바탕으로 국녕대불이 모셔졌습니다. 여타 부처님과는 달리 합장 수인을 하신 대불님은 합장환희불로 인도 아쟌타와 중국 돈황 외에 비교적 드물게 모셔지고 있습니다. 합장 환희불을 모신 이유는 부처님을 바라보는 즉시 만중생들에게 합장하는 마음을 일깨우게 하고 모두를 부처로 대하는 합장불의 염원을 이 세상에 펼쳐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대불님을 에워싸는 만불의 부처님은 세세생생 대불님을 모시려는 원력불입니다. 동양 최대의 부처님과 만불전이 함께 하신 곳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매우 드뭅니다. 대불님과 만불님전에서 기도하시는 모든 불자님께 대불님과 만불님의 무량한 가피력이 함께 하실 것을 기원합니다. 특히 일출과 석양의 대불님은 한없는 환희심을 부러 일으키십니다. 무량한 영험도량에서 부디 모든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국녕사

▲ 이 사진은 2017년 3월 5일 북한산성 16문 스탬프 투어 당시, 국녕사를 멀리서 찍은 사진입니다. 오늘은 북한산 '11 TEMPLE TOUR' 인증지인 국녕사를 간단히 소개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