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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양 북한산 : 북한산성 입구 ~ 원효봉 ~ 백운대 ~ 노적사 ~ 대서문 ~ 북한산성 입구

북한산 정보

북한산-백운대
북한산(北漢山 Bukhansan)은 서울시의 성북구·종로구·은평구·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836m). 본래 한산(漢山)이라 불렸는데 ‘큰 산’이라는 뜻의‘산’을 한자로 차음 하여 표기한 것이다. 한산이란 이름은『삼국사기』,『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등에 보이며, 서울 지방의 옛 이름을 한산·북한산·북한산성·북한성·한양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산은 처음에는 산 이름이 아니라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에는 “양주 지경에 있다. 화산(華山)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하였다. 평강현(平康縣)의 분수령(分水嶺)에서 잇닿은 봉우리와 겹겹한 산봉우리가 높고 낮음이 있다. 또 삼각산이 되니, 실은 경성(京城)의 진산(鎭山)이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 온조가 남쪽으로 나와서,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찾았으니, 바로 이 산이다.”라고 하여 여러 다른 이름들이 보인다. 부아악은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 형상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아가 불의 표기이므로 부아 → 불 → 화(火) → 화(華)로 바뀌어 화산이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화산·화악은 세 봉우리가 연꽃이 핀 것과 비슷하다 하여 연화산(蓮華山)의 준말로 쓴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려사』의 삼각산 승가굴의 기록이나,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과『북한지』에 따르면 삼각산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일반화된 이름이다. 삼각산은 인수봉·백운봉·만경봉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루어 나란히 있는 모습 때문에 유래되었는데, 근래에까지 삼각산이란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된 내용을 기록한『북한지』가 출간된 이후 북한산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세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백운봉과 동쪽 인수봉(811m)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졌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801m)는 일명 국망봉(國望峰)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만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위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만경대 서남쪽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노적더미로 의심하였다는 노적봉(718m)과 진흥왕순수비가 있어 이름 붙여진 비봉(527m)이 있다.

호남의 내금강, 고창 선운산

고창 선운산 정보

고창-선운산

선운산(禪雲山) 전북 고창군의 아산면과 심원면 경계에 걸쳐 있는 선운산도립공원의 중심으로 수리봉을 주봉으로 하는 산이다(고도:336m). 주진천(인천강) 서쪽에 위치하여 천왕봉을 중심으로 개이빨산, 청룡산, 비학산, 경수산, 구황봉 등이 북서쪽으로 흐르는 선운천 골짜기만을 살짝 열어둔 채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어 마치 천혜의 요새를 떠오르게 한다. 원래 도솔산(兜率山)이라고 하였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하는‘도솔’이나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선운’ 모두 불교와 관련된 명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무장)에는“선운산은 선(禪)을 선(仙)으로도 쓴다. 현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져 있다.”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동일문헌에 소개되어 있는 선운산곡(禪雲山曲)은 무등산가·지리산가·정읍사 등 다섯 편의 백제가요 중 하나이다. 『고려사』(악지)에 “선운산은 장사 사람이 병역에 나갔는데, 기한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그의 처가 남편을 생각하고 선운산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부른 노래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무장현 지도에 선운산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해동지도』 에 무장현 북단에 선운산이 기재되어 있으며 도솔암, 선운사가 함께 그려져 있다. 

백두대간 28구간 : 이화령 ~ 조령산 ~ 신선암봉 ~ 문경새재 3관문 ~ 문경새재 2주차장

백두대간 28구간 정보

조령산

1. 이화령(梨花嶺) 

이화령(548m)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사이에 있는 고개로 조령산과 백화산 사이에 위치한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고개가 가파르고 험하여 산짐승의 피해가 많으므로 전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함께 넘어갔다 하여 이우릿재라 하였으나 그 후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아서 이화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화령에서 깃대봉 구간은 도상거리는 짧은 편이지만 험준한 암반지역이 많기 때문에 실거리가 매우 길고 안전사고 위험도 매우 높은 지역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화령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 도로개설로 단절되었으나 87년 만인 2012년 산림청과 행정안전부의 주관하에 생태축을 연결하였다. 

2. 조령산(鳥嶺山) 

조령산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 1,017m의 한강과 낙동강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고 있는 산이다. 조령산에서 남쪽의 백화산 사이의 고개가 이화령, 북쪽의 문경새재라 불리는 조령 제3관문(조령관)이 위치한다. 이를 통해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이 연결되어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험난한 지세를 이용할 수 있어 군사상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현재 이 일대는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령산의 주능선 상에는 정상 북쪽으로 신선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암봉과 암벽 지대가 많다. 능선 서편으로는 수옥폭포와 용송골, 절골, 심기골 등 아름다운 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변산 : 남여치 ~ 재백이고개 ~ 관음봉 ~ 직소폭포 ~ 내소사 ~ 내소주차장

변산(내변산) 정보


변산 직소보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 위치한 산이다(고도:510m). 최고봉은 의상봉이며 예로부터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이라 불렸고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꼽혀왔다. 서해와 인접해 있고 호남평야를 사이에 두고 호남정맥 줄기에서 떨어져 독립된 산군을 형성하고 있다. 내변산에는 높이 20m의 직소폭포(直沼瀑布), 높이 30m와 40m의 2개 바위로 된 울금바위,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뻗은 우금산성(禹金山城) 외에 가마소, 봉래구곡, 분옥담, 선녀당, 마소, 용소(龍沼), 옥수담(玉水潭) 등 명소가 있다. 또 내소사(來蘇寺), 개암사(開岩寺)등 사찰이 있고 호랑가시나무, 꽝꽝나무, 후박나무 등 희귀식물의 군락이 서식하고 있다.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월명낙조’로 이름난 낙조대(落照臺)의 월명암(月明庵)도 유명하다. 외변산에는 해식단애(海蝕斷崖)의 절경을이루는 채석강(採石江:도 기념물 28), 적벽강(赤壁江:도기념물29)이 있고 그 밑 해안에는 경사가 완만한 변산해수욕장을 비롯해 고사포해수욕장, 격포해수욕장 등 여름철 휴양지가 많다.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명은 삼한의 변한(弁韓)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부안)에는“보안현에 있다. 지금 현과의 거리는 서쪽으로 25리인데, 능가산으로도 불리고, 영주산으로도 불린다. 혹 변산(卞山)이라고도 하는데, 말이 돌아다니다가 변(邊)으로 되었다 한다. 변한(卞韓)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 이 때문이라 하나 봉우리들이 백여 리를 빙 둘러 있고 높고 큰 산이 첩첩이 싸여 있으며, 바위와 골짜기가 깊숙하여, 궁실과 배의 재목은 고려 때부터 모두 여기서 얻어 갔다. 전하는 말에는 호랑이와 표범들이 사람을 보면 곧 피하였으므로 밤길이 막히지 않았다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산청·함양 지리산 : 중산리 ~ 로타리대피소 ~ 천왕봉 ~ 장터목대피소 ~ 중산리

지리산 정보

지리산
경남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 일대에 있는 산이다(고도:1,915m). 지리산은 백두산에서 비롯하여 낙남정맥으로 갈라지는 백두대간의 결절지이다. 지리산은 3개 도, 5개 시·군, 15개 면에 걸쳐 있고 그중 천왕봉은 산청군의 영역에 속해 있다. 지리산은 크게 낙동강수계 · 금강수계 · 섬진강수계로 삼분되며, 산청군 영역은 낙동강 수계로 하천이 유입된다. 군의 시천면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길은 지리산의 정상에 오르는 최단거리로서 예부터 주등산로로 이용되었다.『신 증동국여지승람』(산음)에 지리산은 현 서쪽 30리 지점에 있다. 사찰로는 지곡사(智谷寺)가 있으며 여기에는 고려 예부상서 손몽주(孫夢周)가 지은 승려 몽월 및 진관의 두 비가 있다.”라고 기록되었다. 『해동지도』(산음)에 지리산이 표기되었고, 『해동여지도』(함양)에는 지리산 천왕봉이 표기되었다.『지승』(산청)의 함양 경계부의 산맥에서는‘지리산 아래의 맥(智異山下脈)’이라고 표기하였다. 조선시대의 많은 유학자들은 지리산 천왕봉을 유람하고 유산기와 시문(詩文)을 썼다. 점필재 김종직( 畢齋金宗直, 1431~1492)은  1471년 함양태수로 부임하고 이듬해에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맞이한 후에 “천왕봉에 오른 노고도 잊고서, 정상에서 아득한 우주 밖을 보는구나. 광대한 첩첩 봉우리들 굽어보니, 천지의 울타리 벗어난 듯하구나.”라고 감회를 읊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