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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33구간 : 저수령 ~ 시루봉 ~ 솔봉 ~ 묘적령 ~ 고항재

백두대간 33구간 정보

백두대간-33구간-시루봉

1. 저수령(低首嶺, 850m)

이 곳은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명 올산리를 경계로 한 도계(道界) 지점으로 경북과 충북을 넘나드는 이 고개 이름은 옛부터 저수령(해발 850m)이라로 불리워 왔다.

저수령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이전에는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며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뜻으로 불리워 졌다고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殷豊谷)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外敵)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도로는 지방도 927호로 1994년도에 개설 완료하여 충북과 서울, 강원지방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광 및 산업도로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남쪽(예천 방향) 1.6km 아래 지점에는 멀리 학가산이 바라보이는 아늑한 산자락에 경상북도와 예천군에서 쾌적한 휴게공원을 조성하여 이곳을 지나는 많은 길손들의 쉼터로 제공되고 있다.

2. 시루봉(1,110m)

시루봉(1,1100)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을 경계로 하는 봉우리이다. 산의 모양이 떡을 찌는 시루와 같이 생겨서 붙은 이름인데, 뭉뚝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있다. 시루봉에는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신구리로 넘어갈 수 있는 갈림길이 있다.

저수령에서 죽령구간은 18km가 넘는 긴 구간으로 저수령 ~ 촛대봉 ~ 시루봉 ~ 싸리재 ~ 솔봉 ~ 묘적령 ~ 도솔봉 ~ 삼형제봉 ~ 죽령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저수령부터 시루봉까지는 경사가 급한 편이며, 시루봉에서 묘적령까지는 대체로 평이하게 이동할 수 있다. 죽령으로 향하는 길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시간 조절이 필요하며, 하산시간이 늦어지면 갈림길을 통해 하산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갈림길은 묘적령을 통해서 동쪽에 있는 고항재로 내려가는 구간과 싸리재를 통해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백두대간 36구간 : 좌석리 ~ 고치령 ~ 마당치 ~ 국망봉 ~ 어의곡주차장

백두대간 36구간 정보

백두대간-36구간-국망봉

1. 고치령(古峙嶺, 760m)

고치령은 소백산 국립공원내에 있는 백두대간의 고갯길로서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 마락리 -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잇고 있다. 소백과 태백 사이인 양백지간(兩白之幹)의 남쪽 들머리에 고치(古峙)가 있고 이는 우리말로 '옛 고개' 라 하는데 산라때 이 고개 아래에다 대궐터를 잡으면서 옛 고개라 부르다 차차 변하여 고치령이라 하였다.

2. 소백산 국망봉(國望峰, 1,420.8m)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와 경상북도와의 도계(道界)를 이루는 한 봉우리를 국망봉(國望峰)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敬順王)은 나라를 왕건(王建)에게 빼앗기고 천년사직과 백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명산과 대찰(大刹)을 찾아 헤매다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 궁뜰에 동궁저(東宮邸)라는 이궁을 짓고 머물고 있었다. 덕주공주는 월악산 덕주사에 의탁하여 부왕을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가련한 모습을 암벽에 새기기도 하였다.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도 신라를 왕건으로부터 회복하려다 실패하자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을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개골산으로 들어갔다. 마의태자가 개골산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로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단양읍지)

백두대간 34구간 : 고항재 ~ 묘적령 ~ 묘적봉 ~ 도솔봉 ~ 삼형제봉 ~ 죽령

백두대간 34구간 정보

백두대간-34구간-정보

1. 묘적봉(妙積峰, 1,148m)

묘적봉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능선상의 산으로 소백산 국립공원 최남단에 위치한 산이다. 등산 들머리인 사동리 마을은 구한말 관군에 쫓긴 동학군이 들어와 살았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골짜기가 깊고 아름답다. 묘적봉은 주위 명산들의 명성에 밀려 섭섭한 마음으로 소백산국립공원 최남단을 외롭게 지키고 있다.

2. 도솔봉(兜率峰, 1,314.2m)

도솔봉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인 죽령의 남쪽에 있는 백두대간 봉우리로 북쪽에는 소백산이 자리하고 있다. 도솔봉은 소백산의 축소판같은 기분이 드는 산이다. 왜냐하면 소백산과 같이 철쭉과 진달래가 동산을 이루며 각종 고산식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솔봉 산행의 매력은 펑퍼짐한 소백산과는 달리 날카롭고 아기자기한 능선의 바위봉이 많아 스릴있는 산행을 즐기기에 그만이라는 데 있다.

3. 죽령(竹嶺)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록한 지점에 자리한 해발 689미터의 죽령은 <삼국사기>에 「아달라왕 5년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죽죽(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했고, 고갯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이 있다」고 했다. 유구한 유서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에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엎치락 뒤치락 하는 불꽃뛰는 격전장이기도 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서기470년경)까지이며, 신라는 진흥왕 12년(서기551년) 왕이 거칠부 등 여덟 장수에게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 이북 열고을을 탈취했으며, 그 40년 뒤인 영양왕 1년(서기590년) 고구려 명장 온달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등의 기록으로 보아 당시 죽령이 얼마나 중요한 지역이었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1910년대까지도 경상도 여러 고을에서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와 공무를 수행하는 관원, 온갖 물산을 유통하는 장사꾼들이 서울 왕래에 모두 이 길을 이용했기에, 늘 번잡했던 이 고갯길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 마방들이 길목마다 늘어서 있었다.

백두대간 11구간 : 무주리조트 ~ 덕유산 향적봉 ~ 백암봉 ~ 지봉 ~ 빼재

백두대간 11구간 정보

백두대간-11구간-덕유산

1. 덕유산(德裕山, 1,614m)

덕유산은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의 경계를 이루며, 2도 4군 8개면에 걸쳐있다. 한라산.지리산.설악산에 이어 남한에서 4번째로 높고 1000미터 이상의 봉우리가 20개도 넘는 거대한 산이다. 덕유라는 이름은 덕이 있고 크며 넉넉한 산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무학대사가 골치아픈 정권에서 벗어나 첩첩산중 경치 아름다운 산을 물색하다가 발견했다는 산이 바로 덕유산이다. 

2. 빼재(930m)

빼재(930m)는 덕유산 갈미봉(1,210m)과 삼봉산(1,254m) 사이에 있는 곳으로 경상북도 함양군 또는 거창군과 무주구천동을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신풍령과 수령이란 이름으로도 불렀으나 모두 잘못된 표기이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던 곳으로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의 뼈를 묻어야 했으며, 임진왜란 때 이곳의 토착민들이 산짐승들을 잡아먹으며 싸움에 임해 많은 뼈가 문힌 곳이라 하여 빼재라 한다. 1870년대 천주교의 탄압이 심해졌을 때 많은 천주교 신부와 신자들이 이곳 빼재를 은신처로 삼고 활동하였다고 한다. 현재 빼재에서 거창군 방면으로 100m만 이동하면 과거 신풍령 휴게소를 복원하여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으로 설치하였다.

백두대간 40구간 : 두문동재 ~ 함백산 ~ 만항재 ~ 수리봉 ~ 화방재

백두대간 40구간 정보

백두대간-40구간-함백산

1. 두문동재

'두문분출(杜門不出)'이라는 말은 '두문동(杜門洞)'에서 유래되었다. 본래 두문동은 고려 말기 유신들이 조선에 반대하여 벼슬살이를 거부하고 은거하여 살던 곳으로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서쪽의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조선 초 경기도 두문동에 살던 고려 망국 유신 가운데 일부가 삼척 땅에 유배 온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을 뵈러 왔다가 공양왕이 타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태백의 건의령에서 관모와 관복을 버리고 이 고개를 넘으며 불사이군(不事二君. 두명의 임금은 섬길 수 없다.) 정신으로 이 고개 밑에 있는 정선에서 두문동이란 이름을 짓고 터전을 잡게 된 것이다. 그래서 두문동재(1,268m)란 지명이 생겼다. 

2. 함백산

산경표에서는 ‘크고 밝은 뫼’의 뜻으로 대박산(大朴山), 삼국유사에서는 묘범산(妙梵山)이라 불린 함백산(1572.9m)은 5대 적멸보궁인 정암사를 품고 있으며 지하에는 무진장의 석탄을 간직한 남한 제6위의 산이다. 함백산이 품고 있는 정암사는 1300여년 전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의 계시에 따라 갈반지(葛盤地)를 찾아 큰 구렁이를 찾은 후 그 자리에 적멸보궁과 수마노탑을 짓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적멸보궁 옆 주목은 자장율사가 꽂아둔 지팡이가 살아난 것이라 해 ‘선장단’이라 부른다. 함백산 정상 부근은 주목이 군락을 이루며, 두문동재에서 만항재까지의 고원 지역에는 참나물, 누리대, 취나물 등 산나물이 많다. 특히 겨울산행을 하다보면 주목과 고사목에 핀 눈꽃이나 상고대가 추위조차 잊게 해 줄 만큼 아름답다. 함백산의 대표 등산로 중 하나인 만항재는 해발 1330미터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도로며 두문동재는 1268미터로 만항재와 버금가는 높이다.

3. 만항재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산동읍, 그리고 태백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개인 만항재는 남한에서 여섯번째로 높은 함백산 줄기가 태백산으로 흘러내려가다가 잠시 숨을 고른 곳이다. 또한, 만항재는 해발 1,330m로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1,089m)보다도 높은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만항재에서 도로를 따라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일제강점기부터 탄광개발이 시작된 만항(晩項)마을이 있다. 만항재에는 야생화 공원이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7월 말에서 8월초까지 고한함백산 야생화 축제가 펼져질 정도로 야생화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