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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통영 한산도 제승당

통영 한산도 제승당 정보

한산도-제승당

제승당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조선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세계해전사상 길이 빛나는 한산대첩을 이룬 후, 제승당을 짓고, 선조 26년(1593)부터 선조 30년(1597)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아 제해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유서깊은 사적지이다. 

선조 30년(1597)에 일단 폐진되었던 제승당은 142년 후인 영조 15년(1739) 통제사 조경이 중건하고, 유허비를 세운 이래 1959년 정부가 사적으로 지정하고 여러차례 보수하여 왔다. 1975년 정부는 경역을 확장하고 보수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정화하였다. 이곳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공의 영정을 모신 영당과 유허비, 그리고 많은 송덕비, 사정, 수루 등 부속시설이 말끔히 단장되어 있어 수려한 주변경관과 더불어 당시 조선 수군본영의 면모를 되찾아 볼 수 있다. 공은 가셨어도 나라 사랑하시던 그 마음은 출렁이는 푸른바다와 함께 언제까지나 살아 남아 조국 수호의 영원한 횃불이 되고 있다.

해금강의 일출 비경을 조망할 수 있는 거제 우제봉전망대

거제 우제봉전망대 및 해금강 정보

거제-우제봉전망대

1. 우제봉전망대

우제봉 정상의 북쪽에 설치한 전망대로 불로장생초를 구해 오라는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불이 다녀간 마애각이 있었다는 우제봉 정상과 해금강의 비경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액자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어 해금강을 배경으로 멋진 추억을 담을 수 있다. 

2. 해금강

수억 년 파도와 바람에 씻긴 형상이 갖가지 모습을 연출하는 해금강 

생태적 보전가치가 높은 이 섬의 원명은 갈도(葛島)이다. 자연경관이 빼어나 1971년 명승 제2호로 지정되어 ‘거제 해금강’으로 등재되었다. 수억 년 파도와 바람에 씻긴 형상이 갖가지 모습을 연출한다. 사자바위, 미륵바위, 촛대바위, 신랑바위, 신부바위, 해골바위, 돛대바위 등으로 둘러싸인 해금강은 서복(서불)이 중국 진시황제의 불로 장생초를 구하러 왔다 하여 ‘약초섬’으로도 불린다. 수십 미터 절벽에 새겨진 만물상과 열십자로 드러나는 십자동굴은 가히 조물주의 작품이다. 사자바위 사이로 솟아 오르는 일출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다. 유람선을 이용하여 선상관광할 수 있다. 섬의 원명은 갈도(葛島:칡도)였으나 강원도에 있는 해금강과 같이 아름답다하여 해금강으로 불리게 되었다. 해와 달이 이곳 바위 위에서 뜬다고 하여 일월관암(日月觀岩), 병풍과 같이 생겼다고하여 병풍바위, 신랑신부가 마주서서 전통결혼식을 올리는 모습과 같다하여 신랑신부바위, 돛대바위, 거북바위, 미륵바위 등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구례 지리산 화엄사

구례 지리산 화엄사 정보

화엄사

화엄사는 백제 성왕 때 인도의 스님이신 연기대사가 문수보살의 현몽으로 비구니스님이신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으로 오게 된 천 년 넘은 고찰이며 지리산에 숨어있는 보물창고 같은 절입니다. 나라에서 정한 문화재들이 곳곳에 숨어있고 보물보다 더 아름다운 보물들이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엄사는 한 번에 다 담아갈 수 없는 절입니다. 1500년을 이어 온 화엄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걸린 구름과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함께 머무르는 곳이니 자연스럽게 몇 번이고 다시 찾게 되는 절입니다.

화엄사는 544년에 연기(緣起) 조사께서 창건하였습니다. 연기조사는 화엄경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자락 황전골에 전각 두 채의 작은 절을 지었습니다. 절의 이름을 화엄경에서 따서 화엄사라 했습니다. 화엄경은 부처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를 기록한 경전이니 화엄사가 곧 부처님의 세계이고 깨달음의 성지라는 뜻입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에는 의상대사께서 화엄사를 화엄종의 원찰로 삼아 머물고, 신라 경덕왕 때 이르러 8 가람, 81 암자의 대사찰이 되었습니다. 이때 남방제일화엄대종찰이란 명성을 얻었다고 합니다. 각황전 기단, 각황전 앞의 석등과 대석단, 동서오층석탑, 그리고 효대라 불리는 사사자삼층석탑과 석등이 당시의 유적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화엄사의 혜안선사와 벽암선사께서 승군을 일으켜 땅을 지키고 자운스님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 바다를 지켰습니다. 비록 주지스님인 설홍대사와 300여 스님들이 목숨을 잃고 화엄사가 왜군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지만 중생을 살피고 나라를 지키려는 정신을 고이 간직한 곳이기도 합니다. 불타버린 화엄사는 1630년경 나라의 지원을 받아 벽암선사에 의해 여러 전각이 복원되었습니다.

이처럼 화엄사는 질곡의 역사 앞에 비켜서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부흥쇄락의 시기가 반복되었지만 지리산의 은근함을 닮은 불법의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맑은 물, 신선한 공기. 천 년의 자비와 미소가 숨 쉬는 지리산 화엄사. 지리산의 풍광과 섬진강의 바람이 함께하는 산사 체험을 통해 영혼을 밝히는 참다운 지혜를 만나보세요.

인천 만월산 약사사

인천 만월산 약사사 정보

만월산-약사사

만월산(滿月山) 약사사(藥師寺)는 대한불교화엄종의 본산으로 고려가 건국될 때 왕명으로 만월산 아래 개국사(開國寺)로 창건하여 항상 10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정진한다 하여 절이름이 백인사(白人寺)로 바뀌었다. 그 후 조선시대 배불정책으로 제9대 성종 임금 때 폐쇄되었던 것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시던 보월스님께서(1900년) 중생들의 괴로움의 근본인 무명업식을 깨우쳐 주어야겠다는 큰 서원으로 동방만월세계 약사유리광여래 부처님을 모시고 약사암(藥師庵)이라 명칭하고 보월스님의 뒤를 이어 인천 혜광사에서 수도 중이시던 월승 한능해스님께서 재중창하여 끝없는 서원과 정진으로 화엄종 대본산 약사사(藥師寺) 대가람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양양10경 죽도정과 죽도 산책로 걷기

양양10경 죽도정 정보

죽도정

새소리 바람소리 쉬어가는 곳 죽도정(竹島亭)은 면민의 자발적 모금으로 시작하여 지방행정 지원으로 1965년 5월 13일 준공되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휴식처로 즐기고 놀던 곳이고 일출명소이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기암괴석의 다양한 모습들과 뛰어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참고로 양양 10경은 남대천, 설악산 대청봉(1,708m), 오색령(한계령), 오색주전골, 하조대, 죽도정, 남애항, 낙산사 의상대,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양양 서핑로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