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석성, 서산 해미읍성

서산 해미읍성 정보

서산-해미읍성

해미읍성(海美邑城)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전군(全軍)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영성(兵馬節度使營城)이다. 이 성은 고려 말부터 침입이 잦았던 왜구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을 해미로 옮기면서 1417(태종17)부터 쌓기 시작해 1421년(세종3)에 완공되었다. 주 출입구인 진남문(鎭南門)은 잘 다듬어진 돌로 만든 반원형의 홍예문이다. 성 밖은 해자(垓字)로 둘렀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북쪽 해자의 일부를 복원했다. 기록에는 성벽 위에 여장(女墻)이 있었다고 되어 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성곽 둘레는 1500m이며 높이는 5m로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 주변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흔히 '탱자 성'이라는 뜻으로 지성(枳城)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1622년(효종3)까지 230여 년간 병마절도사영의 기능을 하였지만,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간 후 해미 현감이 겸영장(兼營將)이 되면서 해미읍성이 되었다. 충청도 5군영 중 하나인 호서좌영(湖西左營)으로 1895년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까지 243년간 내포 지방 12개 군현의 군권을 지휘하였다. 영장(營將)은 도적이나 반란 세력을 토벌하는 토포사(討捕使)의 임무도 맡았으므로,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시기에 내포 지역의 신자들이 끌려와 죽임을 당하는 순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해미읍성에는 병마절도사와 겸영장이 집무하던 동헌(東軒)을 비롯해 관아(官衙)와 객사(客舍) 등이 꽉 들어차 있어 장관이었다고 한다. 1579년(선조12)에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도 있고,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해미에서 유배 생활하며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1910년 읍성 철거령에 따라 시설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성안으로 민가가 들어서면서 옛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다가 1973년부터 정비에 들어갔고, 1997년부터는 발굴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 해자(垓字) :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
* 여장(女墻) : 몸을 숨기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 겸영장(兼營將) : 지방 수령이 각 지방의 군사를 통솔하는 일을 겸하며 맡아보던 무관 벼슬.

서산 해미읍성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6년 4월 21일 화요일

2. 여행 장소 : 서산아라메길 천년미소길 트레킹 +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 보원사지 + 개심사 + 해미읍성

3. 소재지 :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65-13), 보원사지 오층석탑(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19-1), 개심사(충남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 해미읍성(충남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

4. 여행 코스 : 해미읍성 진남문(남문) → 문화시설사업소(해미읍성관리소) → 회화나무 → 옥사 → 민속가옥 → 잠양루(동문) → 객사 → 동헌 → 내아 → 청허정 → 북문(암문) → 국궁체험장 → 자성루(서문) → 해미장터 → 해미읍성 진남문(남문) → 해미읍성 관광안내소 → 해미읍성주차장

5. 여행 거리 및 소요시간 : 2.25km(55분, 14:07 ~ 15:02)

서산 해미읍성 지도 및 대중교통편

1. 카카오맵

해미읍성
카카오맵

2. 대중교통편 : 서산 해미읍성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서산 해미읍성 카카오맵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서산 해미읍성 여행기 및 사진

1. 해미읍성 진남문(남문)

진남루

▲ 서산 아라메길 천년미소길 트레킹을 역으로 서산 여래마애여래삼존상에서 출발해 보원사지, 개심사를 경유해 블랙야크 역사문화정 대장정 인증위치인 "해미읍성 진남문 앞"에 도착했는데요. 오늘은 해미읍성을 자세히 소개해드립니다. 해미읍성 왼쪽으로 현감경영장박공민환무공위덕비, 좌영루첩증수비와 오른쪽으로 작은 해미읍성 표지석이 있습니다. 

진남문(鎭南門)은 읍성의 남쪽으로 통하는 성의 정문으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성 안쪽에서 보면 문루 아래를 가로지른 받침돌 중앙에 '황명홍치사년신해조(皇明弘治四年辛該趙)'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황명홍치(皇明弘治)는 명나라 효종의 연호인 홍치를 의미하는데 1491년(성종 22년)에 진남문이 중수(重修)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2. 문화시설사업소(해미읍성관리소)

문화시설사업소

▲ 진남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문화시설사업소(해미읍성관리소)와 남녀화장실이 있는데요. 문화시설사업소에 서산 9경 스탬프투어 제1경 해미읍성 스탬프와 안내책자 등이 있습니다. 

뒤돌아본-진남문

▲ 뒤돌아본 진남문

병장기-전시

▲ 병장기 전시

병장기-전시

▲ 신기전기화차, 검차, 투석기, 불랑기, 대장군포, 화포 등 여러 병장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3. 회화나무, 옥사

회화나무

▲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콩목 콩과에 속하는 관속식물이다. 중국 주나라 시대부터 신분을 상징하는 나무로 선비의 무덤에 심던 나무라하여 '학자수(學者樹)'로 불리며 조선시대 궁궐과 관청에서 유교의 상징 나무로 심어 가꾸어 왔다. 지역 주민들이 '호야나무'라고 부르는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조선후기(1790~1880년대) 천주교 신자들이 수감된 옥사 앞에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던 나무로 천주교 박해와 관련한 역사적 · 학술적 가치가 높아 2024년 10월 21일 충청남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옥사

▲ 옥사

서산 해미읍성 옥사는 조선후기 호서좌영으로서 충청지역 죄인을 가두는 곳이었다. 1926년 「서산군지」에 따르면 7.56평 규모였다고 전한다. 각종 옛지도를 통해서 담장이 둥근 옥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둥근 형태의 담장은 죄인을 감시하는 편리성도 있지만, 교화의 의미도 담고 있다. 1426년(세종8년) 표준설계도인 안옥도(犴獄圖)가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서산 해미읍성 옥사는 1790년부터 100여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했던 곳으로 현재 옥사는 1935년에 쓰인 「해미순교자약사(海美殉敎者略史)」의 기록을 토대로 2005년 복원하였다. 

옥사-안

▲ 옥사 안쪽인데요. 포토존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민속가옥-가는-길

▲ 민속가옥으로 가는 길

4. 민속가옥

민속가옥-3

▲ 민속가옥 3

조선시대 민가로 말단관리인 서리의 집이다. 부엌 1칸, 방 2칸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서산지역의 3칸 초가집이다. 一자형의 평면구성은 우리나라 농촌민가의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 되는 공간배치로서 부엌과 방들이 일렬로 연속 배치되어 있다. 모든 방이 남쪽으로 출입구를 두어 쾌적한 생활공간이 되도록 하고 있다. 방에 갖춘 간단한 문구류가 집주인의 직업을 말해준다. 

민속가옥-2

▲ 민속가옥 2

조선시대 민가로 상인의 집을 재현하였다. 대들보 아래의 방을 일렬로 배치한 즉 단일형 가옥으로, 우리나라 서부와 남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조선 후기 민가의 보편적인 형태이다. 이 지역 민가들은 일반적으로 몸채를 一자형으로 하고 광, 외양간, 측간 등을 하나로 묶어 부속채를 구성한다. 이 가옥 역시 부엌 1칸, 방 2칸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3칸 초가이며 부속채가 딸려 있다. 장사가 주업이지만 텃밭 경작을 위한 기본적인 농기구를 갖추었다.

전통혼례-포토존

▲ 민속가옥 2의 전통혼례 포토존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르는 혼례로 신랑·신부가 마주 보며 초례(醮禮)의 절차에 따라 거행된다. 
◼ 진행순서
① 전안례(奠雁禮) :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의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드림
② 교배례(交拜禮) : 초례상에서 신랑과 신부가 절을 주고 받음
③ 서천지례(誓天地禮) : 천지신명께 부부로 열심히 살겠다는 것을 서약함
④ 서배우례(誓配偶禮) : 서로 좋은 배우자가 될 것을 서약함
⑤ 근배례(巹杯禮) : 신랑과 신부가 표주박으로 술을 서로 따라 마심

민속가옥-1

▲ 민속가옥 1

조선시대 민가로 부농의 집을 재현하였다. 전형적인 서산지역의 민가로서 대청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ㄱ자형 가옥은 一자형 가옥의 기본 평면에서 발전된 것으로, 부엌1 칸, 방 1칸의 기본적인 생활공간의 형태로 필요에 따라 칸이 덧붙여져 확대된 것이다. 이 가옥은 부유한 농가로 각종 농기구와 농산물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와 부속채가 딸려 있는데 부속건물을 마당 한쪽에 치우쳐 지어 농경 작업을 위한 공간 활용을 높였다. 

무궁화동산

▲ 무궁화동산

무궁화는 아욱과의 내한성 낙엽활엽관목으로 꽃은 홑·반겹·겹꽃 등으로 여러가지이고, 꽃 색깔도 흰색·분홍·빨강·보라 등 다양하며 무늬도 여러 가지로 다양한 꽃을 피운다. 개화시기는 7월부터 10월까지로 꽃이 100여 일간 지속된다.

5. 잠양루(동문)

잠양루

▲ 잠양루(동문)

잠양루

▲ 이 잠양루(岑陽樓, 동문) 사진은 서산 아라메길 천년미소길 트레킹 중에 내려오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담장

사거리

▲ 사거리(국국장· 화장실 ↑, 청허정·동헌 →)

6. 객사, 동헌, 내아

동헌

▲ 앞의 건물이 동헌입니다.

객사

▲ 동헌 왼쪽에 있는 객사를 먼저 둘러봅니다. 

객사

▲ 객사(客舍)

객사(客舍)는 건물의 중앙 정청(政廳)에 궐(闕)자가 새겨진 위패(位牌_를 모시고 삭망(매월 초하루, 보름)에 관아의 대소 관원(官員)들이 국왕에 대한 예를 올렸으며, 양편 익실(翼室)은 조정이나 상부에서 파견된 관원 및 귀빈들의 숙소로도 사용된 곳이다. 해미읍성 객사(海美揖城 客舍)는 발굴조사와 고증(考證)을 거쳐 1999년 7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復原)하였다. 

동헌

▲ 동헌(東軒)

동헌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비롯한 현감겸영장(縣監兼營將)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해미 현감겸영장은 12개 군, 현의 병무행정과 토포사(討捕使)를 경한 지위였다. 

동헌-내부

▲ 동헌 내부

내아

▲ 내아(內衙)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官舍)건물로 동헌(東軒)이 고을의 공무를 수행하는 곳인데 반해 내아(內衙)는 살림집이다. 해미읍성 내아(海美邑城 內衙)는 발국조사와 고증을 겇 2000년 11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復原)하였다. 

협문

▲ 동헌과 내아를 둘러보고 동헌의 협문으로 나가서 왼쪽으로 올라갑니다.

계단

▲ 청허정으로 오르는 길(108계단)

여기 돌계단을 하나, 둘 오르면 소나무 그늘이 가득 펼쳐진 곳에 고풍스러운 정자 청허정(淸虛亭)이 나타나는데, 정자 바로 아래까지 모두 108개의 계단을 만나게 된다. 

마음을 맑게하여[淸] 자신에게 임하고, 마음을 비워[虛] 남을 대하며, 그 "맑고 빈 마음으로 다스리라"는 의미를 담아 청허정을 세운 병마절도사 조숙기(1434~1509)의 청렴함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다. 옛 선조들은 시끄러운 속세의 잡사를 잊기 위해 이곳에 올라 가야산의 아득한 흰 구름와 창염수의 정취를 느끼지 않았을까?
*창염수(蒼髥叟) : 푸른 수염을 단 노인이라는 뜻으로, 소나무의 별칭이다. 

오늘날에도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108개의 계단을 오르면 한걸음에 하나씩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면서 복잡한 세상사와 근심을 잊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7. 청허정

청허정

▲ 청허정 오른쪽으로 대나무숲길이, 왼쪽으로 소나무숲길이 있습니다.

청허정

▲ 청허정(淸虛亭)

정자는 일반 가옥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특별히 지은 건물이다. 청허정은 조선 성종 22년(1491) 충청도병마절도사(충청병사) 조숙기가 세웠던 것을 다시 복원한 것으로 조선전기 대표 학자 성현(成俔, 1439~1504)의 개인 문집 「허백당집(虛白堂集)」에 그 유래가 전한다. 정자의 이름인 '청허(淸虛)'는 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이곳에 오는 이들에게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당부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초기의 해미읍성은 충청도 육군사령부 역할을 하는 충청병영성으로 최고 책임자는 병마절도사였다. 조숙기가 병사로 부임하여 해미읍성을 수리하면서 소나무 숲이 우거진 뒷동산에 청허정을 지었다. 이후 이곳에 온 관리들은 청허정에서 무예를 익히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시를 짓고 글을 남겼다. 1494년 방문환 충청감사 조위(曺偉, 1454~1503)는 청허정 주변 소나무와 멀리 보이는 바다의 풍경에 대한 시를 남겼고, 권오복(權五福, 1467~1498)의 문집 「수헌집(睡軒集)」에 절도사와 수령이 일을 마치고 청허정에 모여 지은 시가 전한다. 1579년 충청병영에서 근무했던 이순신, 1790년 해미로 귀양 왔던 다산 정약용도 이 청허정에 머물렀을 것이다. 1872년 「해미현지도」에는 옛터(古址)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800년대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자리에 일본식 신사(神社)가 세워졌다가 광복 후 철거되었고, 1976년 복원한 후 2011년에 다시 정비하였다. 

누운-소나무

▲ 길 위로 누운 소나무

성곽-갈림길

▲ 이곳에서 성곽쪽으로 바로 올라가보려 했는데, 안전사고 예방과 성곽보호를 위해 보행을 제한하고 있었네요.

소나무숲길-사거리

▲ 소나무숲길 사거리에서 오른쪽 북문(암문)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8. 북문(암문)

북문-암문

▲ 북문(암문)을 관람하고 왼쪽으로 내려갑니다. 북문도 성곽 위쪽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네요.

삼거리

▲ 소나무숲길 삼거리

해미읍성

9. 국궁체험장

국궁체험장

▲ 국궁체험장

10. 자성루(서문)

자성루

▲ 자성루

자성루-서문

▲ 자성루(서문)

쉼터

▲ 쉼터

해미읍성

11. 해미장터

연-판매소

▲ 연판매소

복식체험장-삼거리

▲ 복식체험장 삼거리

복식체험장

▲ 복식체험장(옛날옷 입어보는 곳)

전통찻지브

▲ 전통찻집과 기념품 판매점(옛날 호떡)

해미읍성

▲ 탱자성 사랑방(차, 빵)

진남문

어서와-해미읍성은-처음이지

▲ 어서와 해미읍성은 처음이지? 포토존

해미읍성-안내도

▲ 서산 해미읍성 안내도

12. 해미읍성 진남문(남문)

해미읍성-진남문

▲ 서산 해미읍성 진남문에서 시작해서 반시계방향으로 한바퀴 해미읍성을 돌아보고 해미읍성주차장으로 이동합니다.

13. 해미읍성 관광안내소

해미읍성-관광안내소

▲ 횡단보도를 건너면 해미읍성 관광안내소와 관광안내소 왼쪽으로 주차장이 있습니다.

14. 해미읍성주차장

해미읍성주차장

▲ 해미읍성주차장입니다. 대형주차장 방향으로 죽 이동합니다. 

해미읍성-대형주차장

▲ 해미읍성 대형주차장(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103-2)에서 해미읍성 관람을 마칩니다. 해미읍성을 찾으시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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