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한산도 정보
1. 한산도
경남 통영시 한산면의 가장 큰섬이자 중심으로 두억리 · 염호리 · 창좌리 · 하소리 4개 법정리가 있고, 동쪽은 거제도, 서쪽은 미륵도, 북쪽은 고성반도, 남쪽은 용초도 · 추봉도 · 비진도 등에 싸여 있다. 남동쪽 추봉도와는 2007년 추봉교가 개통되어 연결되었다. 섬 중앙에 망산(293.5m), 북쪽에는 고동산(189m)이 있고 섬 전체가 200m 안팎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해식애가 곳곳에 분포한다. 북서쪽 해안은 한산만으로 고동산 아래에서 바닷길이 두갈래로 나뉘어 염호리와 두억리까지 들어온다. 한산만 입구에 있는 해갑도와 상죽도 · 하죽도가 천연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한산이라는 지명은 거제도 서쪽에 인접한 수많은 섬가운 데 가장 대표적으로 큰 섬이란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외에 한산도가 통영과 거제 앞바다를 방패로 막고있다는 뜻에서 ‘막을 한(閑)’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을 막은 곳이라는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세종실록』에 ‘한산도’ 라는 지명이 먼저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 이후에 유래한 지명은 아니다.
1592년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을 펼쳐 왜선을 크게 격파하였고, 이듬해 한산도에는 첫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었다. 한산도의 삼도수군통제영은 견내량을 방어하고 왜군이 서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하는 전진기지가 되었다. 조선 후기까지 거제현에 속하였고, 1900년(광무 4) 진남군이 설치되면서 편입되었다. 『1872년지방지도』(통영)에 제승당(制勝堂)과 주변 여러 섬을 그려 놓았다. 제승당은 한산도 통제영의 운주당(運籌堂)이었는데, 정유재란 때 원균이 이끌던 수군이 칠천량에서 패퇴하면서 소실되었다. 이후 1740년(영조 16)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이 옛터에 유허비를 세우고 제승당이라 이름한데서 비롯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30년대에 중수한 것이다.
2. 한산도 역사길(구간 : 덮을개 ~ 망산 ~ 진두, 거리 : 12km, 소요시간 4시간)
충무공 이순신의 자취를 따라 역사를 테마로 조성한 도보 코스
제승당에서 배를 내려 덮을개를 지나고 섬의 최고봉 망산(293m)을 넘어 진두에 이르는 12km의 제법 긴 역사길은 크게 망산 이전과 망산 이후로 나뉠 수 있다. 망산에 이르기까지 너울을 넘나들 듯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꾸준히 정상으로 향하다 망산 정상에서 제승당 선착장 건너 마을로 찬찬히 내려 이르는 식이다. 길 내내 워낙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길을 가는 터에 사위가 바다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정도이다. 만만한 섬 걷기 길이라 보기에는 조금 수고가 필요하며, 너무 바삐 걷지 않으면 4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섬의 최고봉을 넘나드는 길이지만 망산에 올라 다도해를 내려다 볼 때의 짜릿함은 모든 수고를 보상하고 남는다.
3. 망산(望山, 293.5m)
경남 통영시의 한산면 두억리에 있는 산이다(고도:293.5m). 한산도 남쪽 두억리와 하소리에 걸쳐 있다. 『광여도』(거제)에는 소망(小望)으로 적고 봉수대 표시를 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지도에 봉수는 봉수대 표시와 함께 봉수라고 적고 있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실제 봉수는아니고 해안 감시를 주목적으로 하였던 곳으로 보인다. 『해동지도』(거제)와 『여지도』(거제)에도 소망으로 적고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는 망월산(望月山)으로 기록하였다. 산 정상에서 왜적의 침략을 망(望) 보았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산봉우리를 의미하는 방언 망(望)과 산(山)이 중첩된 지명이라는 설이 있다. 『난중일기』에 “한산도 뒤편 산정에 오르면 다섯 섬과 대마도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하기에 혼자 말을 타고 올라가니 과연 다섯 섬과 대마도가 보였다.”라고 썼다. 러 · 일전쟁 때는 일본군이 산 정상에 망대를 설치하여 러시아 함대가 대한해협으로 항진하는 것을 탐진하였다고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