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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호수길 5구간 가족길

횡성호수길 5구간 가족길 정보

횡성호수길-5구간
횡성호수길은 2,000년에 횡성댐이 완공되면서 생성된 인공호수인 횡성호수를 중심으로 6개 구간, 총 31.5km의 길이 조성되었는데요. 횡성호수길 5구간 가족길은 망향의 동산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돌아오는 코스인 A코스와 오두막 쉼터 근처에서 시작해 횡성호 쉼터를 거쳐 회귀하는 B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횡성호수길 중 5구간 가족길은 가장 가까이에서 한폭의 그림같은 횡성호수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코스로 관강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코스입니다.  

진달래 명소 중의 하나인 강화 고려산

강화 고려산 정보

고려산

고려산(高麗山, Goryeosan)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강화읍·송해면·하점면·내가면이 경계하는 지점에 위치한 산이다(고도:436m). 강화 6대 산의 하나로 전한다. 강화도에서 마니산(469m)·혈구산(466m)·진강산(441m)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1696년에 편찬된 『강도지』에 “홍릉(洪陵)과 국정(國淨), 적석(積石), 백련(白蓮) 등의 세 절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화부 서쪽 15리에 있으며 강화부의 진산(鎭山)이다.”라고 되어 있다. 『강화부지』에도 강화부의 진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와 『조선지지자료』에서 지명이 확인된다. 『대동여지도』에는 고려산(高呂山)으로 한자 표기가 되어 있고 동쪽 산록 끝에 강화읍성이 위치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고려산은 정상부에 커다란 연못이 있고 그곳에서 다섯 가지 색깔의 연꽃이 핀다는 유래로부터 ‘오련산(五蓮山)’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정동 쪽에 강화읍이 위치해 있다.

창녕박물관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박물관과 교동 가야고분군 정보

창녕박물관-교동-가야고분군
1. 창녕박물관

창녕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창녕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및 계성고분군 등 창녕의 고분군에서 출퇴된 유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데요. 특히 전시관 중앙홀에는 고총고분의 축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관(디오라마)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고대사회 고분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2.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구릉 일대에 조성된 고대 비화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이다. 고분군의 범위는 창녕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릉 경사면에서 서쪽으로 뻗은 가지능선까지 이어진다.고분군에는 봉분이 남아 있는 무덤 120여 기, 봉분이 남아 있지 않은 무덤 180여 기 등 모두 300여 기가 넘는 무덤이 있다. 고분군은 무덤의 분포에 따라 크게 4개의 지구로 나누어지며, 각 지구에는 대형 무덤을 둘러싸고 중소형 무덤이 밀집 분포하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무덤의 구조는 대부분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과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이다. 하나의 봉분 안에 하나의 덧널이 있는 형태이며, 별도의 딸린덧널(副槨)이나 순장덧널(殉葬槨)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앞트기식돌방무덤은 고분군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다. 가야 고유의 무덤 구조인 구덩식돌덧널무덤에 입구를 설치한 특이한 형태로 비화가야만의 독특한 무덤 형태로 알려져 있다. 봉분은 만들어진 위치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공간을 구획하여 쌓아 올렸는데, 이는 철저한 계획에 의해 무덤이 만들어졌음을 말해준다. 비화가야를 대표하는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이자 낙동강을 통한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의 여러 가야는 물론이고 신라, 백제,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라·백제에서 전해지거나 영향을 받은 장식말갖춤(裝飾馬具), 금동관(金銅冠), 청동세발손잡이솥(靑銅製鐎斗), 둥근고리큰칼(環頭大刀), 은제허리띠와 대가야의 귀걸이, 일본산 녹나무로 만든 관, 사슴뿔로 만든 긴칼(長劍), 조개장식 말띠꾸미개(貝製雲珠) 등이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그 외 출토된 토기는 비화가야만의 특색 있는 무늬와 형태를 가진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를 비롯해 바리모양그릇받침(鉢形器臺), 긴목항아리(長頸壺)가 대표적이다.무덤의 구조와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대부분의 무덤들이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창녕이 신라로 편입된 이후인 7세기까지 고분군 내에 신라식 돌방무덤이 소규모 군집으로 만들어지고 있어 가야에서 신라로의 무덤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의 성립과 발전, 가야에서 신라로의 전환 과정, 고대 한반도 안팎의 정치세력 간 교류와 교섭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중요한 기념물이다.
* 두 개의 봉분이 표주박처럼 서로 이어 붙어 있는 무덤 양식.
** 돌로 세 벽을 쌓고 천장돌을 덮어 무덤방을 만든 다음, 한쪽으로 시신을 넣고 무덤 입구를 막아 추가 합장이 가능하도록 만든 무덤 양식.

여수 돌산도 봉황산, 금오산

봉황산, 금오산 정보

봉황산

1. 봉황산

돌산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봉황산은 해발 460m로 돌산읍 율림리, 서덕리, 죽포리에 걸쳐 있으며 예로부터 봉황이 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상산으로도 불린다. 정상을 중심으로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특히 주변의 아름다운 바다를 조망하며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등산코스로 봉황산에서 남동으로 흘러가는 산릉을 따라 섬 최남단 끝머리에 위치한 아름다운 기암 덩어리인 금오산(향일암)과 연결하여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산이다.

2. 금오산

금오산(金鰲山, Geumosan)은 여수시의 돌산읍 율림리와 금성리 일대에 위치한 산이다(고도:323m). 돌산도 남동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서쪽을 제외하고 급경사의 암석 해안과 이어진다. 우리나라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하나인 향일암(도 지방문화재 제40호)이 있다. 금오산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에 등장하는데『돌산군읍지』에 돌산도의 팔대산 중에 금오산이 있으며, “금오산은 군의 동쪽 20리에 있다. 산이 모두 흰 돌이며 거북이 모양으로 (중략) 소금강(小金剛)이라칭한다.”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돌산)에 율림리에 있는 산으로 기재되어 있다.『1872년지방지도』(순천방답진)에 지명은 보이지 않으나 향일암과 함께 산으로 묘사된 지역에 “진(鎭)으로부터 45리”라는 표기가 있다. 『돌산군읍지』의 지도에는 돌산군 동남단에 암석산으로 금오산이있으며 향일암을 함께 표기했다. 금오산이 거북이 모양이므로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하며 풍수지리상 금오산 향일암은 경전을 등에 모신 금거북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기도성지 목정굴로 유명한 금선사

금선사 정보

금선사-대적광전

금선사는 고려와 조선이 왕조교체기 때 무학(無學)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무학대사는 조선의 도읍을 정하고자 삼각산을 살피던 중, 지금의 금선사 터에 삼각산의 정기가 서려있고, 부처님이 상주하시며 중생들을 제도하는 형상과 같다고 하여 절을 짓고, 금선(金仙:금빛의 신선 즉, 부처)사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목정굴이 관음기도성지로 알려졌다. 또한 금선사 농산스님이 정조의 왕세자인 순조로 환생하였다는 설화도 전해지는데, 이를 계기로 1791년 정조의 명으로 원찰이 되기도 하였다. 설화에 의하면 금선사의 농산스님은 조선후기 사찰에 가해지는 각종 국역에 의해 피폐해지는 불교를 구해낸 인물로 묘사되어 있어 사찰의 규모는 작아도 위상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금선사는 조선후기 사대부 문인들(신정하, 조수삼, 박규수 등)과 스님들이 활발하게 교유한 장으로도 가능하였다. 특히 추사 김정희의 아우 김명희와 초의스님과는 교유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창건 이래로 신령한 기운과 문학이 숨쉬는 명찰로 법등을 잇다가 일제강점기에 관리소홀로 인하여 퇴락하게 되었다. 이후 1957년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도공 스님이 옛터에 중건하고, 법안 스님이 주석하며 1996년에 목정굴을 복원한 것을 필두로 대적광전, 삼성각, 반야전, 미타전, 설선당, 적묵당, 범종루 등의 각 전각과 요사를 신증축하여 현재 가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